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자예(子藝). 할아버지는 함길도관찰사 한혜(韓惠)이고, 아버지는 좌찬성 익대좌리공신(翊戴佐理功臣) 한계희(韓繼禧)이며, 어머니는 증호조참판 여계(呂稽)의 딸이다.
공신의 자제로서 1462년(세조 8) 음보(蔭補)로 문소전지기(文昭殿直)에 임명된 뒤 세자익위사세마 겸 선전관(世子翊衛司洗馬兼宣傳官)·이조정랑·군기시첨정·부정(副正)을 거쳐, 부평·철원·강화의 부사를 역임하였다.
1478년(성종 9) 충훈부경력(忠勳府經歷)이 되고, 집의·제용감정(濟用監正)·통례원좌우통례(通禮院左右通禮)를 거쳐, 1492년 우부승지·좌승지를 역임하였다. 1495년(연산군 1) 가선대부가 되고 아버지의 봉작(封爵)을 물려받아 서천군(西川君)에 봉하여졌다.
이듬해 개성부유수, 이어 한성부좌윤이 되고, 1498년 동지중추부사로서 천추사(千秋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500년 대사헌이 되고, 이 해 다시 정조사(正朝使)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병조와 공조의 참판을 지냈다.
이어 공조판서로서 오위도총부도총관이 되었다. 1506년 함경도관찰사 겸 함흥부윤이 되었다. 이 해 중종반정에 가담, 분의정국공신(奮義靖國功臣) 4등에 녹훈되고 정헌대부(正憲大夫)에 가자(加資)되어 함경도관찰사를 지냈다. 시호는 공간(恭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