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후기 헌납, 안주목사, 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서예가.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89년 기사환국으로 민비(閔妃)가 폐위되고 남인이 득세한 뒤 아들 한중혁(韓重爀)이 김춘택(金春澤) 등과 함께 민비복위를 꾀하다가 1694년 투옥되자, 이에 연좌되어 변방으로 유배되었다. 5년 후 사면되어 유배에서 풀려났으며, 80세 때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시(詩)에 능하였을 뿐만 아니라 서예에도 뛰어나 그가 죽은 뒤 1782년(정조 6)에 평안도관찰사 서호수(徐浩修)가 왕명을 받들어 그의 글씨를 자본(字本)으로 삼아, 평양감영에서 8만여자의 활자를 만들어 ‘한구자(韓構字)’라 이름하여 규장각에 소장하였다.
청성부원군(淸城府院君) 김석주(金錫胄)와 친교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그 일족의 문집인 『잠곡집(潛谷集)』·『낙전당집(樂全堂集)』·『동강집(東江集)』 등이 모두 이 활자로 간행되었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
-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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