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우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판결사, 개성유수, 병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여윤(汝尹)
인물/전통 인물
  • 본관청주(淸州)
  • 사망 연도1710년(숙종 36)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대사간·판결사|개성유수|병조참판
  • 출생 연도1633년(인조 1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문기 (경산대학, 한국사)
  • 최종수정 2026년 04월 28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판결사, 개성유수, 병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여윤(汝尹). 우의정 한응인(韓應寅)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한덕급(韓德及)이고, 아버지는 목사 한수원(韓壽遠)이며, 어머니는 이영선(李榮先)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69년(현종 10) 사마시에 합격, 금오랑(金吾郎)에 천거되었으나 끝내 사양하였다. 1674년 인선왕후(仁宣王后)에 대한 자의대비(慈懿大妃)의 복상 문제로 서인 송시열(宋時烈) 등이 관직을 삭탈당하고 유배되자 180인의 유생들과 더불어 소를 올려 송시열이 무고당했음을 주장하였다.

1680년(숙종 6) 경신대출척으로 송시열 등이 등용된 뒤 숭릉참봉(崇陵參奉)을 배수받았다. 이어 봉사·직장 등을 역임하고, 1684년 자궁(資窮)으로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예조좌랑으로 승진하였다. 이듬해 병조좌랑을 거친 뒤 함경도사로 나가게 되었다.

1686년 지평으로 원임대신(原任大臣) 이상진(李尙眞)을 탄핵하고 제궁가(諸宮家) 절수(折受)의 폐단을 극론하는 등 활발한 언론활동을 폈다. 이어 정언·금위종사(禁衛從事) 등을 지낸 뒤 예빈시정(禮賓寺正)에 올랐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노론이 몰락하고 송시열도 제주도로 귀양갔다가 사사되자 그 역시 벼슬을 버리고 낙향했다. 1694년 갑술옥사로 남인세력이 무너지자 수찬에 재기용된 뒤 교리·응교·집의·사간 등 청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이어 동부승지·호조참의 등을 거쳐, 한때 회양부사로 부임하였다. 그 뒤 승지·예조참의 등을 지내고 삼척부사에 보임되었다.

1699년 대사간에 올라 시무책 3개 조를 상소하는 등 활약하였다. 그 뒤 철원부사·광주목사(光州牧使) 등을 거치면서 선정을 베풀었고, 광주에서는 그의 덕망을 기려 주철(鑄鐵)로 된 송덕비를 세우기도 하였다.

1701년 전라도관찰사가 되어 도내 제궁가가 저지르는 궁방전(宮房田)의 폐단을 지적하는 소를 올렸다. 이어 대사간·판결사 등을 역임했고, 개성유수로 나갔다가 1707년 병조참판에 올랐다.

그 뒤 이조와 공조의 참판, 대사성 등의 벼슬이 내려졌지만, 병을 이유로 모두 물리쳤으며, 향리에서 머무르다가 78세로 졸하였다. 주자학(朱子學)에 조예가 깊었으며, 많은 저서를 남겼다고는 하나 대부분이 흩어져 없어지게 되었다.

참고문헌

  • - 『현종실록(顯宗實錄)』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한수재문집(寒水齋文集)』

주석

  • 주1

    : 조선 시대에, 관리들의 정규적인 진급 상한선이었던 당하관의 최고 위계. 또는 그 위계에 오르던 일. 정삼품 하계를 이른다. 우리말샘

  • 주2

    : 임금에게서 자신의 몫으로 땅이나 결세를 떼어 받음.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