6권 3책. 목판본. 후손 몽헌(夢獻)·준상(浚相)·대철(大喆) 등이 편집하고, 영(穎)·언굉(彦宏)·언묵(彦默) 등이 1897년에 간행하였다. 권두에 정종로(鄭宗魯)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이만인(李晩寅)의 발문과 영의 후지(後識)가 있다. 규장각 도서에 있다.
권1에 부(賦) 2편, 시 142수, 권2에 시 12수, 만사 15수, 전(箋) 2편, 서(書) 6편, 권3에 서(書) 9편, 서(序) 3편, 기(記) 2편, 찬(讚)·설(說)·상량문·책제(策題)·봉안문 각 1편, 제문 7편, 비명 2편, 잡저 7편, 권4·5에 효빈잡기(効嚬雜記) 상·하로 총화(叢話)와 여화(餘話), 권6에 부록으로 행장·묘갈명·별사강당상량문·충무공유명문관표천장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임진왜란 때 참전하여 지은 것이 많다. 서(書) 중에는 김성일(金誠一)·유성룡(柳成龍)·이덕형(李德馨)·이순신(李舜臣), 그리고 중국의 사신과 제독에게 올린 것들이 있는데, 모두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국가와 민생을 염려하는 내용이다.
특히, 1597년(선조 30) 유성룡에게 올린 서한에는 당시 왜적에 대한 비어책으로 8개 조의 실시사항을 건의한 내용이 있다. 명나라의 사신에게 보낸 변무서(辨誣書)에는, 우리나라가 요동반도의 회복을 위하여 일본과 내통하고 명나라를 정벌하려 한다는 의혹에 대하여 이를 변명한 내용이 담겨 있다.
「효빈잡기」에는 고금을 통하여 우리나라와 중국의 역사·인물 등에 있어 정사에 나타나 있지 않은 전기적인 것, 야사적인 것, 심지어 우화적·소설적인 내용들이 간략하게 수십 조에 걸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