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4월 26일 김규식(金奎植)을 중심으로 하여 서울 정동교회에서 결성되었다. 이 단체는 ① 민족자결에 의한 자주독립의 전취(戰取), ② 민주주의에 의한 조국건설의 추진, ③ 평화원칙에 의한 국방역량의 배양을 강령으로 하였다.
각 부서와 책임자로는 회장 김규식, 부회장 엄요섭(嚴堯燮)·김태욱(金泰旭), 총무부장 이규석(李圭奭), 조직부장 김익준(金益俊), 연구부장 유기천(劉基天), 선전부장 김동리(金東里), 정훈부장 선우 기성(鮮于基聖), 조사부장 장준하(張俊河), 체육부장 김은배(金恩培)였다.
본부는 서울에 두고 지식계층 청년들을 규합하여 비교적 순수한 청년운동을 전개하려 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회장도 민족진영 3영수 중에서 가장 온건한 김규식을 추대하였던 것이다. 한국청년회의 공헌은 결성 당시의 운동에서 보다는 후일 간부들의 사회공헌에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부회장 엄요섭은 제3공화국에서 에티오피아대사를 지냈고, 연구부장 유기천은 서울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였으며, 선전부장 김동리는 한국문단의 거장이 되었고, 장준하는 잡지 『사상계(思想界)』의 발행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