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적들은 1987년 보물로 지정된 것들로 56종 261책이다.『경자자체(庚子字體)』 · 『사기(史記)』등 간본(刊本) 28종 176책, 김성일의 자필본인『경연일기(經筵日記)』등 필사본 28종 85책 등이며,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의 김종길(金鍾吉)이 소장하고 있다.
간본 중 경자자판『사기』, 초주갑인자판(初鑄甲寅字版) 『증수부주자치통감절요속편(增修附註資治通鑑節要續編)』 · 『당류선생집(唐柳先生集)』 · 『고려사절요』, 계미자복각판(癸未字覆刻版)『예기천견록(禮記淺見錄)』, 목판의『예기대문(禮記大文)』등 10종은 조선 초기에 간행된 희귀본이며,『삼국사절요(三國史節要)』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주자대전(朱子大全)』등의 7종은 을해자본(乙亥字本)이다. 그리고 목판본 또는 갑인자체 · 계미자체의 복각본 등도 모두 조선 전기의 간본으로 김성일의 수택본 또는 내사본(內賜本)이 대다수이다.
또한 현재 도서목록에 보이지 않는 희귀본도 상당수 있어 이를 통하여 다른 책의 간행시기를 확인할 수 있다. 이들 간본은 조선 전기 서지학 연구는 물론, 조선 전기 교육 · 문화정책의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며, 또한 퇴계학파(退溪學派)의 적전(嫡傳)으로 전하는 김성일의 학문세계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필사본은『호당삭제(湖堂朔製)』 · 『문충공서고(文忠公書稿)』 · 『퇴계사전초(退溪史傳草)』등 김성일의 자필본과 김성일에 관한 자료가 대다수이다.
그 중 특히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다.
①『호당삭제』: 3책. 첩장. 1576년(선조 9) 김성일이 호당에서 사가독서(賜暇讀書)할 때의 제술(製述)이다. 매편 아랫부분에 ‘차상(次上) · 이상(二上) · 위(違)’ 등 이 작품에 대한 품평이 적혀 있는데, 이는 당시 대제학 김귀영(金貴榮)의 필적이라 한다. 김성일의 작품세계를 고구할 수 있는 자료이며, 독서당 운영에 관한 자료이다.
②『문충공서고』: 1책. 김성일이 아들 집(潗)과 부인 권씨에게 보낸 간찰 8편과 시 1편을 작첩(作帖)한 것이다. 그 중 특히 부인에게 보낸 간찰은 김성일이 1592년 경상감사 재직시 안동에 있는 부인에게 보낸 국문편지로 국문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③『문충공수간(文忠公手柬)』: 1책. 1585∼1586년 사이 김성일이 나주목사 재직시 안동 본가에 있는 아들 집에게 보낸 간찰이다. 『문충공서고』와 함께 김성일의 거관생활(居官生活)과 당시 사회상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④『진주수성절차(晉州守城節次)』: 1책. 1592년 10월 김성일이 경상우도감사 재직시 진주성 수어의 전말을 왕에게 보고한 장계의 초고이다.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진주싸움의 전황이 상세히 기술된 이 장계는 임진왜란사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⑤『선현유묵(先賢遺墨)』: 이덕형(李德馨) · 박성(朴惺), 일본인 다치바나[橘康廣] 등 3명의 간찰첩이다. 이덕형의 간찰은 1592년 의주 행재소(行在所)에서 경상감사 김성일에게 보낸 답서이고, 박성의 간찰은 역시 1592년 10월에 특사로 호남에 가서 의병장 출동에 관한 일을 김성일에게 품의한 것으로 임진왜란사 연구의 자료이다. 1583년 사신으로 왔던 일본인 다치바나의 간찰은 당시 접위관(接慰官)이었던 김성일에게 올린 것으로, 예물목록도 부재되었는데 외교관계자료이다.
⑥『퇴계사전초』: 1책. 선조 연간에 김성일이 지은 스승 이황(李滉)의 전기 초고본이다.
⑦『기묘일기부북정일기(己卯日記附北征日記)』: 김성일의 자필일기로서 1579년 1월 1일부터 4월 12일까지의 귀향일기인『기묘일기』와, 같은 해 9월에서 12월 12일까지 함경도순무어사 때의 일기인『북정일기』가 합철된 것이다.『기묘일기』는 당시 이조정랑으로 있던 김성일이 휴가를 얻어 경상도 영양에 있는 아버지를 근친하고 귀경할 때까지의 일기로서 조정의 대소사건, 역로(歷路)의 풍물, 자신의 일상생활이 상술되어 있다.『북정일기』는 북도의 각 진보(鎭堡) · 역참 · 창고 등의 실태와 산천도리 등이 상술되어 있어 16세기 북도의 국방 · 경제 · 지리 등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⑧『학봉선생해사록(鶴峰先生海槎錄)』: 1책. 1590년 김성일이 일본 사신으로 갔을 때의 역로 또는 유주하던 곳에서 지은 시문으로, 김성일의 자필본이다.
⑨『학봉일기초(鶴峰日記草)』: 54철(綴).『경연일기』라고도 부른다. 1570년(경오)∼1573년(계유)의 기사로 김성일이 예문관의 검열 · 봉교 등으로 사관(史官)을 예겸(例兼)하고 있을 때 경연에 입시하여 당일 토론, 결정한 일을 적은 사초(史草)이다. 4년 동안에 31일의 기사만 현존하고, 일부는 해당 연월일이 확인되지 않는 철도 있으나, 당시 사관이 초록한 일기로서 16세기 경연 운영의 실상과 정치 · 사회 및 관리임면 · 형옥처결 등을 두루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특히,『선조실록』에는 기사가 빠진 날짜가 많이 있는데, 이 일기에는 중요한 국정이 기록되어 있어 병화로 소실된 임진왜란 이전의 부족한 사료를 보완하는 데에 매우 소중한 자료이다.
이들 전적은 조선시대 정치 · 외교 · 국방 · 사회 · 문화 · 교육 · 지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며, 상당수가 단일 서종으로도 국가유산으로 지정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