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충사에서 동쪽으로 약 4㎞ 떨어진 곳에 있다. 현종(顯宗)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서산대사(西山大師) · 사명대사(泗溟大師) · 영규대사(靈圭大師)의 충령을 표창하는 뜻으로 그 진영을 봉안하고 ‘表忠詞(표충사)’로 사액하였으며, 1738년(영조 14)에 사명대사의 5대 법손인 남붕조사(南鵬祖師)가 이를 중수하면서 표충비를 세웠으며, 지금은 단층 팔작지붕의 보호각 내에 서 있다.
비의 재질은 대리석이고, 규모는 전체 높이 4m, 탑신 높이 270㎝, 비 폭 96㎝, 두께 54.5㎝이다. 비 전면에는 송운대사비명(松雲大師碑銘)으로 시작하는 사명대사의 행장이, 후면에는 서산청허당휴정대사비명(西山淸虛堂休靜大師碑銘)으로 시작되는 서산대사의 행장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좌측면에는 밀양영취산표충사사적비(密陽靈鷲山表忠詞事蹟碑)가 기록되어 있다. 비문은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를 지낸 이선현(李宣顯)이 지었고, 홍문관부제학(弘文館副提學) 김진상(金鎭商)이 썼으며,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유탁기(兪拓基)가 두전(頭篆)을 썼다.
비문 전면의 내용은 사명대사의 출가 행적과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키고, 선조로부터 8도 도총섭으로 임명된 내용, 카토 키요마사(加藤淸正)와의 담판 내용, 갑진년에 선조의 명을 받들어 국서를 가지고 일본에 건너가서 포로 3,000명을 데리고 온 사실 등으로 되어 있다.
사명대사의 우국충정이 지금까지도 이 비에 남아 있어 국가에 큰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린다는 속설이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