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순 ()

남양주 양평공 한계순 묘역
남양주 양평공 한계순 묘역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이조판서, 정헌대부, 도총관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수옹(粹翁)
시호
양평(襄平)
이칭
청평군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431년(세종 13)
사망 연도
1486년(성종 17)
본관
청주(淸州)
주요 관직
사헌부감찰|종부시주부|공조정랑|동부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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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이조판서, 정헌대부, 도총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수옹(粹翁). 한수(韓脩)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개국공신 한상경(韓尙敬)이고, 아버지는 함길도관찰출척사 한혜(韓惠)이며, 어머니는 성달생(成達生)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처음에는 문음으로 충의위(忠義衛)에 속했다가 세자익위사 우세마가 되고, 통례문봉례랑(通禮門奉禮郎)·사헌부감찰·종부시주부를 역임하였다. 1464년(세조 10) 공조정랑으로 승진하고, 다음해 사재감첨정이 되었다.

1467년 통정대부로서 동부승지에 특진되었고, 다음해 예종이 즉위하자 우부승지에 전임되었다. 그 해 남이(南怡)의 옥사(獄事)를 다스리는 데 공을 세워 수충보사병기정난익대공신(輸忠保社炳幾定難翊戴功臣) 1등에 책록되고, 청평군(淸平君)에 봉해졌다.

1469년(예종 1) 우승지로 전임되고, 1470년(성종 1) 좌승지로 전임되었다. 다음해 자헌대부(資憲大夫)로서 공조판서에 승진하고, 성종의 즉위를 도운 공으로 순성명량좌리공신(純誠明亮佐理功臣) 3등에 책록되고, 오위도총관을 겸하였다.

1472년 청평군으로서 충청도관찰사에 부임하고, 다음 해 이조판서로 있으면서 전주(銓注)를 공평히 하였다. 1476년 정헌대부(正憲大夫)에 올랐으며, 1479년 지중추부사로서 다시 도총관을 겸임하였다.

창경궁(昌慶宮)을 건축할 때 선공제조(繕工提調)가 되어 공사를 관장했으며, 그 공로로 1484년 숭정대부(崇政大夫)에 올랐다. 사람됨이 온순하고 선량해 남을 해하지 않고 평소 거동이 예의 있고 단정하였다. 또한 일을 신중히 처리하고 사람을 공손하게 대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사신(史臣)은 재능과 학식이 없는데도 한계미(韓繼美)·한계희(韓繼禧) 두 형이 세조의 총애를 입은 것에 힘입어 승지에 발탁되고 높은 벼슬에 올랐다고 평하였다. 시호는 양평(襄平)이다.

참고문헌

『세조실록(世祖實錄)』
『예종실록(睿宗實錄)』
『성종실록(成宗實錄)』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관련 미디어 (3)
집필자
한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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