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태후는 죽은 황제의 생존한 황후, 혹은 현재 황제의 어머니를 지칭하는 작호이다. 황태후라고도 하는데, 선황(先皇)의 정처(正妻)나 현황(現皇)의 모(母)에게 주어지는 책봉명이다. 황제의 생존한 할머니는 태황태후(太皇太后)라고 한다. 황제국 체제를 지향했던 고려는 국왕의 묘호로 조(祖)와 종(宗)을 칭하였지만 태후는 왕태후·대왕태후 등으로 변용하여 제후국의 칭호를 사용하거나 임금의 모후에 대한 시호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원의 간섭을 받은 이후 왕실 용어가 격하되면서 대비(大妃)로 책봉되었다.
정의
죽은 황제의 생존한 황후, 혹은 현재 황제의 어머니를 지칭하는 작호.
개설
내용
다만 태후 칭호의 사용에는 두 가지 측면에서 우리식 변용이 엿보인다. 우선 왕태후 · 대왕태후 칭호의 사용이 그것이다. 왕태후에서 ‘왕’은 제후국의 칭호이다. 고려는 임금의 모후를 태후로 호칭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왕태후(王太后)로 책봉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예종은 즉위한 지 1개월도 되지 않아 자신의 모후를 높여 ‘왕태후’로 삼았고, 성종은 재위 2년째인 983년에 자신의 할머니를 신정대왕태후(神靜大王太后)로 추증하였다. 태후의 이칭으로 황태후 대신 왕태후를, 태자의 이칭으로 황태자 대신 왕태자를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고려는 황제국과 제후국의 용어를 혼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변용의 사례로 ‘태후’가 임금의 모후에 대한 시호(諡號)로 사용된 점이 주목된다. 한대(漢代) 이후 중국에서는 생전에 태후 · 황태후의 존숭을 받았더라도 사후(死後)에는 남편을 따르는 원리에 의거하여 태후들은 ‘왕후’로 추증되었다. 하지만 신라나 고려의 왕들은 자신의 어머니가 사망하면 왕후가 아니라 ‘태후’나 ‘왕태후’로 책봉하였는데, 예를 들어 고려의 예종은 자신의 어머니가 사망하자 ‘명의왕태후(明懿王太后)’로 시호를 올렸다. 이에 대해 당대의 사관인 김부의(金富儀)는 “태후라는 칭호는 대개 모후가 살았을 때 아들이 어머니를 섬기는 칭호이다. 『당서(唐書)』에 이르기를, 살아서는 아들을 따르고 죽으면 지아비를 따른다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죽어서는 마땅히 왕후라고 칭해야 하는데, 지금 모후가 돌아가심에 시호를 태후라고 한 것은 예의에 어긋난 것이다.”라고 비판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비판은 수용되지 않았고, 이후에도 고려의 왕들은 자신의 모후를 태후로 추증하였다.
변천과 현황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고려시대의 후비(后妃)』(정용숙, 민음사, 1992)
- 『신라 왕실여성의 칭호 변천 연구』(이현주, 성균관대 박사학위논문, 2014)
- 「고려 전기 태후의 이념적 지위와 ‘태후권(太后權)’의 근거」(이정란, 『사학연구』 111, 한국사학회, 2013)
- 「고려조의 왕족(王族) 봉작제(封爵制)」(김기덕, 『한국사연구』 52, 한국사연구회, 1986)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