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이조판서, 정헌대부, 도총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467년 통정대부로서 동부승지에 특진되었고, 다음해 예종이 즉위하자 우부승지에 전임되었다. 그 해 남이(南怡)의 옥사(獄事)를 다스리는 데 공을 세워 수충보사병기정난익대공신(輸忠保社炳幾定難翊戴功臣) 1등에 책록되고, 청평군(淸平君)에 봉해졌다.
1469년(예종 1) 우승지로 전임되고, 1470년(성종 1) 좌승지로 전임되었다. 다음해 자헌대부(資憲大夫)로서 공조판서에 승진하고, 성종의 즉위를 도운 공으로 순성명량좌리공신(純誠明亮佐理功臣) 3등에 책록되고, 오위도총관을 겸하였다.
1472년 청평군으로서 충청도관찰사에 부임하고, 다음 해 이조판서로 있으면서 전주(銓注)를 공평히 하였다. 1476년 정헌대부(正憲大夫)에 올랐으며, 1479년 지중추부사로서 다시 도총관을 겸임하였다.
창경궁(昌慶宮)을 건축할 때 선공제조(繕工提調)가 되어 공사를 관장했으며, 그 공로로 1484년 숭정대부(崇政大夫)에 올랐다. 사람됨이 온순하고 선량해 남을 해하지 않고 평소 거동이 예의 있고 단정하였다. 또한 일을 신중히 처리하고 사람을 공손하게 대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사신(史臣)은 재능과 학식이 없는데도 한계미(韓繼美)·한계희(韓繼禧) 두 형이 세조의 총애를 입은 것에 힘입어 승지에 발탁되고 높은 벼슬에 올랐다고 평하였다. 시호는 양평(襄平)이다.
참고문헌
- 『세조실록(世祖實錄)』
- 『예종실록(睿宗實錄)』
- 『성종실록(成宗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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