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토산군은 북한의 황해북도 남동부에 위치한 군이다. 북쪽으로 신계군, 남쪽으로 개성시와 장풍군, 동쪽으로 강원도(북한) 철원군과 이천군, 서쪽으로 금천군과 접해 있다. 고구려 때는 오사함달현이었다. ‘오사함’은 ‘토끼’를 뜻하는 옛말이고, ‘달’은 ‘산’을 의미한다. 757년에 토산현으로 개칭되었다. 농경지가 면적의 약 25%를 차지하고 있으며, 군에서 생산되는 산림 자원을 이용한 식료품 공업이 발달하였다. 옛 성터인 광성과 월성이 남아 있다. 석봉리에는 석봉 한호의 행적을 기록하여 무덤에 세운 비석인 한석봉묘갈명비가 있다.
정의
북한의 황해북도(黃海北道) 남동부에 위치한 군.
개설
명칭 유래
자연환경
주요하천은 군의 동쪽 기슭을 따라 북남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임진강과 아호비령산맥에서 발원하여 동서방향으로 흐르는 예성강의 지류인 구연천(九淵川), 시변천(市邊川), 미당천(美堂川)을 비롯하여 10여 개의 하천이 유입되고 있다. 저수지는 서천저수지(西泉貯水池)를 비롯하여 8개의 저수지가 있다.
기반암은 주로 석회암, 점판암, 규암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철, 금, 납, 아연, 니켈, 망간 등의 금속자원과 석회석을 비롯한 비금속자원이 지하에 매장되어 있다. 대부분 지역의 토양은 갈색산림토양이 분포되어 있으며, 강하천 연안에는 충적토와 논토양이 분포되어 있다. 그리고 전체 면적의 약 62%를 차지하는 산림지역 가운데 62.4%가 해발 200m 이하이며, 그 밖의 지역도 대부분 500m 이하 지역에 분포한다. 주요 수종은 소나무림과 소나무 · 참나무 혼성림이며, 수룡산 일대에는 신갈나무, 떡갈나무, 단풍나무, 쪽동배나무, 고로쇠나무, 생강나무, 싸리나무 등의 활엽수와 소나무림이 대부분이며, 일부 지역에는 잣나무와 피나무가 분포하고 있다. 그리고 동물보호구로 지정된 수룡산 일대에는 고라니, 노루, 너구리, 오소리, 살쾡이, 청서, 산토끼 등과 접동새, 밀화부리와 같은 조류, 남생이, 구렁이를 비롯한 파충류 등 다양한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기후는 중부 내륙에 위치하고 있는 만큼 대륙성기후의 특징이 나타나며, 북부와 남부 산간지대는 서부와 중부 지역에 비해 기온이 낮고 강수량이 많은 편이다. 연평균기온은 9.6℃이며, 1월 평균기온은 -7.0℃, 8월 평균기온은 24.4℃이다. 바람은 주로 서풍이 우세하며, 연평균강수량은 1,254mm이다. 이 가운데 봄철 강수량이 15.5%이며, 여름철 강수량이 64%, 가을철 강수량이 15.5%를 차지하며, 겨울철에는 연강수량의 5.5% 정도만이 내린다.
형성 및 변천
1952년 군면리 대폐합에 따라 금천군의 외류면, 합탄면, 좌면, 서천면, 구이면 전체와 토산면의 10개 리를 병합하여 다시 1읍 17리를 관할하는 토산군으로 복귀하였다. 1954년 황해도가 남북으로 분도되면서 황해북도로 편입되었고, 1961년 하남리 일부가 봉불리에 송세리 일부가 백화리에 각각 편입되었다. 1977년 홍묘리가 매봉리로 개칭되었고, 1981년 봉불리 일부가 토산읍으로 흡수되었다. 2002년 10월 현재 행정구역은 1읍(토산읍)과 17리(용암리, 매봉리, 문성리, 미당리, 백화리, 봉불리, 북포리, 석봉리, 송세리, 송천리, 수합리, 안봉리, 양사리, 월성리, 하남리, 합탄리, 황강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군 소재지는 토산읍이다.
현황
내륙에 위치한 토산군 지역의 교통은 도로가 기본을 이루고 있다. 토산∼금천, 토산∼신계, 토산∼이천(강화도), 토산∼장풍(개성시)를 연결하는 도로가 개설되어 있으며, 이 가운데 길이가 약 29㎞인 금천∼토산 간 도로는 6개 리를 관통하는 기본도로이다.
군에는 1개의 농업전문학교와 19개의 소학교, 11개의 분교, 학생소년회관, 도서관, 책방을 비롯한 교육문화시설이 있으며, 2개의 요양소와 함께 군인민병원과 리 단위의 인면병원이 있다.
토산군에는 옛 성터가 현재까지 남아 있는데, 송천리의 예성강 상류 독립고지에 위치한 광성(廣城)과 월성리에 위치한 월성(月城)이 그것이다. 광성은 흙으로 쌓아 축조한 것으로, 현재 동남쪽에 약 50m 정도 성벽이 남아 있으며, 성이 있는 산을 ‘성말레’라고 부른다. 광성처럼 흙으로 쌓은 토성인 월성은 반달형이며, 축성연대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임진왜란 당시 왜적을 물리치는데 활용되었다고 한다. 월성의 경우 『신증동국여지승람』 토산군 부분 군명 조항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리고 석봉리에는 석봉(石峰) 한호(韓濠, 1543∼1605)의 행적을 기록하여 무덤에 세운 비석인 한석봉묘갈명비(韓石峰墓碣銘碑)가 있다. 이는 1716년(숙종 42년)에 세워졌는데, 이정구(李廷龜)가 비문을 짓고 이진검(李眞儉)이 글씨를 썼다.
참고문헌
- 『신증동국여지승람』
- 『2008년 인구조사』(조선중앙통계국, 2009)
- 『조선향토대백과』7(한국 평화문제연구소·조선 과학백과사전출판사 공동편찬, 평화문제연구소, 2003)
- 『북한의 자연지리와 사적』(통일원, 1994)
- 『북한지지요람』(통일원, 1993)
- 『황해도지(黃海道誌)』(황해도지편찬위원회,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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