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대사간, 지중추부사, 호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01년(연산군 7) 질정관(質正官)으로 천추사(千秋使)를 따라 명나라에 다녀와서 곧 돈녕부정이 되었다. 연산군의 난정이 심해지자 직언을 자주 하여 왕의 미움을 받아 승진되지 못하였다. 중종반정 이후 1507년(중종 2) 대사간이 되었고, 이어 동부승지·도승지·이조참의가 되었다.
그 뒤 함경도관찰사로 나가 기근에 허덕이는 도민을 구휼(救恤)하였고, 돌아와서 한성부우윤을 거쳐 한성부판윤이 되었다. 그 뒤 이조판서 겸 도총관을 지내고 지돈녕부사가 되었다.
1518년(중종 13) 경상도관찰사로 나갔다가 돌아와서 좌참찬 겸 지춘추관사가 되었으며, 1520년(중종 15) 다시 대사간이 되었고, 1522년(중종 17) 지중추부사를 거쳐 호조판서가 되었다.
이 때 중국사신을 접대하였으며, 이로 인해 병을 얻어 여러 번 벼슬을 사양하였다. 그 뒤 지중추부사로 한거하던 중 죽었다. 품성이 온순하면서 겸손하고 신중하였다. 시호는 공간(恭簡)이다.
참고문헌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중종실록(中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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