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권 8책. 고활자본. 1854년(철종 5) 그의 문중에서 간행하였다. 『풍고집』 권두에는 철종의 어제(御製) 서문과 총목이 있다. 권말에는 정원용(鄭元容)·김흥근(金興根)·조두순(趙斗淳) 등의 발문이 있다.
내용은 권1∼6에 1,032수의 시, 권7·8은 소차(疏箚) 60편, 권9는 주(奏) 3편, 계(啓) 2편, 응제문(應製文) 14편, 제문 20편, 권10은 서(書) 36편, 권11은 비명 5편, 묘갈 10편, 권12는 묘지 7편, 묘표 4편, 행장 3편, 권13·14는 시장(諡狀) 12편, 권15는 서(序) 10편, 기(記) 8편, 발(跋) 7편, 잠(箴) 1편, 명(銘) 5편, 송(頌) 2편, 찬(贊) 1편, 전(傳) 4편, 권16은 잡저 29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풍고집』 중에 문집의 3분의 1을 시가 차지하고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면 김조순이 안동김씨 세도정권의 핵심인물이면서도 문학·예술 방면에 대한 남다른 취향과 소질을 나타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학교류에 있어서 그는 비교적 당파나 신분 차이에 구속받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36편의 왕복서신은 주로 당시 요직에 있던 벌열계층(閥閱階層)들과 이루어지고 있다. 당시에 세도정권 내부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데에 자료가 된다.
『풍고집』의 「서얼소통수의(庶孽疏通收議)」는 1779년 (정조 3) 영향력 있는 대신으로서 민심을 안정시키고자 조정에 건의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서얼출신들이 지속적으로 벌여 온 집단적인 상소운동에 대한 정부의 개선책이 요구되고 있었던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다.
『풍고집』 권16의 잡저 중에서 서화고동(書畫古董)에 관한 김조순의 남다른 감식안을 알아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예술취향은 조선 후기인 18세기에 중국을 내왕하던 지식층간에 주요관심사항으로 등장하였던 것이다. 그의 경우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규장각도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