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후기 상통사로 진하사 이흘을 수행한 공로로 가선대부에 오른 역관.
생애 및 활동사항
1629년(인조 7) 진하사 이흘(李忔)의 상통사(上通事)로 북경에 가다가 옥전현(玉田縣) 찰원(察院)에 이르렀을 때 밥짓는 사람이 손에 『주역(周易)』을 들고 읽고 있는 것을 보고 괴이하게 여겨 물었더니, 그는 가난한 선비인데 궁하여 먹을 길이 없어 고용되어 관부(館夫)가 된 사람이었다.
마음 속으로 그 선비를 불쌍히 여겨 전대(纏帶)의 은 30냥을 꺼내주었다. 그 뒤 수로로 중국에 가다가 갑자기 광풍을 만나 등주(登州)의 해안에 표박하였는데, 해안을 방비하는 병졸들이 발견하여 위협을 하면서 배를 돌려 가라 하므로 모두 창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 때 홀연히 한 관원이 가마를 타고 일산(日傘)을 끼고 수문 어귀를 지나가므로 그가 관원 앞으로 달려가 정상을 진술하였는데, 그 관원은 옛날 옥전현에서 밥을 짓던 사람이었다. 지난날 입은 은혜로 인한 극진한 보살핌으로 북경까지 갈 수 있도록 주선을 받는 한편, 백금 300냥과 채단 30필도 여비로 받아 무사히 북경에 들어가 소임을 마치고 돌아올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여순(旅順) 항구에 이르러 또 태풍을 만나 구사일생으로 귀국하였다. 그 공로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말년에는 벼슬을 그만두고 한거하면서 서사(書史)에 몰두하였다.
참고문헌
- 『통문관지(通文館志)』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조선시대(朝鮮時代) 잡과합격자총람(雜科合格者總覽)』(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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