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산심씨 묘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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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심씨 문정공파 묘역
풍산심씨 문정공파 묘역
가족
유적
국가유산
서울특별시 강서구에 있는 조선전기 문신 심정과 자손들의 묘역.
시도문화유산
지정 명칭
풍산 심씨 문정공파 묘역(豊山 沈氏 文靖公派 墓域)
분류
유적건조물/무덤/무덤/기타
지정기관
서울특별시
종목
서울특별시 시도유형문화유산(1991년 12월 24일 지정)
소재지
서울 강서구 방화동 463-10, 463-13, 855, 산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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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서울특별시 강서구에 있는 조선전기 문신 심정과 자손들의 묘역.
내용

지정 면적 2,584㎡. 1991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풍산 심씨 종친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개화산 동쪽 기슭으로 방화삼거리에서 약사사로 오르는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다가 우측으로 심정과 그의 자손 심사손(沈思遜), 심사순(沈思順) 및 손자인 청백리 심수경(沈守慶) 등 풍산 심씨 가문 분묘가 약 50여 기 있다.

이 중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이들 4인 분묘와 그에 딸린 묘비 · 상석 등 석물이 문화유산으로 지정, 보호받고 있다. 이곳 풍산 심씨 묘역 일대는 심씨 집성촌으로 심씨마을이라고 불렸다.

한편, 이곳은 능골 · 능리라 하여 고려 때의 왕릉지와 인조의 생부인 원종의 능 천장지로 선정되기도 하여 그 이름이 생기기도 했는데, 이 개화산을 주산으로 한 명당자리에 풍산 심씨 묘역이 자리하고 있다.

이 묘역의 중심 인물인 심정(1471∼1532)은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정국공신(靖國功臣)이 되었으며, 한성판윤 · 형조판서가 되었다. 그러나 신진사류인 조광조 일파의 탄핵으로 파직되고 정국공신직도 삭탈되었다. 이에 원한을 품고 기묘사화를 일으켜 사류들을 숙청하였다.

1527년(중종 22)에 우의정 · 좌의정에 올랐으며, 이때 개화산 근처에 소요정(逍遙亭)을 짓고 일가를 이루며 살았다. 이후 복성군(福城君)의 옥사에 연루되어 김안로의 탄핵으로 강서(江西)에 유배되었다가 61세의 나이로 사사되어 양천 서쪽 개화리에 장사지냈으며, 1534년 부인이 합장되었다.

묘갈의 크기는 총 높이 156cm, 비 높이 120cm, 폭 55cm, 두께 18cm로 1579년에 세워졌다. 비문은 손자 수경이 짓고, 증손자 일취(日就)가 썼다.

심사손(1493∼1528)은 대과에 급제하여 숭문원 · 예문관 · 승정원에서 문한을 관장하였고, 1523년 비변사 낭관으로 서북면 야인(野人) 정벌에 공을 세웠다.

당상관에 올라 만포진첨절제사로 변방 수비에 힘쓰다가 야인에게 살해당하였다. 이 해양천현 서쪽 개화산의 서북쪽 기슭에 동남향으로 자리잡아 장사지냈다.

신도비의 크기는 총 높이 311cm, 비 높이 155cm, 폭 120cm, 두께 30cm로 1580년에 세워졌다. 비문은 영의정 홍섬(洪暹)이 짓고, 여성군 송인(宋寅)이 썼으며, 행온성도호부사 한준(韓準)이 두전을 썼다.

심사순(1496∼1531)은 1517년(중종 12)에 문과에 급제하여 사가독서를 하고 홍문관 부제학이 되었다. 1531년 김안로 일파가 꾸민 종루괘서사건에 연루되어 추국(推鞫:죄상을 다스리는 것)을 당하여 세상을 떠났다.

이듬해 현 위치에 장사지냈으며, 1569년 부인 이씨가 합장되었다. 묘갈문의 크기는 총 높이 218cm, 비 높이 120cm, 폭 59cm, 두께 20cm로 1579년에 세워졌다. 비문은 조카 판서 심수경이 짓고, 도사 심일취가 썼다.

심수경(1516∼1599)은 1546년(명종 1)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대사헌 · 도승지 · 영중추부사와 무신직도 수행한 유장(儒將)이었다. 임진왜란 때에는 삼도체찰사가 되어 의병을 모집하였다.

문장과 글씨에도 능하여 직접 자신의 묘갈문을 짓고 후일에 고치지 말라고 유언하였다. 부인 신씨와 쌍분으로 모셔져 있으며, 묘갈문의 크기는 총 높이 295cm, 비 높이 175cm, 폭 75cm, 두께 23cm로 1601년에 세워졌다. 비문은 둘째 아들 심일취가 썼다. 1991년 12월 24일 서울특별시 지방지정문화재(현, 지방지정유산)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서울금석대관』 2(서울특별시, 1992)
『동명연혁고 15-강서구·양천구편-』(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91)
『문화재현황』(서울특별시,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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