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음으로 ‘파사석탑’이라고 표기하나 범어(梵語)로는 ‘바사석탑’이라고 하는데, 파(婆)는 범어로 바(bha)이며 그 뜻은 유(有)이고, 사(娑)는 발음이 사(sa)로서 그 의미는 체(諦 : 진실한 도리)이다.
그러므로 파사는 유체(有諦)로서, 일체의 지혜가 현증(現證)한다는 뜻이다. 현재 남아 있는 석탑은 4각형의 지대석 상면에 높직한 굄대가 있어 그 위에 여러 개의 부재(현재는 6석임)를 받고 있는데, 각 부재의 측면과 하면 등에서 다양한 조각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을 뿐 전체적으로 파손과 마멸이 심하다.
최근에 각 부재를 검토하여 새로이 탑을 복원하였다고 하나 본래의 부재와 똑같은지는 세밀한 고증이 필요하다. 이 석탑에 관해서는 《삼국유사》 권 제3 탑상편 제4 금관성파사석탑조(金官城婆娑石塔條)에 다음과 같이 보이고 있다.
“금관성 호계사(虎溪寺)의 파사석탑은 옛날 이 읍(邑)이 금관국으로 되어 있을 때, 세조 수로왕의 비(妃) 허황후(許皇后) 황옥(黃玉)이 동한(東漢) 건무(建武) 24년 갑신(甲申)에 서역의 아유타국(阿踰陁國)에서 싣고 온 것이다. 처음에 공주가 어버이의 명을 받들고 동쪽으로 오려고 하다가 파신(波神)의 노여움에 막혀서 할수없이 돌아가 부왕(父王)에게 아뢰니 부왕이 ‘이 탑을 싣고 가라.’ 하여 무사히 바다를 건너 남쪽 물가에 와서 닿았는데, 비범(緋帆 : 붉은색의 배) · 천기(茜旗 : 붉은 색의 기) · 주옥(珠玉)의 아름다움이 있었으므로 지금도 이곳을 주포(主浦)라 한다. …(중략)… 탑은 사면으로 모가 나고 5층인데, 그 조각이 매우 기이하며 돌에는 조금씩 붉은 반점이 있고 석질이 매우 부드럽고 특이하여 이 지방에서 구할 수 있는 돌이 아니다. ”
이와 같은 내용에서 파사석탑의 존재를 알 수 있는데, 호계사에 있던 탑을 조선시대에 이르러 김해부사로 있던 정현석(鄭顯奭)이 “이 탑은 허황후께서 아유타국에서 가져온 것이니 허황후릉에 두어야 한다. ”고 하여 현재의 자리에 옮겨놓았다는 것이다.
한편, 이 탑에 대해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 권32 김해도호부 고적조(古蹟條)에 “婆娑石塔 在虎溪邊 凡五層 其色赤斑 其質良脆 彫鏤甚奇 世傳許后自西域來時 船中載此塔 以鎭風濤(파사석탑 재호계변 범5층 기색적반 기질양취 조루심기 세전허후자서역내시 선중재차탑 이진풍도)”라 보인다.
《삼국유사》에서 5층탑의 조각이 매우 기이하다고 표현한 것과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 내용이 일치하나 현존 실물이 크게 파손되어 있어 매우 유감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