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일 종가 고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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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김성일 종가 고문서 중 교지
김성일 종가 고문서 중 교지
가족
문헌
국가유산
조선전기 문신 · 학자 김성일의 종손가에 소장된 문서. 종가문서.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김성일 종가 고문서(金誠一 宗家 古文書)
분류
기록유산/문서류/문서류/문서류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보물(1987년 03월 07일 지정)
소재지
경상북도 안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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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전기 문신 · 학자 김성일의 종손가에 소장된 문서. 종가문서.
개설

이 고문서들은 1987년 보물로 지정된 17종 242점이며,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의 김종길(金鍾吉)이 소장하고 있다.

내용

고려 공양왕 2년(1390)에 작성된 김천(金洊)의 호구단자(戶口單子)를 비롯하여 가정(嘉靖) 14년(1535)의 분재기(分財記) 및 김성일에게 발급된 교서(敎書)·유서(諭書)·유지(有旨)·교지(敎旨)·시권(試券) 등을 지정한 것이며, 그 지정목록과 내용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① 교서:1점. 1592년(선조 25) 6월에 왕이 경상좌도관찰사 김성일에게 내린 훈유교서(訓諭敎書)로서, 특히 의병을 규합하여 왜적을 물리치고 국가재건의 공훈을 세울 것을 당부하고 있다.

② 유서:1점. 1592년 4월 왕이 경상우도병마절도사 김성일에게 내린 유서로, 군사출동 등의 권한을 부여하는 신표인 밀부(密符)를 내리고 있다.

③ 유지:3점. 1578년 국왕이 승지를 통하여 홍문관부교리 김성일에게 경연(經筵)에 입번(入番)하라는 명을 전하는 유지와, 1592년 전 병사였던 김성일에게 경상도초유사로 임명하는 유지, 1804년(순조 4) 왕이 아산현감 김진화(金鎭華)에게 내린 유지 등이다.

④ 교첩(敎牒) 및 교지:59점. 김성일의 진사·문과급제의 교지 및 사령교지·증시교지(贈諡敎旨)를 비롯하여 그의 자손들의 교지이다.

⑤ 차정첩(差定帖):4점. 김성일의 손자 시추(是樞)의 1630년(인조 8)과 1637년의 차정첩, 그리고 1678년(숙종 4) 김계(金?)의 차정첩이다.

⑥ 시권: 7점. 1564년(명종 19) 김성일의 진사시에 입격한 답안지를 비롯하여 그 후손의 시지(試紙)이다.

⑦ 시호서경(諡號署經):2점. 1691년(숙종 17) 김성일의 시주(諡註)를 개정(改定)하는 데 관한 사헌부의 서경과 사간원의 완의(完議)이다.

⑧ 품정절목(稟定節目):1점. 1622년(광해군 14) 9월 25일에 작성된 문서로서 안동 소재의 여강서원(廬江書院)의 운영에 관한 절목을 품의, 결정한 것이다. 이 여강서원은 뒤에 호계서원(虎溪書院)으로 개칭되었고, 조선 말기까지 영남유림의 본거지였다. 서원연구의 자료이다.

⑨ 입안문(立案文):5점. 1585년(선조 18)∼1586년 사이 김성일이 나주목사로 재직할 때 주인(州人) 나한(羅翰) 등에게 발급한 입안문 4점과, 1722년(경종 2) 안동부사가 부인(府人) 김복렴(金復濂)에게 발급한 입안문 1점으로, 노비·전답 등의 소유를 인정하는 문서이다.

⑩ 등장(等狀):6점. 1765년(영조 41) 경상도유생 최억(崔嶷)·김주국(金柱國) 등 136인이 경상도관찰사에게 올린 것을 비롯하여, 김성일의 후손들이 안동부에 청원한 등장 등이다.

⑪ 호구단자:50점. 김성일의 6대조 김천의 호구단자를 비롯하여 김성일의 후손들의 호구단자이다.

⑫ 분재기:6점. 1535년(중종 30) 김성일의 아버지 김진(金璡)의 분재기를 비롯하여 김성일이 아버지에게 받은 별급문기(別給文記)와 그 자손의 분재문서이다.

⑬ 명문(明文):25점. 1628년(인조 6)에서 한말까지 김성일 자손들의 토지·노비·가옥 매매문서이다.

⑭ 완의:3점. 1692년(숙종 18)에서 1850년(철종 1)까지의 문서로, 김성일이 전수(傳受)한 신곡전장(申谷田庄)의 소유에 대하여 김씨문중이 약서하는 완의와, 김성일의 맏아들 집(潗)의 별묘(別廟) 건립에 대하여 김씨문중이 약서하는 완의 등이다.

⑮ 통문(通文):56점. 1676년(숙종 2)에 작성된 김성일의 시호를 청원하는 의견을 모으는 통문을 비롯하여, 김성일을 제향하는 서원의 복설(復設), 열부(烈婦)에 대한 포상을 요청하는 통문 등이다.

⑯ 치제문(致祭文):1점. 1609년(광해군 1)에 왕이 예조좌랑 이천추(李天樞)를 보내어 김성일의 사당에 사제(賜祭)한 제문이다.

⑰ 설계도(設計圖):3점. 김성일의 현손 세기(世基)의 정자인 여사헌(如斯軒)을 비롯하여 김성일 종손가의 설계도이다.

의의와 평가

이들 고문서는 30여 종 1만 점 중에서 선별, 지정한 것이다. 교서와 유서는 임진왜란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며, 이는 유지·교지·차정첩·시호서경 등과 함께 조선조 인사행정제도연구에, 분재기·명문·입안문·호구단자 등은 조선조 경제·사회·가족제도 등의 연구에 각각 중요한 자료들로 평가되며, 설계도는 숙종 때의 건축연구 자료이며, 통문은 주로 유림사회의 본산인 서원연구의 자료이다.

참고문헌

鶴峰金誠一宗孫家所藏文化財調査報告書(千惠鳳·李廷燮, 文化財管理局, 1987)
집필자
이정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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