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시 ()

대동여지도 중 경기도 포천 부분
대동여지도 중 경기도 포천 부분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경기도 동북단에 위치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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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기도 동북단에 위치한 시.
개관

동쪽은 강원도 화천군, 경기도 가평군, 서쪽은 연천군 · 동두천시 · 양주시, 남쪽은 의정부시 · 남양주시, 북쪽은 강원도 철원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7°05′∼127°27′, 북위 37°36′∼38°11′에 위치한다. 면적은 826.68㎢이고, 인구는 15만 5192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11개 면, 2개 행정동(6개 법정동), 251개 행정리(82개 법정리)가 있다. 시청은 경기도 포천시 신읍동에 있다.

자연환경

광주산맥의 지맥이 지나고 있어 동북쪽에는 500∼1,000m의 산지가 발달하고 있다. 대체로 산지가 많다. 동쪽에는 광덕산(廣德山, 1,046m) · 백운산(白雲山, 937m) · 국망봉(國望峰, 1,168m) · 강씨봉(姜氏峰, 830m) · 현등산(縣燈山, 936m) · 수원산(720m) · 주급산(814m) 등이 화천군 · 가평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특히, 서쪽에는 지장봉(877m) · 종자산(634m) · 종현산(689m) · 왕망산(737m) · 해룡산(667m), 남쪽에는 용암산(472m) · 운산산(200m), 북쪽에는 명성봉(鳴聲峰, 477m) · 종근봉(285m)이 철원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중앙에는 불수산(669m) · 관모봉(584m) · 금주산(569m)이 곳곳에 솟아 있다.

주요 수계는 시의 중앙을 흐르는 포천천인데 이 하천은 수동천 · 영평천과 합류하면서 서류하여 한탄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서북단을 흐르는 한탄강은 주동천 · 명덕천 등과 합류하면서 서류하여 연천군으로 흘러 들어간다. 그리고 한탄강과 포천시의 양안에는 넓은 하안 평야가 발달하고 있다.

하천 유역에는 충적토가 산지에는 회색토 · 편마암토가 분포하고 있다.

연평균기온은 10.5℃, 1월 평균기온 -7.3℃, 8월 평균기온 25.7℃이며, 연강수량은 1,300㎜이다.

역사

한탄강 · 영평천 · 포천천유역의 관인면 중리 · 사정리, 영북면 자일리 · 운천리, 신북면 금주리, 영중면 양문리 · 성동리 등지에서 여러면석기 · 찍개 · 밀개 등의 유물이 발견되어 이 지역에는 이미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신석기시대유물은 영중면 영송리와 관인면 중리유적에서 빗살무늬토기편이 발견되었다.

청동기시대유적은 분포밀집도가 급격히 증가하여 가산면 금현리와 자작동, 창수면 추동리, 일동면 수입리 · 기산리, 포천읍 만세교리 등지에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으며, 반달칼 · 홈자귀 · 가락바퀴 · 민무늬토기 등이 발견되었다.

초기철기시대의 유적으로는 중리 · 영송리 · 자작동유적이 있으며, 토기와 갈돌 · 갈판 등이 발견되었다. 서기전 221년경인 삼한시대 전후에는 진한의 전신인 진국(辰國)의 북방 경계에 위치하여 한왕(韓王) 준(準)으로부터 위만조선 말기에 걸쳐 그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서기전 108년 한사군 때에는 낙랑(樂浪)의 동남부에 위치하여 그 영향권에 있었으며, 30년경에는 동예와 진한의 접경 지역이었고, 3세기 중엽부터 5세기 중엽에 이르는 동안에는 백제의 영향권에 들었다.

그 뒤 475년(장수왕 63)고구려에 복속되어 마홀군(馬忽郡, 일명 命旨)과 양골현(梁骨縣)이 설치되었다가 통일신라에 들어와 757년(경덕왕 16)마홀군이 견성군(堅城郡)으로 개칭되었고, 양골현은 동음현(洞陰縣)으로 바뀌어 견성군의 영현이 되었다.

신라 하대에는 원주를 근거로 세력을 확장한 양길(梁吉)의 세력권에 들었고, 뒤 이어 태봉의 영역에 속했으며 이곳의 수장(守將)이 고려에 귀부함으로써 왕건의 지지기반이 되었다.

고려 초에 견성군이 포주(抱州)로 개칭되었고 995년(성종 14)에 단련사(團練使)가 두어졌다가 1005년(목종 8)에 폐지되었으며, 1018년(현종 9)에는 양주(楊州)의 속현이 되었다. 한편, 동음현도 이 해에 동주(東州 : 지금의 鐵原)의 속현이 되었다. 1106년(예종 1)과 1172년(명종 2)에 각각 동음현과 포주에 감무(監務)가 두어졌다.

1269년(원종 10)동음현이 권신 임연(林衍) 등의 반란을 진압한 위사공신(衛社功臣) 강윤소(康允紹)의 내향(內鄕)이라 하여 영흥현(永興縣)으로 승격되었고 현령이 파견되었다. 그리고 1390년(공양왕 2)에는 경기(京畿)의 확대에 따라 양광도(楊廣道)에 속해 있던 포주가 경기좌도로 이관되었다.

조선 초인 1393년(태조 2)영흥현이 영평현(永平縣)으로 개칭되었으며, 1413년(태종 13)에는 포주가 포천현으로 개칭되면서 현감이 파견되었다. 1618년(광해군 10)에 포천현과 영평현이 합쳐져 영흥도호부(永興都護府)로 승격되었고 경기감영이 두어지기도 했으나, 1623년(인조 1)에 다시 포천현과 영평현으로 분리되었다.

1895년(고종 32)에 포천현과 영평현이 모두 군(郡)으로 승격되었으며, 1914년영평군이 포천군에 병합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이 지역에서는 3월 29일부터 4월 5일까지 여덟 차례에 걸쳐 시위운동을 벌였다. 이 때 가산면의 총책으로 시위군중을 이끌고 소흘면 주재소를 습격하다가 순국한 최석휴(崔錫休)를 비롯하여, 만세시위를 주동하다 옥고를 치른 김호훈(金鎬勳) 등이 독립유공자로 포상되었다.

또한, 근대의 인물로 한말 위정척사론(衛正斥邪論)의 거두이며 의병장인 최익현(崔益鉉), 광복단원으로 활약한 최면식(崔勉植),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한 이규채(李圭彩), 의열단원으로서 만주에 해림신창학교(海林新彰學校)를 세운 조영원(趙永元), 대한독립단원으로 활약한 강지형(姜芝馨) 등이 있다.

1945년 광복과 더불어 영북 · 이동 · 청산 · 창수 · 영중 등 5개 면 전역과 일동면 일부가 38도선 이북으로 이 군에서 제외되었다가 954년 10월1 관내 12개 면 88개 리가 완전 수복되었다. 6·25전쟁 초기 피아간에 가장 치열한 반격전을 벌였던 곳으로, 특히 만세교전투(萬歲橋戰鬪)와 반공애국청년들로 구성된 소리봉부대(蘇利峰部隊)의 반공유격투쟁은 유명하다.

1963년내촌면에 화현출장소(花峴出張所)가 설치되었고, 〉1973년 7월 1일포천면 탑동리가 양주군 동두천읍에 편입되었으며, 1979년 5월 1일에는 포천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3년 2월 15일연천군 관인면 일원이 이 군에 편입되었고, 청산면의 .삼정리 · 갈월리 · 금동리 · 덕둔리 등 4개 리가 신북면에, 청산면의 초성리 · 대전리 · 장탄리 · 궁평리 · 백의리 등 5개 리가 연천군으로 편입되면서 청산면이 연천군 관할로 되었으며, 화현출장소가 화현면으로 승격되었다. 1989년 1월 1일에는 관인면 부곡리가 연천군 연천읍으로 편입되었으며, 1996년 2월 1일소흘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2003년 10월 19일 도농복합시로 승격되면서 포천시가 되었고, 포천읍이 포천동과 선단동으로 분리되어 1개 읍 11개 면 2개 동으로 구성되었다. 창수면 일부지역(신흥리와 고소리성 일부)은 군작전상 입주가 허용되지 않은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유물 · 유적

선사시대의 유물로는 영중면의 포천영송리선사유적(경기도 기념물, 1994년 지정)과 1983년 경기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가산면의 포천금현리지석묘를 비롯하여 자작동, 일동면 사직리 · 기산리 · 수입리, 창수면 추동리, 가산면 방축리, 소흘읍 송우리 등지에 지석묘가 산재해 있다.

삼국시대 유적으로는 군내면의 포천구읍리반월성지(사적, 1998년 지정)와 소흘읍 고모리의 고모리성지(경기도 기념물, 2002년 지정)가 있다.

불교 유산으로는 1995년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어룡동에 포천석조여래입상이 있고, 이동면 도평리의 흥룡사에는 부도 2기가 남아 있다.

유교 유산으로는 신북면 신평리에 용연서원(경기도 유형문화재, 1976년 지정), 가채리에 청성사(경기도 유형문화재, 1975년 지정)와 채산사(경기도 기념물, 1976년 지정)가 있다. 또한 창수면 추동리에 청해사(淸海祠), 가산면 방축리에 화산서원(경기도기념물, 1975년 지정), 군내면 구읍리에 포천향교(경기도 문화재자료, 1983년 지정) 등이 있다. 이외에 소흘읍 무봉리에 사육신의 한 사람인 유응부(兪應孚)의 제단인 충목단(경기도 기념물, 1987년 지정)과 유허비(遺墟碑)가 있다.

포천의 산수를 상징하는 포천팔경의 하나인 낙귀정지(樂歸亭址)가 영중면 거사리에 있고, 창수면 오가리의 금수정지(金水亭址)에는 주춧돌 8개가 남아 있다.

묘소로는 가산면 금현리에 이항복선생묘(경기도 기념물, 1975년 지정), 설운동에 서성선생묘(徐渻先生墓, 경기도 기념물, 1976년 지정)가 있다. 또한 신북면 신평리에 효종의 어필로 된 인평대군치제문비(경기도 유형문화재, 1978년 지정)와 인평대군묘 및 신도비(경기도 기념물, 1992년 지정)가 있다.

창수면 추동리에 청흥군이중로정사공신교서(보물, 1993년 지정)가 있으며, 역대 현감의 선정비군(善政碑群)이 군내면 구읍리의 청성산(靑城山, 일명 半月山) 아래에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군내면 직두리의 포천직두리부부송(천연기념물, 2005년 지정)가 있다.

무형유산으로는 2000년 경기도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로 지정된 가산면 방축리의 포천메나리와 2002년 경기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영북면 자일리의 풀피리가 있다.

전적기념물로는 내촌면 진목리에 육사생도 6·25참전기념비, 영중면 성동리에 북진통일탑(北進統一塔), 일동면과 이동면 사이에 남북 분단의 비극을 상징하는 삼팔교(三八橋)가 있다. 그리고 1954년 10월 15일 6·25전쟁 후 잃었던 땅을 다시 찾아 원주민을 입주하게 한 기념으로 건립한 수복기념탑(收復紀念塔)이 이동면 도평리에 있다.

교육 · 문화

최초의 교육기관으로는 군내면 구읍리에 1173년(명종 3) 창건된 포천향교가 있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594년(선조 27) 중건하여 여러 차례의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영중면 영평리에 영평향교(永平鄕校)가 있었으나 1938년 철폐되었다.

서원으로는 가산면 방축리에 1635년(인조 13) 건립되어 1660년(현종 1) 사액된 화산서원, 신북면 신평리에 1691년(숙종 17) 건립되어 그 이듬해 사액된 용연서원이 있다. 또 창수면 주원리에는 조선 선조 때의 문신인 박순(朴淳)이 노년에 낙향하여 여생을 이곳에서 보내고 죽자, 선비들이 그의 높은 덕과 깊은 학문을 기리기 위해 1649년(인조 27)에 세운 옥병서원(玉屛書院)이 있다.

신교육기관의 효시로는 「보통학교령」이 실시될 무렵인 1906년이철용(李哲鎔)이 학교의 면모를 갖추어 건립한 화야의숙(華野義塾)을 들 수 있다. 이어 1910년영평보통학교, 1911년포천보통학교, 1920년송우보통학교, 1923년일동보통학교, 1924년영북보통학교가 각각 설립되었고 1930년대에 들어와 각 면마다 보통학교가 설립되었다.

광복 후 38도선으로 인해 이 시가 남북으로 양분됨으로써 영평 · 영북 · 이동의 세 초등학교를 공산치하에 둔 채 새 교육이 시작되는 수난을 겪기도 하였으나 휴전선이 북상되어 다시 영평 · 이동 두 개 학교를 되찾게 되었다. 문화행사로는 반월문화제와 명성산갈대축제를 하고 있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1개교, 중학교 14개교, 고등학교 7개교가 있으며, 대진대학교와 차의과학대학교(구 포천중문의과대학), 경복대학교가 있다.

민속

포천 지역의 민속놀이는 거의 세시풍속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나, 이동면에서 전승되고 있는 지경놀이는 이 지방의 중요한 민속놀이로 대표된다.

이 지경놀이는 우리 조상들이 집을 지을 때 마을사람들이 집터를 다지고 주춧돌을 놓으며 공동일을 하는 과정을 놀이화한 것이다. 참여 인원은 농악 · 소고 · 지경 등 72명이며 기둥과 오색천을 소품으로 하여 집을 짓고 난 뒤에 가내의 무사함을 빌고 악귀를 축출하며 지신(地神)의 가호를 받아 복을 누리도록 축원하는, 상부상조정신이 담긴 놀이이다.

이 지역의 동제로는 화현면 명덕리 산신제와 내촌면의 산신제가 현재 행해지고 있다. 명덕리 산신제는 이 마을의 진산(鎭山)인 수원산(水源山) 산신령에게 봄 · 가을에 치성을 드리는 것으로 제주는 4명이며 약 1주일 전에 제삿날을 정하고 제주를 뽑는다.

제주는 나이가 많고 덕망이 높은 원주민 중에서 엄선하며 제물은 6·25 전까지는 황소 한 마리를 산제당 주변에서 잡아 소머리와 족(足) 4개, 내장 · 안심 · 등심 등을 썼는데 지금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제물로 쓸 고기를 사다가 지내고 있다. 제삿날이면 각 제관은 목욕재계하고 옷을 깨끗이 입으며 주변을 청결하게 한다.

내촌면의 산신제도 1년에 한 번 지내는데 음력 7∼9월의 3개 월 중에서 동네의 결의로 정한다. 시간은 정오를 택하고 제관은 역시 동민 중에 나이가 많고 덕망이 있는 노인으로 1년 동안 가정이 무고하고 부정이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

제수는 소나 돼지를 통째로 쓰거나 형편에 따라 소머리나 돼지머리의 생것을 쓰기도 한다. 그리고 주과포혜를 곁들이며, 장소는 동네에서 가까운 정결한 곳이나 큰 정자나무 아래에서 행하고 있다. 이 밖에도 화현면의 지현리와 화현리에서도 동네별 또는 합동으로 지내는데 절차와 제물은 명덕리의 산신제와 거의 같다.

설화 · 민요

이 지역에 전승되고 있는 「낙암전설(落巖傳說)」은 조선조 인조 때 인물인 정창국(鄭昌國)이 그의 부인과 함께 이 마을(신북면 기지리)에 살다가 부인을 남겨두고 병사하자, 부인 유씨(兪氏)가 분묘 앞에 막(幕)을 짓고 주야로 애절해하며 남편의 명복을 빌고 있었다.

때마침 병자호란으로 호군(胡軍)이 쳐들어오자 욕을 면하기 위해 피난하지 않고 분묘 옆 바위에서 몸을 날려 남편의 뒤를 따랐다는 내용의 이야기다. 그리하여 그 바위의 이름이 낙암이 되었고, 동네 이름도 낙암동(落巖洞)이라 일컬어졌다는 이야기가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청학동전설(靑鶴洞傳說)」은, 옛날 이곳(지금의 영중면 금주리)에 살았던 어떤 가난한 효자가 아버지의 시신을 등에 지고 매장을 하기 위하여 자리를 잡고 땅을 한 괭이 파니까 청학 한 마리가 슬프게 울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 효자는 그 자리에 산소 쓰기를 단념하고 마을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한 것이 구전되어 내려오는 것이다.

「화적연전설(禾積淵傳說)」은 어느 날 한 늙은 농부가 삼년 가뭄에도 비 한방울 내리지 않는 것을 원망하여 이 연못가에서 “하늘도 무심하지, 용도 3년을 두고 낮잠만 자는가!”하고 탄식했더니, 갑자기 수면으로부터 용이 나와 하늘로 비상하더니 다음날부터 비가 내려 그 해 풍년이 들었다는 내용의 이야기이다. 그 때부터 이 지방에 가뭄이 들면 이 화적연에서 기우제를 지내는 풍습이 생겼다고 전해진다.

이 밖에 원효대사(元曉大師)의 일화가 얽혀 있는 「원효목바위전설」, 고려 태조의 왕녀 몸에서 나온 태(胎)를 태운 재를 묻었다는 「태봉산전설(胎峰山傳說)」, 백성들의 인심을 얻지 못해 쫓겨나야 했던 태봉국궁예의 이야기가 얽혀 있는 「무지개폭포전설」등이 전해지고 있다.

이 고장에 구비전승되는 민요는 노동요를 비롯해서 타령요 · 자장가 · 탄요 등 고르게 있으나 주류는 노동요이다. 그 중에도 논매기노래와 밭갈이노래가 중심인데 이는 이 지방이 내륙 산간지방으로 논농사와 밭농사가 고르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지방의 향토색을 잘 반영하는 대표적인 것으로는 「메나리」(논매기소리) · 「자장가」 · 「밭갈이소리」 · 「제전(祭典)」 · 「영평팔경가(永平八景歌)」 등을 들 수 있다.

그 중 「메나리」는 “들려주소 매어주소/이논배미 들려주소/이논배미 매어주면/준치자반 담그리라/…….”와 같다. 가락이 단조로우나 힘차고 가사는 풍년기원의 내용뿐만 아니라 순박한 농민의 소망이 소박하게 잘 표현되고 있으며 4음2음보의 형식이다.

특히 이 지역의 향토색을 가장 잘 반영하는 「영평팔경가」를 소개하면 “화적연에 벼를 베어/금수로 술을 빚어/창옥병에 담아놓고/와룡말 치켜타고/백운암 찾아가니/청학은 간데없고/백로만 날아든다/장암에 고요히 쉴까.”와 같다. 포천군과 병합된 영평군의 팔경으로 꼽히는 지명에 대해 읊은 노래로 가락은 느리나 우아하다.

그리고 민속놀이요인 「제전」도 이 고장 특유의 노래로 그 일부를 소개하면 “벽오동풍에 절일을 당하여/임의 분묘를 찾아가서/분묘앞에 황토요/황토위에 제석 깔고/제석위에 제면지 펴고/제면지 위에 상간지 펴고/차려간 음식 벌여놀제/우병좌면 홍동백서/좌포우혜 오기탕 실과를/전자우전으로 벌여놀제/…….”와 같다. 이는 임의 묘에 찾아가서 제사지내는 과정을 읊은 해학적인 노래이다.

그리고 자장가 중에는 「밤노래」가 유명한데 돈 한 푼을 주워서 밤 한 말을 사다가 삶은 것을 쥐가 다 물어가고 한 톨만 남아 온 가족이 나누어 먹되 알맹이는 너와 내가 먹는다는 설화민요로 해학성의 극치를 이룬 음영민요의 백미이다.

산업 · 교통

전 토지의 69.1%가 임야이고 경지는 17.6%로 경지 중 논 5,239㏊, 밭 5,865㏊로 논과 밭의 비중이 비슷하다. 주요 농산물로 쌀 이외에 감자 · 콩이 생산되고 채소류로 무 · 배추 · 고추 · 파 · 오이 · 수박 · 참외, 특용작물로 참깨 · 들깨 · 황기 · 땅콩, 과실류로는 사과 · 포도 · 배 등이 생산된다. 목축업으로 젖소 · 닭 · 돼지 등이 사육되고 있다.

산지가 많아 임산물이 풍부한데 주요 임산물로 잣 · 밤 · 대추 · 도토리 · 표고버섯이 생산된다. 특히 잣은 경기도의 가평 다음으로 많이 생산되고 있다. 농가 인구는 전체 인구의 18.2%이다. 최근 농가 인구가 계속 격감하고 있는 반면에 제조업인구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제조업 인구는 전체 인구의 14.9%이다. 주요 광산물은 석회석 · 고령토 · 장석 등이 많이 생산되고 있다. 주요 제조업은 섬유공업 · 비금속공업 · 조립금속공업 · 식료품공업이 발달하고 있다. 특히 식료품공업 중 포천막걸리는 백운동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로 빚어 독특한 미각을 자아내어 전국적으로 알려져 있다.

상업시설로 정기 시장은 신읍장이 5·10일, 송우장이 4·9일 이외에 운천장 · 내리장 · 기산장 · 이동장 · 관인장이 있었으나 점차 쇠퇴하고 있다. 그리고 포천 우시장은 예로부터 매매량이 많기로 유명했으나 점차 쇠퇴하고 있다. 포천읍에는 상설 시장이 열리고 있다. 산지가 수려하고 맑은 물, 그리고 목축업의 발달로 백운동 계곡에는 갈비집이 밀집되어 있어 주말과 휴일에는 많은 관광객이 이곳에 모인다.

도로는 국도 4차선으로 확장된 43호선이 군의 중심부를 서남∼동북진하고 국도 37호선이 시의 중심부를 동진하여 일동에서 국도 47호선과 분기한다. 37호선은 남진하고 국도 47호선은 국도 43호선과 나란히 북진하고 있다. 교통은 남북간은 잘 발달했으나 동서간의 교류가 불편하고 면과 면등 지역간의 교류가 불편하다.

관광

경기도의 북동부 끝에 있어 주변의 가평 · 양주 · 연천 · 철원 · 의정부 등지와 서로 연계성을 갖는 관광지로 발달되어 있다. 주위에는 광주산맥에 발달한 국망봉 · 포천설악산 · 홍성산 · 불무산 · 명성산 등 구릉성 산지가 연봉을 이루면서 주위를 둘러싸고 있으므로 산악경관이 빼어나 계곡을 위주로 한 산악관광지의 분포가 많다.

하천은 북쪽으로 흐르면서 한탄강과 합류하여 하천 주변에 많은 자연관광자원을 발달시키고 있다.

포천은 옛 포천군과 영평군이 합쳐져 고구려 때는 마흘군이 되었다가 신라 때에는 견성군으로 고쳐졌다가 고려 초에는 포주로 개명되었다. 목종 8년에는 혁파되었고 현종 9년에 와서는 양주땅에 속했다가 그 후 여러 차례의 변혁을 거쳐 1895년에 포천군이 되었다.

타 지역에 비하여 역사 문화적 관광지보다는 자연경관이 수려하여 곳곳에 피서 관광지가 분포되어 있다. 특히 포천시 영북면에 위치한 산정호수는 옛부터 관광지로 유명하며, 포천시 이동면의 백운산 기슭의 백운동계곡은 피서관광지로 개발되어 있다.

또한 이동면에 위치한 나산골프장과 눈썰매장은 겨울 관광명소로 알려져 있으며 온천장도 개발되어 새로운 관광명소가 되고 있다. 최근 들어 백로주 유원지에는 콘도미니엄을 비롯한 관광위락시설이 개발되면서 수도권 시민의 휴양관광지가 되었다.

그 외의 중요한 관광지로서는 남양주와 인접해 있는 포천시 소흘읍의 광릉임업시험장이 있고, 산정호수를 끼고 있는 명성산과 그 주변에는 비선폭포 · 등룡폭포가 있어 시원한 계곡과 장쾌한 물줄기가 도심에 찌든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어주고 있다.

또한 백운산 기슭에는 신선이 내려와 목욕을 즐겼다는 이동면의 백운동 계곡과 광덕계곡은 옥녀탕을 비롯한 명소와 수목이 우거진 휴식공간을 거느리고 있어 여름이면 관광객들로 초만원을 이루고 있다.

그 외에 포천시에 속한 광릉수목원과 삼림보호 및 임업연구의 요람지인 자연학습장을 비롯한 가리산 · 관음산 · 구룡산 · 사향산 · 삼성산 · 왕방산 · 종자산 · 종현산 · 선녀바위와 12구곡(초정리∼덕둔리 7㎞계곡) · 주금산 · 죽엽산 · 청계산, 영증면의 풍혈산유원지, 하판리의 현등사 등이 관광명소로 각광 받고 있다.

또한 이동면 도평리소재 한일탁주에서 생산되는 이동막걸리는 식도락관광으로 인기가 높다. 영평8경을 비롯하여 이항복묘 · 서성묘 · 화산서원 · 금수정 · 화적연 · 와룡암 · 청학동 · 선유담 · 반월성 · 용연서원 등도 관광지로 유명하다.

특히 영평8경이란 임진강과 영평천을 끼고 옥수같은 맑은 물이 울창한 숲과 잘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며 계곡의 기암괴석과 함께 절경을 이루고 있는 관광지이다. 임진강 상류 영북면 일대는 볏집을 쌓아 올린 것 같은 볏가리소라고 하는 화강암 절벽을 이룬 호수가 물위에 솟아 있어 장관을 이룬다.

또한 창수면 오변에는 360년 전에 세워졌다는 은행나무로 지은 정자가 있으며, 영증면 금주리의 병풍 암석 절벽과 창수면 오가리의 기암괴석들이 영증면 거사리의 백로주 주변 정자터와 함께 8경의 경치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수도권 관광객들에게는 가장 좋은 곳이다.

읍 · 면
  1. 소흘읍(蘇屹邑)

시의 서남단에 위치한 읍. 면적 46.28㎢, 인구 4만 7495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신읍동이다.

본래 포천군 지역으로 소흘산면이라 했는데 1895년(고종32)에 외소면 · 내소면으로 갈라져 외소면은 이동교 · 송우 · 무림 등 8개 리, 내소면은 이가팔 · 초가팔 등 6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2개 면과 가산면(加山面) 일부가 합쳐져 9개 리로 개편되었고 소흘면이 되었다가 1996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산지로는 북중앙에 태봉산(胎峰山), 동쪽 경계에 죽엽산(竹葉山, 601m), 남단에 운악산(雲岳山) · 용암산(龍巖山, 477m) 등이 솟아 있고, 서부에는 천보산(天寶山)의 줄기가 뻗어 있다. 포천천의 지류가 북으로 흘러 그 유역에 평야가 형성되어 있는데, 이가팔리에 위치한 ‘왕뎅이 벌’은 옛부터 군의 상답(上畓)이라 일컬어지던 곳이다. 논농사가 밭농사보다 다소 우세한 지역이다.

주요 농산물로는 미곡이며 특용작물로 참깨 · 들깨, 채소류로 고추 · 파 · 마늘, 과일류로 배 · 포도 등이 생산되는데, 특히 배의 생산량은 군 전체의 1/2에 해당할 정도로 많다. 한우 · 젖소 · 돼지 · 사슴 등을 사육하는 축산농가도 있다.

면 소재지인 송우리는 경원가로(京元街路)의 중심지로서 옛날부터 동대문 밖으로는 제일 큰 규모의 시장이 열렸으며, 지금도 4·9일에 5일장이 선다. 광공업으로 고령토와 장석을 채굴하는 2개의 광산이 있다. 기업체와 공장이 모여들어 인구가 급증하는 추세이다.

교통은 43번 국도가 면 동부를 길게 종단하고, 314번 지방도가 남단을 횡단하고 350번 지방도가 서부 지역의 교통편의를 돕는다. 이 외에 1·2번 시도 등이 각지를 연결하는 등 잘 포장된 도로망이 사방으로 뻗어 있다. 문화유적은 무봉리에 충목단(忠穆壇), 이동교리에는 용상동(龍翔洞)과 ‘비는 돌고개’라는 뜻인 축석령(祝石嶺)이 있다. 송우리에는 태봉(胎峰)이 있다.

송우(松隅) · 이동교(二東橋) · 무림(茂林) · 이곡(梨谷) · 직동(直洞) · 고모(古毛) · 이가팔(二加八) · 초가팔(初加八) · 무봉(茂峰) 등 9개 리가 있다.

  1. 가산면(加山面)

시의 남부 중앙에 위치한 면. 면적 35.86㎢, 인구 8,290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마산리이다.

본래 포천군 지역으로 화산(花山)이 있으므로 화산면(花山面)이라 하여 후평 · 마산 · 서원 등 12개 리를 관할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청량면(淸凉面)의 일부와 내소면의 일부가 병합되어 가산면이 되었다.

남동쪽 경계에 국사봉(國師峰, 547m), 남부에 죽엽산 줄기부가 면내로 뻗어 있다. 특히 북서부의 화봉산(華峰山, 182m)은 평탄한 평야에 부채를 편 형상이며 옛부터 영산(靈山)이라 일컬어 왔다.

북에서 서쪽 방향을 지나는 포천천이 면 경계를 형성한다. 이 밖에 면 곳곳을 관류하는 우금천(友琴川) · 금현천(金峴川) · 고모천(古毛川) 유역에 농사에 적당한 기름진 충적평야가 펼쳐져 있다. 전체면적 대비 경지면적이 넓은 편이며, 논농사가 밭농사보다 압도적으로 우세한 전형적인 농촌지역이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의 생산량이 군 전체에서 단연 독보적이며, 배추 · 시금치 · 고추 등의 채소류도 많이 난다. 과일류로 ‘가산포도’로 알려진 포도의 생산량이 군내 1위를 점하고 특산물로 인삼을 들 수 있다. 가축은 한우 · 돼지 · 닭 등이 사육되는데, 특히 젖소의 사육량이 많다.

공업은 중소기업체가 다수 위치하여 큰 소득원이 되고 있다. 지역 특산물로 감암리에 전통이 깃든 싸리삼태기가 대량 생산되었지만 현대화 추세에 밀려 점차 생산량이 줄어드는 추세이다.

교통은 316번 지방도가 북쪽에서 서쪽으로 횡단하면서, 남쪽에서 북으로 종단하는 325번 지방도와 북부지역에서 만난다. 이 밖에 2·4번 군도가 각각 남과 북의 도로망 구실을 담당한다.

문화유적은 금현리에 이항복(李恒福)묘와 지석묘가 있다. 방축리에 지석묘와 화산서원이 있다.

마산(馬山) · 감암(甘巖) · 방축(坊築) · 가산(加山) · 정교(鼎橋) · 금현(金峴) · 우금(友琴) · 마전(麻田) 등 8개 리가 있다.

  1. 관인면(官仁面)

시의 북서단에 위치한 면. 면적 69.95㎢, 인구 3,15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탄동리이다.

본래 강원도 철원군 지역으로 관인면이라 하여 이하 · 중리 · 중하 등 8개 리를 관할하다가 1895년에 연천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군내면 일부와 영평군 북면의 월경리가 병합되었고 1983년포천군에 편입되었다. 1916년 면 소재지가 중리로 이전되었고, 1931년에는 다시 초과리로 이전되었다. 1945년38도선 이북지역에 속했다가 1954년 〈수복지구임시조치법〉에 의해 다시 연천군에 편입되었다.

1983년포천군에 편입되었으며, 1989년에 부곡리(釜谷里)가 연천군 연천읍으로 이속되어 현 행정구역을 갖추었다. 관인면이란 면 명칭은 신라 말 어진 관리들이 궁예의 학정에서 벗어나 성 밖인 이 지역에 모여 살았다는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중앙의 고남산(古南山)을 제외하고는 산지가 주로 서쪽에 집중되어 있다. 가장 높은 지장봉(地藏峰, 877m)을 비롯하여 화인봉(花人峰) · 향로봉(香爐峰, 600m) · 종자산(種子山, 643m)이 서쪽 면계를 따라 북쪽에서 남으로 차례로 솟아 있다.

한탄강이 급경사 계곡을 이루면서 면의 최북단으로부터 동쪽 경계를 따라 이어지고 계속 남쪽 면계를 형성하여 흐르다가 연천군으로 이어진다. 이 외에도 냉정(冷井) · 초과(初果) · 건지(乾地) · 향노(香爐) 등 여러 하천이 면 곳곳을 관류한다.

전체적으로 서고동저(西高東低)의 전형적인 모습을 나타낸다. 면 전체를 관류하는 하천이 많고 평지가 넓게 분포한 만큼 경지면적이 군 전체에서 제2위에 해당하며, 그 중 논의 면적이 밭보다 약간 우세하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 콩을 비롯하여 서류 생산량도 많다. 채소류로 수박 · 참외 · 호박 · 토마토 · 배추 · 고추 · 파, 특용작물로 들깨 · 땅콩, 과일류로 사과 · 복숭아, 산나물 등 모든 종류의 농산물이 골고루 산출되는 군의 대표적인 농업지대이다. 인삼재배 농가와 함께 한우 · 젖소 · 돼지 · 산양 등을 사육하는 축산농가도 있다.

광물은 규석 · 석회석 등 여러 개의 광산업체가 집중되어 있는데, 주요 광산물로 석회석 · 활석 · 장석 · 철광석 등이 있다.

교통은 325번 지방도가 면 중앙을 남에서 북으로 길게 뻗어있고, 14번 군도가 북동쪽을 종단하고 있으나 도로망은 불편하다.

문화유적은 중리에 보가산성과 신흥사(新興寺)지가 있다. 특히, 한탄강이 굽이쳐 흐르면서 곳곳에 장관을 이루고 있는 관광지로 각광을 받는다.

탄동(炭洞) · 삼률(三栗) · 초과(初果) · 냉정(冷井) · 중(中) · 사정(射亭) 등 6개 리가 있다.

  1. 군내면(郡內面)

시의 중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36.17㎢,인구 6,542명(2015년 현재). 면소재지는 구읍리이다.

본래 포천군 지역으로 포천 군청이 있었으므로 군내면이라 하여 상성북 · 하성북 · 동변 등 8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청량면(淸凉面)의 3개 리가 병합되어 8개 리로 되었다.

남동쪽 경계에 수원산(水源山, 720m)과 천주산(天柱山, 424m)을 잇는 광주산맥의 지맥이 화현면과 경계를 이룬다. 면 중앙에 일명 반월산(半月山)이라 불리우는 청성산(靑城山, 289m)이 솟아 있다.

포천천이 남서쪽에서 북쪽으로 흘러 포천읍과 경계를 형성하고, 그 지류인 구읍천 · 좌의천(左儀川)이 관류하면서 평야지대와 취락지가 형성되었다. 논농사와 밭농사의 비율이 비슷하다.

주요 농산물로 쌀의 생산량이 많고 잡곡 · 두류와 배추 · 고추 · 파 · 마늘 등의 채소류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특용작물로 들깨 생산량이 군 전체에서 제일 많다. 특별 소득사업으로 전국적으로 유명한 느타리 버섯 종균장이 있고, 이를 통한 버섯재배가 성해 농가의 큰 소득원으로 자리잡았다. 한우 · 돼지 · 닭을 사육하는 축산농가도 있다.

교통은 43번 국도가 북서부를 통과하고 325번 지방도가 면 중서부를 남북으로 종단하다. 이 외에 6번 군도가 중앙의 도로를 잇고 있다. 수백 년 간 포천현의 중심지였던 관계로 조상들의 숨결이 담긴 유물과 유적이 많다.

문화유적은 구읍리에 포천향교 · 석불입상과 미륵불상이 있으며, 구읍리 · 상성북리 · 하성북리에 걸쳐 반월성지(半月城址)가 남아 있다. 특히, 반월성지는 신라 말기에 궁예(弓裔)가 철원에 도읍한 후 신라 · 후백제와 대치하면서 그의 부장(副將)이 축성했다고 전해지며, 성안에는 한 곳의 우물터가 남아 있다.

구읍(舊邑) · 용정(龍井) · 유교(柳橋) · 좌의(左儀) · 명산(鳴山) · 직두(稷頭) · 상성북(上城北) · 하성북(下城北) 등 8개 리가 있다.

  1. 내촌면(內村面)

시의 동남단에 위치한 면. 면적 52.75㎢, 인구 5,23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내리이다.

본래 포천군 지역으로 죽엽산의 안쪽이 되므로 내도면이라 하여 진목 · 내리 등 7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촌면(東村面) 일부, 가평군 상면(上面) 일부, 영평군(永平郡) 일동면(一東面) 각 일부가 병합되면서 내동과 동촌의 이름을 따서 내촌면이 되었다. 1963년화현리에 내촌면화현출장소가 설치되었다. 이 후 1983년화현출장소가 면으로 승격되어 3개 리가 이관되었고, 남은 6개 리가 내촌면이 되었다.

중앙 북부에 국사봉(國師峰, 547m), 북서부 경계지점에 수원산, 동쪽 경계에 주금산(鑄錦山, 814m), 서쪽 경계에 죽엽산 등 고봉이 사방에 병풍을 두르며 그 여맥이 면내 중앙까지 이어져 산악지대를 형성한다.

왕숙천(王宿川) · 엄현천 · 진목천 등의 하천이 면 곳곳을 관류하면서 일부 지역에 평야지대가 만들어졌다. 경지면적이 군 전체에서 제일 협소하며 밭농사가 논농사보다 우세한 지역이다. 산지가 많은 만큼 자연적 조건을 최대한 활용하는 복합영농을 통해 다양한 농산물이 산출된다.

주요 농산물은 쌀과 고추 · 마늘 등의 채소류가 소량 생산되며, 배 · 복숭아 · 포도의 과일류 생산량은 많은 편이다. 특히 표고버섯의 재배, 원예단지 조성, 그리고 육림단지의 조성에 따른 잣나무 육성이 활발하다. 무엇보다도 한우 · 젖소 · 사슴 · 토끼 등의 사육량이 군에서 상위를 점할 정도로 축산업이 발달한 곳이다.

교통은 47번 국도가 남단에서 북서단까지 길게 중앙을 종단하고, 325번 지방도가 중앙에서 이어져 북서쪽으로 연결된다.

문화유적은 소학리의 사기막에 조선시대의 백자요지(白磁窯址)가 남아 있다.

내(內) · 마명(馬鳴) · 엄현(奄峴) · 소학(巢鶴) · 신팔(薪八) · 진목(眞木) 등 6개 리가 있다.

  1. 신북면(新北面)

시의 중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95.93㎢, 인구 1만 354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기지리이다.

본래 포천군 지역으로 포천읍내의 북쪽이 되므로 내북면(內北面)이라 하여 만세교 · 신평 · 기지 등 6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두개 면이 합쳐졌고, 남면(南面) · 서면(西面)의 각 일부를 병합되어 신북면이 되었다. 1983년청산면(靑山面)이 연천군으로 이속될 때 삼정 · 금동 · 덕둔 · 갈월 4개 리가 병합되었다.

높은 산지는 서쪽에 집중되어 있는데 북서쪽 경계에 종현산(鍾懸山, 589m), 남서쪽에 국사봉(國師峰, 754m)과 포천읍의 경계에 왕방산 등이 있다. 특히 면의 중앙에 덕령산(德嶺山, 350m) · 하늘봉(389m)이 면을 동부와 서부로 양분시키고 있는 형세이다.

덕령산과 하늘봉 사이를 외북천(外北川)이 가로 지르고, 동부에는 포천천의 물줄기가 굽이치며, 그리고 서쪽에는 명덕천과 갈월천이 관류하면서 주변에 평야지대와 취락지를 조성하였다. 경지면적이 군 전체에서 제일 넓으나, 산지가 많은 만큼 밭농사가 논농사보다 훨씬 우세한 지역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과 고구마 · 감자 등의 서류, 배추 · 고추 · 들깨 등과 함께 한약재도 생산된다. 잣나무 단지가 넓게 분포한 잣의 생산지로 알려져 있다. 포천의 명물로 부각된 인삼 재배가 활발하고 이와 함께 각종 인삼가공품도 수출품으로 각광받는다. 가축은 한우 · 젖소 · 돼지 · 닭 · 산양 등이 사육되는데, 특히 산양 사육은 군 전체에서 제일 활발하다. 신평리에 공업단지가 조성되는 등 공업 분야도 점차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교통은 43번 국도가 남동부에서 북동부로 종단하고, 329·344번 지방도가 면 전체를 종횡으로 연결하면서 면 중심부에서 만난다. 이 밖에 면 서부의 도로망으로 5번 군도가 있으나, 주로 인구가 집중된 동부를 중심으로 중앙에 걸쳐 조밀한 도로망이 펼쳐져 있다.

문화유적은 가채리에 청성사(淸城祠) · 채산사, 신평리에는 용연서원을 비롯하여 인평대군치제문비와 묘 그리고 신도비가 있다.

기지(機池) · 가채(加采) · 신평(新坪) · 만세교(萬歲橋) · 심곡(深谷) · 계유(溪流) · 고일(古日) · 삼성당(三星堂) · 삼정(三政) · 갈월(葛月) · 금동(琴洞) · 덕둔(德屯) 등 12개 리가 있다.

  1. 영북면(永北面)

시의 중앙 북단에 위치한 면. 면적 81.74㎢, 인구 9,40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운천리이다.

본래 영평군 지역으로 영평읍내의 북쪽이 되므로 북면이라 하여 상굴 · 하굴혁장 등 9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포천군에 편입되어 영북면이 되었다. 1945년38도선 이북지역에 속했다가 1954년 「수복지구임시조치법」에 따라 영북면이 복원되었다.

북쪽 중앙 경계에 중군봉, 서부에 은장산(銀藏山, 457m), 남서부에 불무산(佛舞山, 669m), 남동쪽 경계에 관음산(觀音山, 733m) · 사향산(麝香山, 665m) 등 고봉들이 면 전체를 에워싸고 있다. 여기에다 북부 중앙에 각흘봉(角屹峰, 466m)과 중앙부에 망무봉(望武峰, 294m)이 솟아 있다.

북서쪽에서 서쪽 방향으로 물줄기를 드러낸 한탄강이 관인면과 경계를 이루고, 야미천(夜味川) · 자일천(自逸川) · 부소천(釜沼川) 등의 하천이 면 곳곳을 관류하여 주변 유역에 주거지와 평야를 만들어 놓았다. 논농사와 밭농사가 비슷한 비율로 이루어지며, 관개시설이 발달한 까닭에 쌀 생산량도 적지 않다.

주요 농산물은 잡곡 · 콩 · 고구마 · 감자 등의 서류, 채소류로 수박 · 토마토 · 배추 · 양배추 · 고추 · 마늘, 특용작물로 인삼과 들깨 · 땅콩, 과일류로 사과 · 배 등이 생산된다. 이 중에서 토마토 · 배추 · 사과의 산출량은 다른 지역에 비해 많다. 축산업은 돼지 · 닭 · 산양 · 꿩의 사육두수가 많으며, 특히 양계업이 발달해 있다. 광산과 몇몇의 제조업체가 있으나 소규모이다.

교통은 43번 국도가 면 중앙을 남북으로 관통하고, 8·14·18번 군도가 국도와 연결되면서 면의 구석구석으로 이어진다.

문화유적은 자일리에 봉수지, 한탄강이 흐르는 유역에 기암괴석과 깎아내린 듯한 절벽 등이 있어 수려한 경관으로 사시사철 찾는 인파가 끊이지 않는다. 그 중 하나인 화적연(禾積淵)은 포천팔경의 하나로 자일리 서쪽 끝에 있다. 산정리에는 산정호수(山井湖水)가 있다.

운천(雲川) · 자일(自逸) · 산정(山井) · 야미(夜味) · 문암(文巖) · 대회산(大回山) · 소회산(小回山) 등 7개 리가 있다.

  1. 영중면(永中面)

시의 중앙에 위치한 면. 면적 61.32㎢, 인구 5,52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양문리이다.

본래 영평군 지역으로 영평읍내가 되므로 읍내면이라 하여 대사 · 광정 · 내상 등 12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포천군 내북면(內北面) 일부가 병합되면서 영중면이 되었다. 1945년38도선의 성동리 · 영평리 · 영송리가 이북지역에 속했다가 1954년 「수복지구임시조치법」에 따라 수복되었다.

동쪽 경계에 관모봉(冠帽峰, 584m), 남동쪽에 금주산(金珠山, 569m), 남서쪽에 금화봉(錦華峰) 등 곳곳에 준봉들이 늘어서 있다.

서쪽에 영평천(永平川)과 남북으로 길게 뻗은 포천천이 면 중앙부를 중심으로 큰 물줄기를 형성, 합류하면서 창수면을 거쳐 한탄강으로 들어간다. 영평천과 포천천의 유역에 경작지와 취락이 형성되어 있다. 경지면적 중 밭면적이 논보다 훨씬 많다.

주요 농산물은 쌀을 제외한 콩을 비롯한 두류 생산량이 군 전체의 7할을 차지할 정도로 많다. 채소류로 참외 · 토마토 · 배추의 산출량이 군내 2위에 해당한다. 과일류로 사과, 특용작물로 인삼이 재배되며, 산나물 출하량은 군 전체에서 제일 많다.

특히, 거사리금화봉 일대의 화강암은 내수는 물론 외국으로 가공수출될 정도로 석질이 뛰어나다. 축산업도 비교적 활발한 편이며, 가축은 한우 · 젖소 · 돼지 · 닭 · 산양 · 사슴 등이다.

교통은 37번 국도가 남쪽에서 중앙을 통과하여 서쪽으로 이어지고 43번 국도가 면 중앙을 남북으로 종단한다. 이 밖에 9·15번 군도와 기타도로가 사방으로 뻗어 있어 편리한 도로망을 갖추었다.

문화유적은 영송리에 선사유적, 양문리에 인흥군(仁興君)의 묘와 신도비가 있고, 성동리에 태봉산성터가 있다. 거사리에 낙귀정(樂歸亭)지 등이 있다.

양문(梁文) · 금주(金珠) · 거사(居士) · 성동(城洞) · 영평(永平) · 영송(永松) 등 6개 리가 있다.

  1. 이동면(二東面)

시의 동북단에 위치한 면. 면적 112.98㎢, 인구 6,73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장암리이다.

본래 영평군 지역으로 주지면이라 하여 낭유 · 노곡 · 응암 등 7개 리를 관할하다가 1895년 동면이 둘로 나뉘어 포천군 이동면으로 개칭되었고, 이듬해 다시 영평군으로 그 소속이 바뀌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영평군이 포천군에 이속되면서, 기존의 이동면 전체와 일동면(一東面) 사당리(社堂里) 일부가 통합되어 4개 리로 개편되었고 포천군 이동면이 되었다. 1945년38도선 이북지역에 속했다가 철원군에 소속되었다. 1954년 「수복지구임시조치법」에 따라 포천군으로 수복되었다.

남동쪽 가평군과의 경계에 국망봉(國望峰, 1,168m)과 동쪽 강원도와의 경계에 백운산(白雲山, 904m), 북동부에 광덕산(廣德山, 1,046m) · 박달봉(朴達峰, 800m), 중동부에 가리산(加里山, 774m), 중서부에 감투봉(504m), 서쪽에 사향산, 남서쪽에 관음산 등 고봉들이 면 전체를 둘러싸고 있다.

영평천과 도평천의 물줄기가 산지 사이 사이에 유입되면서 주변 유역에 일부 평지를 만들었다. 군 전체에서 제일 넓은 면적을 자랑하나 산지가 많은 관계로 경지면적은 협소한 편이다. 밭농사와 벼농사의 비율은 비슷하다.

주요 농산물은 쌀을 제외한 잡곡 · 두류와 감자 등의 생산량이 많다. 채소류로는 군 전체 생산량의 1/2에 달하는 호박과 배추 · 상추 · 고추 등의 재배가 이루어진다. 특산물로는 고산지대에서 각종 자연생 나물 · 약초 · 버섯 등의 산출량이 상당하다. 축산업으로 한우 · 돼지 · 닭 등의 사육과 함께 사향노루의 서식지로도 알려져 있다.

교통은 47번 국도가 면 중앙을 남북으로 달리고 있고, 15·16·18번 군도가 국도와 이어지면서 면 곳곳을 연결한다.

문화유적은 도평리의 흥룡사(興龍寺) 경내에 부도가 있다. 이 밖에 연곡리에 동음사, 도평리에 수복기념비와 선적사지 · 약사지가 있다.

명승고적으로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영평천 상류의 백운동계곡 내 아홉 곳의 절경을 가리키는 백운구곡(白雲九曲)은 경관이 수려하여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의 발자취가 끊이지 않던 곳이다.

장암(場巖) · 도평(都坪) · 연곡(燕谷) · 노곡(盧谷) 등 4개 리가 있다.

  1. 일동면(一東面)

시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83.39㎢, 인구 1만 564명(2015년 현재). 면소재지는 기산리이다.

본래 영평군 지역으로 조량면이라 하여 길영 · 유동 · 기산 등 7개 리를 관할하다가 1895년 영평군이 포천군에 병합되면서 동면이 둘로 나뉘어 포천군 일동면으로 개칭되었고, 1896년에 다시 영평군으로 바뀌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영평군이 포천군에 이속되면서, 일동면 대부분과 동촌면(東村面) 일부가 합쳐져 6개 리로 편제되었고 포천군 일동면이 되었다. 1945년38도선이 생기자 수입리의 일부가 북한지역에 속했다가 1954년 「수복지구임시조치법」에 따라 수복되었다.

동쪽 군계에 강씨봉(姜氏峰, 830m), 남동쪽에 청계산(淸溪山, 849m), 남쪽에 원통산(圓通山, 567m), 북서쪽 면계에 관음산 · 관모봉, 서쪽에 금주산 등 준봉들이 면 전체를 에워싸고 있는 형세이다. 하천으로 사직천(社稷川) · 수입천(水入川) · 길명천(吉明川) 등이 곳곳을 관류하고 남동쪽에 청계저수지가 조성되어 있다.

논농사가 밭농사보다 약간 우세한 지역으로 주곡식인 쌀 생산량이 비교적 많고 고구마 · 감자와 수박 · 호박 · 토마토 · 배추 · 고추 등 채소류 생산량도 많은 편이다. 특히, 특용작물인 인삼재배가 매우 활발하며, 산나물 채취량도 상당하다. 가축으로 한우 · 젖소 · 돼지 · 닭 등이 있고, 특히 한우 사육량은 군내 제1위이다.

교통은 47번 국도가 면 중앙을 남북으로 길게 이어지고, 37번 국도가 남부에서 중앙과 남서쪽을 경유하면서 군의 서쪽으로 연결된다. 이 외에 10·11·15·17번 군도 등 많은 도로망을 갖추고 있다.

문화유적은 수입리에 양사언(楊士彦) 묘와 길명사(吉明祠), 사직리 · 기산리 · 수입리에 고인돌군과 하류지역에 와룡암이 있다.

기산(機山) · 길명(吉明) · 유동(柳洞) · 화대(禾垈) · 사직(社稷) · 수입(水入) 등 6개 리가 있다.

  1. 창수면(蒼水面)

시의 서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71.47㎢, 인구 2,42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주원리이다.

본래 영평군 지역으로 영평읍내의 아래쪽이 되므로 하리면이라 하여 오가 · 사청 등 4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면(南面) · 서면(西面)의 대부분과 포천군 외북면(外北面) 삼성당리(三星堂里) 일부가 병합되어 영평팔경의 하나인 창옥병과 금수정의 이름을 따서 창수면이 되어 포천군에 편입되었다.

1945년38도선이 생기자, 주원리 일부와 오가리 · 고소성리 · 신흥리 · 운산리가 북한지역에 속했으나 1954년 「수복지구임시조치법」에 따라 수복되었다. 같은 해 면 사무소가 추동리에서 주원리로 이전되었다. 신흥리 · 운산리의 일부가 주민 미거주지역으로 남아있다.

산지로 북중앙에 보장산(寶藏山, 555m)이 면의 주봉으로 우뚝 솟아 있고, 남서쪽에는 종현산의 지세가 면 안으로 뻗어 있다. 북쪽을 흐르는 한탄강이 군계와 면계를 만들고, 중앙을 횡류하는 영평천이 자연스럽게 면을 강남과 강북지역으로 갈라놓았다.

또한 그 지류인 오가천 · 추동천 등이 관류하면서 주변지대에 경작지와 거주지가 분포한다. 경지면적 중 밭의 면적이 논보다 약간 우세하며, 미곡 생산량은 군에서 하위에 속한다.

주요 농산물로 잡곡 생산량은 군내 제1위를 차지하고 이 밖에 두류와 서류에 대한 재배도 활발하다. 채소류로 수박 · 참외 · 고추, 특용작물로 들깨 · 땅콩 · 약초 재배가 성하다. 임산물로 잣나무와 밤나무 단지가 있고, 가축으로 한우 · 젖소 · 돼지 · 닭 · 오리 등의 사육이 이루어진다. 특히, 청둥오리 사육과 양돈사업이 크게 번성하여 농가소득에 큰 도움을 준다.

면 중심지와 멀리 떨어져 있고 산업시설이 미미한 관계로 공업 발달은 미진한 편에 속한다. 금 · 은을 캐는 광산업체가 있다.

교통은 37번 국도가 영평천과 병행하여 면 중앙을 횡단하고, 325번 지방도가 면을 남북으로 잇는다. 이 외에 7·9·13번 군도 등 여러 갈래의 도로망이 사방으로 연결된다.

문화유적은 주원리에 옥병서원, 추동리에 지석묘와 청해사(靑海祠)가 있다. 이 밖에 고소성리에 고소성의 흔적이 있다. 오가리에는 포천팔경에 꼽히는 병풍을 두른 듯한 반달형의 기암절벽인 창옥병과 금수정지가 있다.

주원(注院) · 추동(楸洞) · 오가(伍佳) · 가양(可養) · 고소성(姑蘇城) · 운산(雲山) · 신흥(新興) 등 7개 리가 있다.

  1. 화현면(花峴面)

시의 동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43.57㎢, 인구 2,72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화현리이다.

본래 포천군 지역으로 수원산의 동쪽이 되므로 동촌면(東村面)이라 하여 화현 · 지현 등 4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내동면 전체, 동촌면 일부지역, 가평군 상면(上面)과 영평군(永平郡) 일동면(一東面) 각 일부가 병합되면서, 9개 리를 관할하고 내촌면이라 불렸다. 1963년화현리에 내촌면화현출장소가 설치되었고 3개 리를 관할, 1983년화현출장소가 면으로 승격되었다.

북동쪽 경계에 원통산, 남동쪽 군계에 운악산(雲岳山)이라고도 불리는 현등산(懸燈山, 936m), 남서쪽 경계에 수원산 등의 산줄기가 면내로 뻗쳐있다.

수동천(水洞川) · 설악천(雪岳川)이 면 곳곳을 관류하면서 평지를 조성하였다. 경지면적이 넓은 편은 아니며 그 중에서 논농사가 밭농사보다 다소 우세하나 쌀 생산량은 최하위에서 두 번째이다.

주요 농산물은 두류와 서류, 수박 · 호박 · 파 등 채소류, 사과 · 배 등 과일류, 특수작물로 참깨 · 인삼, 그리고 산나물 등이 산출된다. 특히 버섯 출하량이 많은 대표적인 곳이다. 축산농가에서는 젖소 · 닭 · 산양 · 사슴 · 오리 등이 주로 사육되는데, 특히 오리 사육두수가 많다. 제조업을 비롯한 공업발전은 더딘 편이다.

교통은 47번 국도가 중동부를 종단하고, 면 북서부를 연결하는 19번 군도가 있다.

화현리의 현등산에는 홍폭이 있어 장관을 이루는데, 여기에는 궁예가 왕건에게 쫓기다가 이곳에 와서 슬픈 최후를 마쳤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명덕리에는 탄산온천이 개발되어 점차 관광객들이 늘고 있다.

화현(花峴) · 지현(芝峴) · 명덕(明德) 등 3개 리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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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지(京畿誌)』(1842∼1843)
『경기읍지(京畿邑誌)』(1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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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행정구역요람』(행정자치부,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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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역사와 문화』(경기도사편찬위원회, 1997)
『전통사찰현황』(문화체육부, 1997)
『지명유래집』(경기도, 1987)
『한국행정제도사』(정시채, 법문사, 1986)
『경기도지』(경기도지편찬위원회, 1955·1956·1957)
『신구대조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1917)
포천시(www.pcs21.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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