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시는 경기도 동북단에 위치한 시이다. 동쪽은 경기도 가평군과 강원특별자치도 화천군, 남쪽·서쪽은 경기도 연천군·동두천시·양주시·의정부시·남양주시, 북쪽은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과 접한다. 2003년에 포천군 일원이 도농 통합시인 포천시로 승격하였다. 대표적인 관광지로 예로부터 이름난 영북면의 산정호수와 피서지로 개발된 이동면의 백운계곡이 있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826.4㎢, 인구는 14만 1463명이다. 행정구역은 1개 읍, 11개 면, 2개 행정동[6개 법정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포천시청은 신읍동에 있다.
경기도 동북단에 위치한 포천시는, 동쪽은 경기도 가평군과 강원특별자치도 화천군, 남쪽 · 서쪽은 경기도 연천군 · 동두천시 · 양주시 · 의정부시 · 남양주시, 북쪽은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과 접한다. 2003년 10월에 포천군 일원이 도농 통합시인 포천시로 승격하였다. 대표적인 관광지로 예로부터 이름난 영북면의 산정호수와 피서지로 개발된 이동면의 백운계곡[백운동계곡]이 있다. 수리적 위치는 동경 127°05′~127°27′, 북위 37°36′~38°11′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826.4㎢이고, 인구는 14만 1463명이다. 행정구역은 1개 읍[소흘읍], 11개 면[가산면 · 관인면 · 군내면 · 내촌면 · 신북면 · 영북면 · 영중면 · 이동면 · 일동면 · 창수면 · 화현면], 2개 행정동[포천동 · 선단동]으로 구성되어 있고, 하위 행정 단위로 6개 법정동, 255개 행정리, 82개 법정리가 있다. 포천시청은 신읍동에 있다.
광주산맥의 지맥이 지나가 동북쪽에는 500~1,000m의 산지가 발달하였다. 동쪽에는 광덕산(廣德山: 1,049.1m), 백운산(白雲山: 903m), 국망봉(國望峰: 1,168m), 강씨봉(姜氏峰: 830m), 현등산(縣燈山: 936m) [운악산(雲岳山)], 수원산(水源山: 697m), 주급산(鑄錦山: 814m) 등이 경기도 가평군, 강원특별자치도 화천군과 경계를 이룬다.
특히 서쪽에는 지장봉[877m]과 종자산(種子山: 643.7m), 종현산(鐘懸山: 584.7m), 왕방산(王方山: 737m), 해룡산(海龍山: 661.1m)이 있고, 남쪽에는 용암산[475.3m]과 운산산[200m], 북쪽에는 명성봉(鳴聲峰: 477m), 종근봉[285m]이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과 경계를 이룬다. 중앙에는 불무산(佛舞山: 662.7m)과 관모봉(冠帽峰: 584m), 금주산(金珠山: 569m)이 솟아 있다.
주요 수계는 시의 중앙을 흐르는 포천천인데 수동천(水洞川), 영평천(永平川)과 합류하면서 북서쪽으로 흘러 한탄강으로 유입된다. 시의 서북단을 흐르는 한탄강은 주동천, 명덕천 등과 합류하면서 서류하여 연천군으로 흘러 들어간다. 한탄강의 양안에는 넓은 하안평야가 발달하였다. 하천 유역에는 충적토가, 산지에는 회색토, 편마암토가 분포하고 있다.
중부 산간 내륙지방에 자리해 기후는 한서의 차가 심한 전형적인 대륙성기후를 나타낸다. 1991~2020년 평년값 기준 연평균기온은 11.4℃, 1월 평균기온은 -4.5℃, 8월 평균기온은 25.3℃이며, 연강수량은 약 1,368.2㎜이다.
이 지역에는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했음을 알 수 있다. 한탄강과 영평천, 포천천 유역의 관인면 중리 · 사정리, 영북면 자일리 · 운천리, 신북면 금주리, 영중면 양문리 · 성동리 등지에서 석기와 찍개, 밀개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신석기시대의 흔적으로는 영중면 영송리와 관인면 중리 유적에서 빗살무늬토기 편이 발견되었다.
청동기시대 유적은 가산면 금현리와 자작동, 창수면 추동리, 일동면 수입리 · 기산리, 신북면 만세교리 등지에서 확인되며, 분포가 매우 밀집되어 있다. 이들 유적에서는 고인돌을 비롯해 주1, 홈자귀, 가락바퀴, 민무늬토기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초기 철기시대 유적은 관인면 중리와 영중면 영송리, 자작동에서 발견되었는데, 토기와 갈돌, 갈판 등이 대표적이다. 서기전 221년경인 삼한시대 전후에는 진한(辰韓)의 전신인 진국(辰國)의 북방 경계에 위치하여 한왕(韓王) 준(準)의 세력으로부터 위만조선 후기에 걸쳐 그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기전 108년 한사군 때에는 낙랑군(樂浪郡)의 동남부에 위치하여 그 영향권에 있었으며, 서기전 30년경에는 동예와 진한의 접경 지역이었다. 3세기 중엽부터 5세기 중엽에는 백제의 영향권에 있었다. 이후 475년(장수왕 63) 고구려에 복속되어 마홀군(馬忽郡)[일명 명지(命旨)]과 양골현(梁骨縣)이 설치되었다.
통일신라에 들어와 757년(경덕왕 16) 마홀군이 견성군(堅城郡)으로 개칭되었고, 양골현은 동음현(洞陰縣)으로 바뀌어 견성군의 영현이 되었다. 신라 하대에는 원주를 근거로 세력을 확장한 양길(梁吉)의 세력권에 들어갔다. 이후 태봉국의 영역에 속했다가 이곳의 수장(守將)이 고려에 귀부함으로써 왕건(王建: 877~?)의 지지기반이 되었다.
고려 전기에 견성군은 포주(抱州)로 개칭되었다. 995년(성종 14)에 단련사(團練使)가 설치되었다가 1005년(목종 8)에 폐지되었다. 1018년(현종 9)에는 양주(楊州)의 속현이 되었다. 한편 동음현도 이 해에 동주(東州)[지금의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의 속현이 되었다. 1106년(예종 1)과 1172년(명종 2)에 각각 동음현과 포주에 감무(監務)를 두었다.
1269년(원종 10) 동음현이 권신 임연(林衍: ?1270) 등의 반란을 진압한 위사공신(衛社功臣) 강윤소(康允紹: 1237?)의 내향(內鄕)이라 하여 영흥현(永興縣)으로 승격되었고 현령이 파견되었다. 1390년(공양왕 2)에는 경기(京畿) 지역의 범위가 확대됨에 따라 양광도(楊廣道)에 속해 있던 포주가 경기좌도로 이관되었다.
조선 전기인 1393년(태조 2) 영흥현이 영평현(永平縣)으로 개칭되었으며, 1413년(태종 13)에는 포주가 포천현으로 개칭되면서 현감이 파견되었다. 1618년(광해군 10)에 포천현과 영평현이 합쳐져 영흥도호부(永興都護府)로 승격되었고 일시적으로 경기감영이 설치되었으나 1623년(인조 1)에 다시 포천현과 영평현으로 분리되었다. 1895년(고종 32) 23부제 실시로 포천현과 영평현이 모두 군(郡)으로 승격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영평군이 포천군에 병합되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이 지역에서는 3월 29일부터 4월 5일까지 여덟 차례에 걸쳐 시위운동이 벌어졌다. 이때 가산면의 총책으로 시위 군중을 이끌고 소흘면 주재소를 습격하다 순국한 최석휴(崔錫休: 1888~1919)를 비롯하여, 만세 시위를 주동하다 옥고를 치른 김호훈(金鎬勳) 등이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았다.
또한 근대의 인물로 조선 후기 위정척사론(衛正斥邪論)의 거두이며 의병장인 최익현(崔益鉉: 18331907), 광복단원으로 활약한 최면식(崔勉植: 18911941),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한 이규채(李圭彩: 18841947), 의열단원으로서 만주에 해림신창학교(海林新彰學校)를 세운 조영원(趙永元: 18921974), 대한독립단원으로 활약한 강지형(姜芝馨: 1881~1931) 등이 있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영북면, 이동면, 청산면, 창수면, 영중면 등 5개 면 전역과 일동면 일부가 삼팔선 이북이 되어 군 행정구역에서 제외되었다. 이후 1954년 10월 1일 관내 12개 면[88개 리]이 완전히 수복되었다.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반격전을 벌였던 곳으로, 만세교전투(萬歲橋戰鬪)와 반공 애국 청년들로 구성된 소리봉부대(蘇利峰部隊)의 반공 유격 투쟁이 유명하다.
1963년 내촌면에 화현출장소(花峴出張所)가 설치되었고, 1973년 7월 1일 포천면 탑동리가 경기도 양주군 동두천읍에 편입되었다. 1979년 5월 1일 포천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1983년 2월 15일 경기도 연천군 관인면 일원이 편입되었고, 청산면의 삼정리 · 갈월리 · 금동리 · 덕둔리 등 4개 리가 신북면에, 청산면의 초성리 · 대전리 · 장탄리 · 궁평리 · 백의리 등 5개 리가 연천군에 편입되면서 청산면이 연천군 관할로 변경되었다. 같은 해에 화현출장소가 화현면으로 승격하였다. 1989년 1월 1일 관인면 부곡리가 연천군 연천읍에 편입되었으며, 1996년 2월 1일 소흘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2003년 10월 19일 포천군 일원이 도농 통합시인 포천시로 승격하고, 포천읍이 포천동과 선단동으로 분리되어 1개 읍, 11개 면, 2개 동으로 구성되었다. 창수면 일부 지역[신흥리 및 고소성리 일부]은 군 작전상 입주가 허용되지 않은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25년 5월 기준 포천시에는 36건의 국가유산이 분포한다. 구체적으로는 12건의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 2건, 사적 1건, 명승 2건, 천연기념물 5건, 국가등록문화유산 2건 등]과 24건의 시도지정문화유산[유형문화유산 6건, 무형유산 3건, 기념물 10건, 문화유산자료 5건 등]을 보유하고 있다.
선사시대 유물로는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된 영중면의 포천영송리선사유적(抱川永松里先史遺蹟)[1994년 지정]과 경기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가산면의 포천금현리지석묘(抱川金峴里支石墓)[1983년 지정]가 있다. 이 외에도 자작동, 일동면 사직리 · 기산리 · 수입리, 창수면 추동리, 가산면 방축리, 소흘읍 송우리 등지에 고인돌이 산재해 있다.
삼국시대 유적으로는 사적으로 지정된 군내면의 포천 반월성(抱川 半月城)[1998년 지정]과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된 소흘읍 고모리의 포천고모리산성(抱川古毛里山城)[2002년 지정], 자작동의 포천 자작리 유적지[2008년 지정]가 있다.
불교 유산으로는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어룡동의 포천석조여래입상(抱川石造如來立像)[1995년 지정]이 있고, 이동면 도평리의 흥룡사(興龍寺)에 부도 2기가 있다.
유교 유산 가운데 신북면 신평리의 용연서원(龍淵書院)[1976년 지정]과 신북면 가채리의 청성사(淸城祠)[1975년 지정]는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으로로 지정되어 있다. 가채리의 채산사(茝山祠)[1976년 지정]와 가산면 방축리의 화산서원(花山書院)[1975년 지정], 소흘읍 무봉리의 충목단(忠穆壇)[1987년 지정]은 경기도 기념물로, 군내면 구읍리의 포천향교(抱川鄕校)[1983년 지정]는 경기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이 중 충목단은 사육신의 한 사람인 유응부(兪應孚: ?~1456)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제단으로 옆에 유허비(遺墟碑)도 있다. 이 외에도 창수면 추동리에 청해사(淸海祠)가 있고, 포천8경의 하나인 낙귀정지(樂歸亭址)가 영중면 거사리에 있다. 창수면 오가리의 금수정지(金水亭址)에는 주춧돌이 남아 있다.
역사적 인물의 묘소로 가산면 금현리의 이항복선생묘(李恒福先生墓)[1975년 지정]와 설운동의 서성선생묘(徐省先生墓)[1976년 지정]는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비의 경우 신북면 신평리의 효종(孝宗: 1619~1659) 어필로 된 인평대군치제문비(麟平大君致祭文碑)[1978년 지정]는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인평대군묘및신도비(麟坪大君墓및神道碑)[1992년 지정]는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또 역대 현감의 선정비군(善政碑群)이 군내면 구읍리의 청성산(靑城山: 285.1m)[일명 반월산(半月山)] 아래에 있다.
현재 경기도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이중로 정사공신교서 및 초상 - 이중로 정사공신교서(李重老 靖社功臣敎書 및 肖像 - 李重老 靖社功臣敎書)[보물, 1993년 지정]는 원래 창수면 추동리에 있는 이중로(李重老: 1577~1624)의 후손이 소유했던 것으로, 1625년(인조 3)에 발급된 공신 교서이다.
천연기념물로는 군내면 직두리의 포천 직두리 부부송(抱川 稷頭里 夫婦松)[2005년 지정]이 있다. 무형유산으로는 경기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가산면 방축리의 포천메나리[2000년 지정]와 영북면 자일리의 풀피리[2002년 지정]가 있다.
전적 기념물로는 내촌면 진목리에 ‘육사생도 6·25참전기념비’, 영중면 성동리에 ‘북진통일탑(北進統一塔)’, 일동면과 이동면 사이에 남북 분단의 비극을 상징하는 ‘삼팔교(三八橋)’가 있다. 그리고 1954년 10월 15일, 한국전쟁 후 잃었던 땅을 되찾고 원주민을 다시 입주시킨 것을 기념하여 세운 ‘수복기념탑(收復紀念塔)’이 이동면 도평리에 있다.
전통 교육기관으로 지금의 군내면 구읍리에 1173년(명종 3) 창건된 포천향교가 있다. 포천향교는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594년(선조 27)에 중건하였으며, 이후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른다. 영중면 영평리에는 영평향교(永平鄕校)가 있었으나 1938년 철폐되었다.
서원으로는 가산면 방축리에 1635년(인조 13) 건립되어 1660년(현종 1) 사액된 화산서원, 신북면 신평리에 1691년(숙종 17) 건립되어 그 이듬해 사액된 용연서원이 있다. 창수면 주원리에는 선조(宣祖: 15521608) 때의 문신인 박순(朴淳: 15231589)이 노년에 낙향하여 여생을 보내고 죽자, 선비들이 그의 높은 덕과 깊은 학문을 기리기 위하여 1649년(인조 27)에 세운 옥병서원(玉屛書院)이 있다.
신교육 기관의 효시로는 「보통학교령」이 실시될 무렵인 1906년(광무 10) 이철용(李哲鎔)이 학교의 면모를 갖추어 건립한 화야의숙(華野義塾)을 들 수 있다. 이어 1910년(융희 4) 영평보통학교, 1911년 포천보통학교, 1920년 송우보통학교, 1923년 일동보통학교, 1924년 영북보통학교가 각각 설립되었고 1930년대에 들어와 각 면마다 보통학교가 설립되었다.
광복 후 삼팔선이 군사분계선으로 고착화되며 지금의 영평초등학교, 영북초등학교, 이동초등학교가 북한 지역에 속하게 되었다. 이후 1953년 휴전협정으로 군사분계선이 삼팔선보다 북쪽으로 확정되면서 이 세 학교는 다시 대한민국 영토로 편입될 수 있었다. 문화 행사로 ‘반월문화제’와 ‘명성산 억새꽃 축제’가 유명하다. 문화시설로는 한탄강세계지질공원센터, 포천 역사문화관, 그리고 국립수목원 산림박물관 등이 있다.
2025년 3월 1일 기준 포천시의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8개, 중학교 14개, 고등학교 7개가 있으며, 대학교로는 대진대학교와 차의과학대학교, 경복대학교 포천캠퍼스가 있다.
포천 지역의 민속놀이는 대체로 세시풍속의 형태로 전승되고 있으며, 대표적인 사례로 이동면의 지경놀이가 있다. 지경놀이는 집을 지을 때 마을 사람들이 함께 집터를 다지고 주춧돌을 놓는 과정을 놀이로 형상화한 것이다. 놀이에는 농악과 소고, 지경을 비롯해 72명이 참여하며, 기둥과 오색천이 소품으로 사용된다. 집 짓기를 마친 뒤에는 가내의 평안을 기원하고 악귀를 물리치며 지신(地神)의 가호를 받아 복을 비는 의례를 행한다.
이 지역의 대표적인 동제(洞祭)로는 화현면 명덕리 산신제와 내촌면의 산신제가 있다. 명덕리 산신제는 이 마을의 진산(鎭山)인 수원산 산신령에게 봄 · 가을에 치성을 드리는 것으로, 제주는 네 명이며 약 일주일 전에 제삿날을 정하고 제주를 뽑는다. 제주는 나이가 많고 덕망이 높은 원주민 중에서 엄선하며, 한국전쟁 전까지는 황소 한 마리를 산제당 주변에서 잡아 소머리와 다리 4개, 내장, 안심, 등심 등을 제물로 썼으나 지금은 여러 사정으로 제물로 쓸 고기를 시장에서 구입해서 지낸다. 제삿날이면 각 제관은 목욕재계하고 옷을 깨끗이 입으며 주변을 청결하게 한다.
내촌면의 산신제는 1년에 한 번 지내며, 음력 7~9월의 3개월 중에서 동네 사람들의 결의로 정한다. 시간은 정오를 택하고, 제관은 동민 중에 나이가 많고 덕망이 있는 노인으로 1년 동안 가정이 무고하고 부정이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 제수는 소나 돼지를 통째로 쓰거나 형편에 따라 소머리나 돼지머리의 생것을 쓰기도 한다. 주2를 곁들이며, 장소는 동네에서 가까운 정결한 곳이나 큰 정자나무 아래에서 시행된다. 이 밖에도 화현면의 지현리와 화현리에서도 동네별 또는 합동으로 지내는 산신제가 있는데, 절차와 제물은 명덕리의 산신제와 유사하다.
지역에서 전승되는 설화 가운데 「낙암전설(落巖傳說)」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선 인조(仁祖: 1595~1649) 때 인물 정창국(鄭昌國)이 부인과 함께 신북면 기지리에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에 부인 유씨(兪氏)가 분묘 앞에 막을 짓고 주야로 슬퍼하며 남편의 명복을 빌었는데, 병자호란으로 호군(胡軍)이 쳐들어오자 욕을 면하기 위해 분묘 옆 바위에서 몸을 던져 남편을 따랐다고 한다. 이후 그 바위는 ‘낙암’이라 불리게 되었고, 마을 이름 또한 낙암동(落巖洞)으로 전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청학동전설(靑鶴洞傳說)」은, 옛날 영중면 금주리에 살았던 어떤 가난한 효자가, 아버지의 시신을 등에 지고 매장을 하기 위하여 자리를 잡고 땅을 한 괭이 파니 청학 한 마리가 슬프게 울며 하늘로 날아올랐다는 이야기이다. 이 효자는 그 자리에 산소 쓰기를 단념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한 것이 구전되어 내려온다.
「화적연전설(禾積淵傳說)」은, 어느 날 한 늙은 농부가 3년 가뭄에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것을 원망하여 화적연 가에서 “하늘도 무심하지, 용도 3년을 두고 낮잠만 자는가!” 하고 탄식했더니, 갑자기 연못 속에서 용이 나와 하늘로 비상하더니 다음 날부터 비가 내려 그해 풍년이 들었다는 내용의 이야기이다. 그때부터 이 지방에 가뭄이 들면 이 화적연에서 기우제를 지내는 풍습이 생겼다고 전한다.
이 밖에 원효대사(元曉大師: 617686)의 일화가 얽혀 있는 「원효목바위전설」, 고려 태조(太祖: 877?)의 왕녀 몸에서 나온 태(胎)를 태운 재를 묻었다는 「태봉산전설(胎峰山傳說)」, 그리고 백성들의 인심을 얻지 못해 쫓겨나야 했던 태봉국 궁예(弓裔: ?~918)의 이야기가 얽혀 있는 「무지개폭포전설」 등이 전한다.
이 고장에서 구비 전승되는 민요는 노동요를 비롯해서 타령요, 자장가, 탄요 등이 있으나 대부분은 노동요이다. 그중에도 논매기노래와 밭갈이소리가 중심인데, 이는 이 지역이 내륙 산간지방으로 논농사와 밭농사가 고르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역의 향토색을 잘 반영하는 대표적인 노래로는 「메나리」[논매기소리], 「자장가」, 「밭갈이소리」, 「제전(祭典)」, 「영평팔경가(永平八景歌)」 등을 들 수 있다.
그중 「메나리」는 “들려주소 매어주소 / 이논배미 들려주소 / 이논배미 매어주면 / 준치자반 담그리라 / …”와 같다. 가락이 단조로우나 힘차고, 가사는 풍년 기원의 내용뿐 아니라 순박한 농민의 소망이 소박하게 잘 표현되고 있으며, 4음 2음보의 형식이다.
특히 지역의 향토색을 잘 반영하고 있는 「영평팔경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화적연에 벼를 베어 / 금수로 술을 빚어 / 창옥병에 담아놓고 / 와룡말 치켜타고 / 백운암 찾아가니 / 청학은 간데없고 / 백로만 날아든다 / 장암에 고요히 쉴까.” 이는 포천에 병합된 영평군의 팔경으로 꼽히는 지명에 대해 읊은 노래로, 가락은 느리나 우아하다.
민속놀이요(民俗놀이謠)인 「제전」도 이 고장 특유의 노래로 그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벽오동풍에 절일을 당하여 / 임의 분묘를 찾아가서 / 분묘앞에 황토요 / 황토위에 제석 깔고 / 제석위에 제면지 펴고 / 제면지 위에 상간지 펴고 / 차려간 음식 벌여놀제 / 우병좌면 홍동백서 / 좌포우혜 오기탕 실과를 / 전자우전으로 벌여놀제 / ….” 이 민요는 사랑하는 님의 묘에 찾아가서 제사 지내는 과정을 읊은 해학적인 노래이다.
자장가 중에는 「밤노래」가 유명하다. 돈 한 푼을 주워 밤 한 말을 사서 삶았더니 쥐가 모두 물어 가고 한 톨만 남았다는 데서 시작하며, 그 한 톨을 온 가족이 나누어 먹되 알맹이는 너와 내가 먹는다는 내용으로, 해학성이 두드러진 음영 민요의 백미로 꼽힌다.
전체 토지의 67.3%가 임야이다. 경지는 16.5%로 이 중 논이 39.30㎢, 밭이 60.06㎢로 밭이 더 많은 편이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 외에 감자, 콩이 생산되고, 채소류로 무 · 배추 · 고추 · 파 · 오이 · 수박 · 참외, 특용작물로 참깨 · 들깨 · 황기 · 땅콩, 과실류로는 사과 · 포도 · 배 등이 생산된다. 목축업으로 젖소와 닭, 돼지 등이 사육되고 있다. 산지가 많아 임산물이 풍부한데 주요 임산물로는 잣, 밤, 대추, 도토리, 표고버섯이 생산된다. 특히 잣은 경기도의 가평 다음으로 많이 생산되고 있다. 농가인구는 전체 인구의 8.8%이다. 최근 농가인구가 계속 격감하는 반면에 제조업 인구는 늘고 있다.
제조업 종사자 비중은 전체 사업체 종사자 수의 46.4%이다. 광산물로는 석회석, 고령토, 장석 등이 과거에 많이 생산되었으나 현재는 더 이상 채굴되지 않고 있다. 주요 제조업으로는 섬유공업, 비금속공업, 조립금속공업, 식료품공업이 발달하고 있다. 특히 식료품공업 중 ‘포천 막걸리’는 백운동계곡의 맑은 물로 빚어 독특하고 뛰어난 맛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상업 시설 가운데 정기시장으로는 신읍장[끝자리 5·10일]과 송우장[4·9일]을 비롯해 운천장, 내리장, 기산장, 이동장, 관인장이 있었으나 현재는 점차 쇠퇴하고 있다. 포천 우시장은 예로부터 매매량이 많기로 유명했으나 역시 쇠퇴하는 추세이다. 한편 포천읍에는 상설시장이 열리고 있으며, 산세가 수려하고 물이 맑은 백운동계곡에는 목축업의 발달에 힘입어 갈빗집이 밀집되어 주말과 휴일이면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도로는 시의 남부에 세종포천고속도로와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포천-화도]가 경유하고 있다. 국도 43호선이 시의 중심부를 경유하고 국도 37호선이 시의 중심부를 지나 일동에서 국도 47호선에 연결된다. 국도 37호선, 국도 43호선이 남북 방향으로 분포하고 있어 시의 남북 연결은 용이하나 동서 간 교류는 다소 불편하다.
경기도의 북동단에 위치하여 가평군 · 양주시 · 연천군 · 의정부시와 인접하고,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과도 접하여 관광지로 발달하였다. 시 주변에 광주산맥에서 뻗어 나온 국망봉, 불무산, 명성산(鳴聲山, 921.9m) 등 구릉성 산지가 연봉을 이루어 둘러싸고 있어 산악 경관이 뛰어나며, 계곡을 중심으로 한 산악 관광지가 많이 분포한다.
하천은 대체로 북쪽으로 흘러 한탄강과 합류하며, 하천 주변에는 다양한 자연 관광자원이 분포한다. 특히 화산지형 가운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이 많은데, 관인면 냉정리의 ‘ 한탄강 대교천 현무암 협곡(漢灘江 大橋川 玄武岩 峽谷)’[2004년 지정], 영북면 대회산리의 ‘ 포천 한탄강 현무암 협곡과 비둘기낭폭포(抱川 漢灘江 玄武岩 峽谷 · 비둘기낭瀑布)’[2012년 지정], 창수면 신흥리의 ‘ 포천 아우라지 베개용암(抱川 아우라지 베개鎔巖)’[2013년 지정]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기이한 화산지형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장소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지역의 관광은 역사문화 유적지보다 수려한 자연경관을 중심으로 발달해 있다. 특히 영북면에 위치한 산정호수(山井湖水)는 예로부터 유명하다. 이동면에 위치한 나산컨트리클럽과 눈썰매장은 겨울 관광명소로 알려져 있으며, 온천장도 개발되어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올랐다. 이 외에도 백로주유원지는 콘도미니엄 등 위락시설이 조성되면서 수도권 시민을 위한 주요 휴양지로 자리매김하였다.
그 외의 중요한 관광지로 남양주시와 인접한 포천시 소흘읍의 광릉임업시험장이 있다. 산정호수 옆에 자리한 명성산에는 비선폭포와 등룡폭포가 있어 시원한 물줄기가 보는 이의 마음까지 시원하게 해 준다. 신선이 내려와 목욕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백운산 기슭의 백운동계곡과 광덕계곡도 빼놓을 수 없다. 이곳들은 옥녀탕 같은 명소와 울창한 숲이 어우러져, 매년 여름 수많은 피서객이 찾고 있다. 특히 백운동계곡은 피서 관광지로 개발된 곳이다.
또한 광릉수목원과 삼림 보호 및 임업 연구의 요람지인 자연학습장을 비롯한 가리산[774.2m], 관음산(觀音山: 732.1m), 구룡산, 사향산(麝香山: 737.4m), 삼성산, 왕방산, 종자산, 종현산, 선녀바위와 12구곡[초정리~덕둔리 7㎞ 계곡], 주금산[813.6m], 죽엽산(竹葉山: 615.8m), 청계산(淸溪山: 849m), 영증면의 풍혈산유원지, 하판리의 현등사(懸燈寺) 등이 관광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이동면 도평리의 한일탁주에서 생산하는 ‘이동막걸리’는 식도락 관광의 명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영평8경을 비롯하여 이항복선생묘, 서성선생묘, 화산서원, 금수정(金水亭), 포천 화적연(抱川 禾積淵)[명승, 2013년 지정], 와룡암(臥龍岩), 청학동(靑鶴洞), 선유담(仙遊潭), 포천 반월성, 용연서원 등도 관광지로 유명하다.
영평8경은 한탄강과 영평천을 따라 흐르는 맑은 물과 울창한 숲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는 관광지이다. 특히 계곡의 기암괴석이 아름다운 경치를 더한다. 그중 볏가리소[포천 화적연]는 한탄강 상류인 관인면과 영북면 일대에 있으며, 볏짚을 쌓아 올린 듯한 독특한 모습으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이외에도 영중면 금주리의 병풍 암석 절벽, 창수면 오가리의 기암괴석, 그리고 영중면 거사리의 백로주 주변 정자 터가 영평8경에 포함된다.
한편, 신북면 기지리에 있는 포천아트밸리는 국내 최초로 폐채석장을 문화예술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친환경적인 명소이다.
포천시의 서남단에 있는 읍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46.28㎢이고, 인구는 4만 2483명이다. 소흘읍 행정복지센터가 송우리(松隅里)에 있다.
본래 포천군 소흘산면 지역으로 1895년 외소면, 내소면으로 분리되었다. 당시 외소면은 이동교리(二東橋里) · 송우리 · 무림리(茂林里) 등 8개 리, 내소면은 이가팔리(二加八里) · 초가팔리(初加八里) 등 6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2개 면과 가산면(加山面) 일부가 합쳐져 9개 리를 관할하는 소흘면이 되었다. 1996년 읍으로 승격하였다. 송우리, 이동교리, 무림리, 이곡리(梨谷里), 직동리(直洞里), 고모리(古毛里), 이가팔리, 초가팔리, 무봉리(茂峰里) 등 9개 법정리가 있다.
산지로는 북쪽 중앙에 태봉산(胎峰山: 175.2m), 동쪽 경계에 죽엽산, 남단에 운악산 · 용암산 등이 솟아 있고, 서부에는 천보산(天寶山: 423m)의 줄기가 뻗어 있다. 포천천의 지류가 북으로 흘러 그 유역에 평야가 형성되어 있는데, 이가팔리에 위치한 ‘왕뎅이 벌’은 예로부터 시의 상답(上畓)이라 일컬어지던 곳이다. 논농사가 밭농사보다 다소 우세한 지역이다.
주요 농산물은 미곡이며, 특용작물로 참깨 · 들깨, 채소류로 고추 · 파 · 마늘, 과일류로 배 · 포도 등이 생산되는데, 특히 배의 생산량이 많다. 한우, 젖소, 돼지, 사슴 등을 사육하는 축산농가도 있다. 읍 소재지인 송우리는 경원가로(京元街路)의 중심지로서 예로부터 동대문 밖에서는 가장 큰 규모의 시장이 열렸으며, 지금도 끝자리가 4·9일에 5일장이 선다.
광공업으로는 과거 고령토와 장석을 채굴하던 광산 두 곳이 있었다. 수도권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제조업체의 생산 시설이 곳곳에 들어서면서 공장이 난립하였고, 이에 따라 인구도 급격히 증가하였다. 최근에는 송우리 일대를 중심으로 공공주택 공급을 위한 택지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교통은 세종포천고속도로와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포천–화도 구간)가 읍의 중앙에서 교차하고, 국도 43호선이 동부를 따라 길게 종단한다. 지방도 314호선은 남쪽을 가로지르고, 지방도 350호선은 서부 지역의 교통 편의를 담당한다. 이 밖에도 시도 1호선과 시도 2호선 등이 읍 곳곳을 연결하며 도로망이 사방으로 뻗어 있다.
문화유산으로 무봉리에 충목단, 이동교리에 용상동(龍翔洞)과 ‘비는 돌고개’라는 뜻인 축석령(祝石嶺)이 있다. 송우리에는 태봉(胎峰)이 있다. 읍 남쪽의 직동리에는 국립수목원, 산림박물관, 산림기술경영연구소 스마트육묘장 등이 있으며, 용암산 북사면으로 많은 캠핑장이 들어서 있다.
포천시의 남부 중앙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35.86㎢이고, 인구는 6,967명이다. 가산면 행정복지센터가 마산리(馬山里)에 있다.
본래 포천군 화산면(花山面) 지역으로 후평리, 마산리, 서원리 등 12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청량면(淸凉面)의 일부와 내소면의 일부를 합하여 가산면으로 하였다. 마산리, 감암리(甘巖里), 방축리(坊築里), 가산리(加山里), 정교리(鼎橋里), 금현리(金峴里), 우금리(友琴里), 마전리(麻田里) 등 8개 법정리가 있다.
남동쪽 경계에 국사봉(國師峰: 547m), 남부에 죽엽산 산줄기가 면내로 뻗어 있다. 북서부의 화봉산(華峰山: 179.1m)은 평탄한 평야에 부채를 편 형상이며 예로부터 영산(靈山)이라 일컬어 왔다. 면의 북쪽에서 서쪽 방향을 지나는 포천천이 면 경계를 형성한다. 이 밖에 우금천(友琴川), 금현천(金峴川), 고모천(古毛川) 유역에 충적평야가 펼쳐져 있다.
면의 총면적 대비 경지면적이 넓은 편이며, 논농사가 밭농사보다 우세하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의 생산량이 많으며, 배추와 시금치, 고추 등의 채소류도 많이 난다. 과일류로 ‘가산포도’로 알려진 포도의 생산량이 많고 특산물로 인삼이 있다. 가축은 한우, 돼지, 닭 등이 사육되는데, 특히 젖소의 사육량이 많다. 지역 특산물로 감암리에 싸리삼태기가 대량 생산되었으나 점차 생산량이 줄어드는 추세이다. 공업은 금현일반산업단지 주변으로 많은 제조업 생산 시설이 산재해 있어, 많은 농업용지가 공업용지로 바뀌었다.
교통은 면의 북쪽으로 세종포천고속도로가 경유하며, 국도 87호선과 국가지원지방도 98호선이 면의 남쪽을 지나간다. 지방도 360호선이 북쪽에서 서쪽으로 횡단하고, 시도 2호선과 시도 4호선이 분포한다.
문화유산으로 금현리에 고인돌과 이항복선생묘가 있고, 방축리에 고인돌과 화산서원이 있다.
포천시의 북서단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69.95㎢이고, 인구는 2,527명이다. 관인면 행정복지센터가 탄동리(炭洞里)에 있다.
본래 강원도 철원군 관인면 지역으로 이하리와 중리(中里), 중하리 등 8개 리를 관할하다 1895년 경기도 연천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군내면 일부와 영평군 북면의 월경리가 병합되었고, 1983년에 포천군에 편입되었다. 1916년 면 소재지가 중리로 이전했으며, 1931년에는 다시 초과리(初果里)로 옮겨 갔다. 1945년 삼팔선 이북 지역에 속했다가 1954년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의해 연천군에 편입되었다.
1983년 다시 포천군에 편입되었으며, 1989년에 부곡리(釜谷里)가 연천군 연천읍에 이속되어 현재와 같은 행정구역을 갖추었다. ‘관인’이란 명칭은 신라 후기 어진 관리들이 궁예의 학정에서 벗어나 성 밖인 이 지역에 모여 살았다는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탄동리, 삼률리(三栗里), 초과리, 냉정리(冷井里), 중리, 사정리 등 6개 법정리가 있다.
전체적으로 서고동저(西高東低)의 지형을 보인다. 면 중앙에 있는 고남산(古南山: 643.1m)을 제외하고는 산지가 주로 서쪽에 집중되어 있다. 가장 높은 지장봉을 비롯하여 화인봉(花人峰: 805m), 향로봉(香爐峰: 612.1m), 종자산이 서쪽 면 경계를 따라 북쪽에서 남쪽으로 솟아 있다. 한탄강이 용암대지의 급경사 계곡을 이루면서 면의 최북단으로부터 동쪽 경계를 따라 이어지고 남쪽 면 경계를 형성하며 흐른다. 이 외에도 냉정천(冷井川), 초과천(初果川), 건지천(乾地川), 향노천(香爐川) 등 여러 하천이 면 곳곳을 관류한다.
면 전체를 관류하는 하천이 많고 평지가 넓게 분포하여 경지면적이 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으며, 논의 면적이 밭보다 약간 많다. 주요 농산물은 쌀, 보리, 콩을 비롯하여 서류 생산량도 많다. 채소류로 수박 · 참외 · 호박 · 토마토 · 배추 · 고추 · 파, 특용작물로 들깨 · 땅콩, 과일류로 사과 · 복숭아, 산나물 등 모든 종류의 농산물이 골고루 산출되는 시의 대표적인 농업지대이다. 인삼 재배 농가와 함께 한우, 젖소, 돼지, 산양 등을 사육하는 축산농가도 있다. 과거 이 지역에는 규석과 석회석을 비롯한 여러 광산업체가 집중되어 있었으며, 주요 광산물로는 석회석, 활석, 장석, 철광석 등이 채굴되었다.
교통은 국가지원지방도 78호선, 지방도 387호선, 국도 87호선이 면 중앙을 남북으로 길게 관통하고 있다.
문화유산으로 중리에 보가산성(保架山城)과 신흥사지(新興寺址)가 있다. 특히 한탄강이 굽이쳐 흐르면서 곳곳에 장관을 이루고 있어 한탄강수변공원과 함께 많은 캠핑장이 들어서 있다.
포천시의 중남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36.17㎢이고, 인구는 9,845명이다. 군내면 행정복지센터가 구읍리(舊邑里)에 있다.
본래 포천군 지역으로, 포천군청이 자리해 군내면이라 하였고, 상성북리(上城北里)와 하성북리(下城北里), 동변리 등 8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청량면(淸凉面)의 3개 리를 병합하였다. 구읍리, 용정리(龍井里), 유교리(柳橋里), 좌의리(左儀里), 명산리(鳴山里), 직두리(稷頭里), 상성북리, 하성북리 등 8개 법정리가 있다.
남동쪽 경계에 수원산과 천주산(天柱山: 424m)을 잇는 광주산맥의 지맥이 화현면과 경계를 이룬다. 면 중앙에 일명 반월산이라 불리는 청성산이 솟아 있다. 포천천이 남서쪽에서 북쪽으로 흘러 신읍동과 경계를 형성하고, 그 지류인 구읍천, 좌의천(左儀川)이 관류하면서 평야지대와 취락지가 형성되었다. 논농사와 밭농사의 비율이 비슷하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을 비롯해 잡곡, 두류와 배추 · 고추 · 파 · 마늘 등의 채소류가 생산된다. 특히 특용작물 가운데 들깨의 생산량이 많다. 또한 전국적으로 알려진 느타리버섯 종균장이 있어 버섯 재배가 성행하며, 농가의 중요한 소득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축산업으로는 한우와 돼지, 닭을 사육하는 농가가 있으며, 제조업 분야에서는 용정일반산업단지를 중심으로 여러 제조업체가 분포해 있다.
교통은 국가지원지방도 56호선, 지방도 360호선이 면의 중앙을 통과하고, 최근에는 세종포천고속도로가 경유하고 있다. 수백 년간 포천 지역의 행정 중심지였던 관계로 조상들의 숨결이 담긴 유물과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문화유산으로는 구읍리에 포천향교와 석불입상, 미륵불상이 있으며, 구읍리 · 상성북리 · 하성북리에 걸쳐 포천 반월성이 자리한다. 포천 반월성은 신라 후기 궁예가 철원에 도읍한 뒤 신라와 후백제에 맞서면서 그의 부장이 축성한 것으로 전해지며, 성안에는 지금도 우물터가 남아 있다. 공원으로는 청성역사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면 동쪽에는 두 개의 골프장과 캠핑장이 위치한다.
포천시의 동남단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52.75㎢이고, 인구는 4,187명이다. 내촌면 행정복지센터가 내리(內里)에 있다.
본래 포천군 지역으로 죽엽산의 안쪽에 있어 내동면이라 하고 진목리(眞木里), 내리 등 7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동촌면(東村面) 일부, 가평군 상면(上面) 일부, 영평군(永平郡) 일동면(一東面) 각 일부를 합하고 내동과 동촌의 이름을 따서 내촌면으로 하였다. 1963년 화현리에 내촌면 화현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83년 화현출장소가 화현면으로 승격하여 3개 리를 이관하였다. 내리, 마명리(馬鳴里), 엄현리(奄峴里), 소학리, 신팔리(薪八里), 진목리 등 6개 법정리가 있다.
중앙 북부의 국사봉[754.9m]을 비롯해 북서부 경계의 수원산, 동쪽의 주금산, 서쪽의 죽엽산 등 고봉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다. 이 산맥의 여맥은 면 중앙까지 이어져 전반적으로 산악지대를 이룬다. 왕숙천(王宿川)과 엄현천, 진목천 등이 면 곳곳을 흐르며 일부 지역에는 평야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경지면적은 시 전체에서 가장 협소하고, 농업 형태는 논농사보다 밭농사가 우세하다. 산지가 많은 만큼 자연 조건을 활용한 복합영농이 이루어져 다양한 농산물이 생산되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과 고추 · 마늘 등의 채소류가 소량 생산되며, 배 · 복숭아 · 포도의 과일류 생산량은 많은 편이다. 특히 표고버섯 재배와 원예 단지 조성, 그리고 육림 단지 조성에 따른 잣나무 육성이 활발하다. 특히 한우와 젖소, 사슴, 토끼 등의 사육량이 시에서 상위를 점할 정도로 축산업이 발달하였다.
교통은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포천-화도)와 함께 국도 47호선, 국도 87호선이 면의 중앙을 경유하고, 지방도 325호선이 중앙에서 이어져 북서쪽으로 연결된다.
문화유산으로 소학리(巢鶴里)의 사기막에 조선시대의 백자 요지(白磁 窯址)가 남아 있다. 면내에 광릉추모공원과 함께 스키장인 베어스타운과 캠핑장 등이 분포한다.
포천시의 중서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95.93㎢이고, 인구는 1만 1258명이다. 신북면 행정복지센터가 기지리(機池里)에 있다.
본래 포천군 내북면(內北面) 지역으로 만세교리(萬歲橋里), 신평리(新坪里), 기지리 등 6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내북면과 외북면에 남면(南面)과 서면(西面)의 각 일부를 합하고 신북면으로 하였다. 1983년 청산면(靑山面)이 경기도 연천군에 이속되면서, 삼정리(三政里)와 금동리(琴洞里), 덕둔리(德屯里), 갈월리(葛月里) 등 4개 리가 신북면에 편입되었다. 기지리, 가채리(加采里), 신평리, 만세교리, 심곡리(深谷里), 계유리(溪流里), 고일리(古日里), 삼성당리(三星堂里), 삼정리, 갈월리, 금동리, 덕둔리 등 12개 법정리가 있다.
높은 산지는 면의 서쪽에 집중되어 있는데 북서쪽 경계에 종현산, 남서쪽에 국사봉[754.9m]과 포천동의 경계에 왕방산 등이 있다. 특히 면의 중앙에 덕령산(德嶺山: 350m), 하늘봉[385.4m]이 면을 동부와 서부로 양분하고 있다. 덕령산과 하늘봉 사이를 외북천(外北川)이 가로지르고, 동부에는 포천천의 물줄기가 굽이치며, 서쪽에는 수동천, 명덕천, 갈월천이 관류하면서 주변에 평야지대와 취락지를 조성하였다. 군내에서 경지면적이 가장 넓지만 산지가 많아 논농사보다 밭농사가 우세하다.
주요 농산물은 쌀을 비롯해 고구마 · 감자 등 서류와 배추 · 고추 · 들깨 등이 있으며, 한약재도 생산된다. 잣나무 단지가 넓게 분포하여 전국적인 잣 생산지로 알려져 있다. 또한 포천의 명물로 자리 잡은 인삼 재배가 활발하여 각종 인삼 가공품은 수출품으로도 각광받는다. 한우, 젖소, 돼지, 닭, 산양 등이 사육되며, 이 가운데 산양 사육은 시 전체에서 가장 활발하다. 최근에는 장자일반산업단지, 신평일반산업단지, 만세공단 등이 들어서 제조업 기반이 한층 강화되었다.
교통은 국도 43호선이 남동쪽에서 북동쪽으로 종단하고, 지방도 368호선, 지방도 379호선이 면 전체를 종횡으로 연결한다. 면 서부의 도로망으로 군도 5호선이 있으나, 주로 인구가 집중된 동부의 포천천 주변을 중심으로 도로망이 발달해 있다.
문화유산으로 가채리에 청성사와 채산사, 신평리에 용연서원을 비롯하여 인평대군치제문비와 인평대군묘및신도비가 있다. 면내에 경복대학교 포천캠퍼스를 비롯하여 포천아트밸리, 골프장, 캠핑장 등이 분포한다.
포천시의 중앙 북단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81.74㎢이고, 인구는 7,418명이다. 영북면 행정복지센터가 운천리(雲川里)에 있다.
본래 경기도 영평군 북면 지역으로 상굴리, 하굴리, 혁장리 등 9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포천군에 편입되어 영북면이 되었다. 1945년 삼팔선 이북 지역에 속했다가 1954년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따라 복원되었다. 운천리, 자일리(自逸里), 산정리(山井里), 야미리(夜味里), 문암리(文巖里), 대회산리(大回山里), 소회산리(小回山里) 등 7개 법정리가 있다.
북쪽 중앙 경계에 중군봉[277.2m], 서부에 은장산(銀藏山: 454m), 남서부에 불무산, 남동쪽 경계에 관음산 · 사향산 등 높은 산이 면 전체를 에워싸고 있다. 여기에 북부 중앙에 각흘봉(角屹峰: 434.3m)과 중앙부에 망무봉(望武峰: 294m)이 솟아 있다. 북서쪽에서 남서쪽 방향으로 흐르는 한탄강이 관인면과 경계를 이루고, 야미천(夜味川)과 자일천(自逸川), 부소천(釜沼川) 등의 하천이 면 곳곳을 관류하여 주변 유역에 넓은 용암대지와 평야를 만들어 놓았다. 논농사와 밭농사가 비슷한 비율로 이루어지며, 관개시설이 발달한 까닭에 쌀 생산량도 적지 않다.
주요 농산물은 잡곡 · 콩 · 고구마 · 감자 등의 서류, 채소류로 수박 · 토마토 · 배추 · 양배추 · 고추 · 마늘, 특용작물로 인삼과 들깨 · 땅콩, 과일류로 사과 · 배 등이 생산된다. 특히 토마토, 배추, 사과의 산출량은 다른 지역에 비해 많다. 돼지, 닭, 산양, 꿩의 사육 두수가 많으며, 양계업이 발달해 있다. 제조업은 규모가 크지 않고 분포 범위도 제한적이다.
교통은 국도 43호선이 면 중앙을 남북으로 관통하며, 국가지원지방도 78호선과 지방도 387호선이 면의 각 지역을 연결한다.
문화유산으로 자일리에 봉수지가 있으며, 한탄강 유역에 기암괴석과 절벽이 어우러져 수려한 경관을 이루어 사시사철 많은 이가 찾는다. 이 가운데 자일리 서쪽 끝에 위치한 포천 화적연은 포천8경의 하나로 손꼽힌다. 또한 산정리에는 산정호수가, 대회산리에는 한탄강세계지질공원과 가람누리문화공원이 자리한다.
포천시의 중앙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61.32㎢이고, 인구는 4,526명이다. 영중면 행정복지센터가 양문리(梁文里)에 있다.
본래 경기도 영평군 지역으로 영평 읍내가 되므로 읍내면으로 하였으며, 대사리와 광정리, 내상리 등 12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포천군 내북면(內北面) 일부를 합하고 영중면으로 하였다. 1945년 삼팔선 획정 당시 성동리(城洞里), 영평리(永平里), 영송리(永松里)가 북한 지역에 속했다가 1954년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따라 수복되었다. 양문리, 금주리, 거사리(居士里), 성동리, 영평리, 영송리 등 6개 법정리가 있다.
동쪽 경계에 관모봉, 남동쪽에 금주산, 남서쪽에 금화봉(錦華峰: 197m) 등 곳곳에 높은 준봉이 늘어서 있다. 서쪽에 영평천과 남북으로 길게 뻗은 포천천이 면 중앙부를 중심으로 큰 물줄기를 형성하면서 창수면을 거쳐 한탄강으로 들어간다. 영평천과 포천천의 유역에 경작지와 취락이 형성되어 있다. 경지 가운데는 밭이 논보다 넓다.
주요 농산물은 쌀을 비롯해 콩 등 두류의 생산량이 많고, 채소류로는 참외 · 토마토 · 배추가 풍부하다. 과수로는 사과가 재배되며, 특용작물로는 인삼이 생산된다. 산나물 출하량은 시 전체에서 가장 많다. 특히 거사리 금화봉 일대에서 채취되는 화강암은 품질이 뛰어나 가공되어 해외로 수출되기도 한다. 축산업도 활발하여 한우, 젖소, 돼지, 닭, 산양, 사슴 등이 사육된다. 또한 양문일반산업단지와 금주산공단을 중심으로 제조업 시설도 다수 입지해 있다.
교통은 국도 37호선이 남쪽에서 중앙을 통과하여 서쪽으로 이어지고, 국도 43호선이 면 중앙을 남북 방향으로 종단한다. 이 밖에 군도 9호선과 군도 15호선 및 기타 도로가 사방으로 뻗어 있다.
문화유산으로 영송리에 포천영송리선사유적, 양문리에 인흥군 묘역 및 신도비(仁興君 墓域 및 神道碑)[경기도 기념물, 2022년 지정]가 있고, 성동리에 태봉산성(胎封山城) 터가 있다. 거사리에는 낙귀정지 등이 있고, 금주리(金珠里)에 백로주유원지와 대형 골프장도 분포한다.
포천시의 동북단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112.98㎢이고, 인구는 5,569명이다. 이동면 행정복지센터가 장암리(場巖里)에 있다.
본래 경기도 영평군 주지면 지역으로 낭유리, 노곡리(盧谷里), 응암리 등 7개 리를 관할하였다. 1895년 동면이 포천군에 편입되며 둘로 나누어 남쪽은 일동면, 북쪽은 이동면이라 하였다가 이듬해에 다시 영평군의 관할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영평군이 포천군에 병합되면서, 기존 이동면 전역과 일동면(一東面) 사당리(社堂里) 일부가 통합되어 4개 리를 관할하는 이동면이 되었다. 1945년 삼팔선 이북 지역에 속했다가 강원도 철원군에 소속되었다. 1954년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따라 다시 포천군 관할이 되었다. 장암리, 도평리(都坪里), 연곡리(燕谷里), 노곡리 등 4개 법정리가 있다.
남동쪽 가평군과의 경계에는 국망봉이, 동쪽 강원특별자치도와의 경계에는 백운산이 있다. 북동부에는 광덕산과 박달봉(朴達峰, 820m), 중동부에는 가리산, 중서부에는 감투봉[500.9m], 서쪽에는 사향산, 남서쪽에는 관음산 등 높은 산지가 둘러싸고 있다. 영평천과 도평천이 산지를 따라 흘러들어 주변 유역에 일부 평지를 형성하였다. 면적은 시 전체에서 가장 넓으나 산지가 많아 경지면적은 협소하며, 농업은 밭농사와 논농사가 비슷한 비율을 차지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을 제외한 잡곡과 두류, 감자 등의 생산량이 많다. 채소류는 호박과 배추, 상추, 고추 등이 재배되며, 이 가운데 호박은 시 전체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한다. 특산물로는 고산지대에서 채취되는 각종 자연산 나물과 약초, 버섯의 산출량이 풍부하다. 축산업으로 한우 · 돼지 · 닭 사육이 이루어지는데, 이 지역은 사향노루의 서식지로도 알려져 있다.
교통은 국도 47호선이 면 중앙을 남북으로 경유하고, 국가지원지방도 78호선, 지방도 372호선이 면 곳곳을 연결한다.
문화유산으로 도평리 흥룡사 경내의 부도를 비롯해 연곡리의 동음사(洞陰祠), 도평리의 수복기념탑과 선적사지(善積寺址), 약사지(藥寺址) 등이 있다. 명승 고적으로 영평천 상류의 백운계곡이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어 있으며, 계곡 안의 백운구곡(白雲九曲)은 경관이 수려해 예로부터 시인과 묵객의 발길이 이어져 온 곳이다. 장암리에는 국망봉자연휴양림이 자리하고, 계곡을 따라 여러 캠핑장이 분포한다.
포천시의 동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83.39㎢이고, 인구는 8,827명이다. 일동면 행정복지센터가 기산리(機山里)에 있다.
본래 경기도 영평군 조량면 지역으로 길명리(吉明里), 유동리(柳洞里), 기산리 등 7개 리를 관할하였다. 1895년 동면이 포천군에 편입되며 둘로 나누어 남쪽은 일동면, 북쪽은 이동면이라 하였다. 1896년(고종 33) 13도제 실시로 다시 영평군의 관할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영평군이 포천군에 이속되면서 일동면 대부분과 동촌면(東村面) 일부가 합쳐져 6개 리를 관할하는 일동면이 되었다. 1945년 삼팔선이 생기자 수입리(水入里)의 일부가 이북 지역에 속했다가 1954년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따라 수복되었다. 기산리, 길명리, 유동리, 화대리(禾垈里), 사직리, 수입리 등 6개 법정리가 있다.
동쪽 군계에 강씨봉, 남동쪽에 청계산, 남쪽에 원통산(圓通山: 567m), 북서쪽 면계에 관음산 · 관모봉, 서쪽에 금주산 등 높은 준봉들이 면 전체를 에워싸고 있는 형세이다. 하천으로 사직천(社稷川), 수입천(水入川), 길명천(吉明川) 등이 곳곳을 관류하고 남동쪽에 청계저수지가 조성되어 있다.
논농사가 밭농사보다 약간 우세하여 주곡인 쌀의 생산량이 비교적 많다. 또한 고구마와 감자, 수박, 호박, 토마토, 배추, 고추 등 채소류의 생산도 풍부하다. 특용작물로는 인삼 재배가 활발하며, 산나물 채취량도 많다. 축산업으로는 한우, 젖소, 돼지, 닭 등이 사육되며, 특히 한우 사육 규모는 시내에서 가장 많다.
교통은 국도 47호선이 면 중앙을 남북으로 길게 이어지고, 국도 37호선이 남부에서 중앙과 남서쪽을 경유하면서 면의 서쪽으로 연결된다. 이 외에 군도 10호선과 군도 11호선, 군도 15호선, 군도 17호선 등 많은 도로망을 갖추고 있다.
문화유산으로는 수입리에 양사언(楊士彦: 1517~1584)의 묘와 길명사(吉明祠)가 있으며, 사직리 · 기산리 · 수입리 일대에는 고인돌군이 분포하고 하류 지역에는 와룡암이 있다. 또한 면의 남쪽에는 두 곳의 골프장이 자리한다.
포천시의 서북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71.47㎢이고, 인구는 2,025명이다. 창수면 행정복지센터가 주원리(注院里)에 있다.
본래 경기도 영평군 하리면 지역으로 오가리(伍佳里), 사청리 등 4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남면(南面)과 서면(西面)의 대부분과 포천군 외북면(外北面) 삼성당리(三星堂里) 일부를 합하고 영평8경의 하나인 창옥병(蒼玉屛)과 금수정의 이름을 따서 포천군 관할의 창수면으로 하였다. 1945년 삼팔선이 생기자 주원리 일부와 오가리, 고소성리(姑蘇城里), 신흥리(新興里), 운산리(雲山里)가 이북 지역에 속했으나 1954년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따라 수복되었다. 같은 해 면사무소가 추동리(楸洞里)에서 주원리로 이전되었다. 신흥리, 운산리의 일부가 주민 미거주 지역으로 남아 있다. 주원리, 추동리, 오가리, 가양리(可養里), 고소성리, 운산리, 신흥리 등 7개 법정리가 있다.
면의 북쪽 중앙에 보장산(寶藏山: 555m)이 주봉으로 우뚝 솟아 있고, 남서쪽에는 종현산의 지세가 면 내부로 뻗어 있다. 북쪽에서 흐르는 한탄강이 연천군과 경계를 만들고, 면 중앙을 관통하는 영평천이 면을 강남과 강북 지역으로 갈라놓았다. 그 지류인 오가천, 추동천 등이 관류하면서 주변 지대에 경작지와 거주지가 분포한다. 경지면적 중 밭의 면적이 논보다 약간 우세하며, 미곡 생산량은 많지 않다.
주요 농산물로 잡곡 생산량이 많으며 두류와 서류의 재배도 활발하다. 채소류로 수박 · 참외 · 고추, 특용작물로 들깨 · 땅콩 · 약초 재배가 성하다. 임산물로 잣나무와 밤나무 단지가 있고, 가축으로 한우 · 젖소 · 돼지 · 닭 · 오리 등의 사육이 이루어진다. 특히 청둥오리 사육과 양돈업이 번성하여 농가소득에 도움을 준다.
주요 교통로와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제조업 생산 시설이 많지 않다. 금과 은을 캐는 광산업체가 있었다.
교통은 국도 37호선, 국도 87호선이 영평천과 병행하여 면 중앙을 횡단하고, 국가지원지방도 78호선이 면을 남북으로 잇는다. 이 외에 시도 7호선과 시도 9호선, 시도 13호선 등 여러 도로망이 분포한다.
문화유산으로 주원리에 옥병서원, 추동리에 고인돌과 청해사가 있다. 이 밖에 고소성리에 고소성(姑蘇城)의 흔적이 있다. 오가리에는 포천8경에 꼽히는 병풍을 두른 듯한 반달형의 기암절벽인 창옥병과 금수정지가 있다. 면 곳곳에 캠핑장 등이 분포한다.
포천시의 동남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43.57㎢이고, 인구는 2,413명이다. 화현면 행정복지센터가 화현리(花峴里)에 있다.
본래 포천군 동촌면(東村面) 지역으로 화현리, 지현리(芝峴里) 등 4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내동면 전체, 동촌면 일부, 가평군 상면(上面)과 영평군(永平郡) 일동면(一東面) 각 일부를 합하고 내촌면으로 하였다. 1963년 화현리에 내촌면 화현출장소가 설치되어 3개 리를 관할하였다. 1983년 화현출장소가 화현면으로 승격하였다. 화현리, 지현리, 명덕리 등 3개 법정리가 있다.
북동쪽 경계에는 원통산이, 남동쪽 군계에는 운악산이라 불리는 현등산이, 남서쪽 경계에는 수원산이 자리해 산줄기를 이루고 있다. 수동천과 설악천(雪岳川)이 면 곳곳을 관류하며 일부 평지를 형성하였다. 경지면적은 많지 않고, 농업은 논농사가 밭농사보다 다소 우세하지만 쌀 생산량은 많지 않다.
주요 농산물은 두류와 서류 외에 수박 · 호박 · 파 등 채소류, 사과 · 배 등 과일류, 특용작물로 참깨 · 인삼, 그리고 산나물 등이 산출된다. 특히 시 전역에서 버섯 출하량이 많은 대표적인 곳이다. 축산농가에서는 젖소, 닭, 산양, 사슴, 오리 등이 주로 사육되는데, 특히 오리 사육 두수가 많다. 제조업을 비롯한 공업 발전은 더딘 편이다.
교통은 국도 37호선이 남북 방향으로 경유하고, 면의 북서부를 연결하는 군도 19호선이 있다.
화현리의 현등산에 홍폭(虹瀑)[무지개 폭포]이 있어 장관을 이루는데, 왕건에게 쫓기던 궁예가 이곳에서 최후를 마쳤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명덕리(明德里)와 지현리에 대규모 골프장이 있고, 화현리에는 국립운악산자연휴양림이 있어 주변에 많은 캠핑장이 들어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