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주(淸州). 호는 치서(菑墅). 영의정 한상경(韓尙敬)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郎) 한진철(韓震喆)이며, 어머니는 단양우씨(丹陽禹氏)로 우상규(禹尙奎)의 딸이다. 큰아버지 한진유(韓震愈)에게 입양되었다. 이장오(李章五)에게 사서를 배우고, 뒤에 조유선(趙有善)의 문인이 되었다.
향시(鄕試)에 네 번 합격하였으나 부친상을 당한 뒤로는 벼슬에 뜻을 끊고, 오직 경학에 열중하여 장현문(張玄聞)·이춘위(李春韡) 등과 함께 여택회(麗澤會)를 조직, 사서오경과 『소학』·『심경』·『근사록』·『성리대전』·『강목』 등을 강론하였다.
예악(禮樂)·도수(度數)·역상(易象) 등도 깊이 연구하여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고, 지행일치(知行一致)를 평생의 신조로 삼았다. 학행(學行)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시문(詩文)에도 능하였다. 뒤에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추증되었다. 저서로 『치서집(菑墅集)』 6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