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시대 형조판서, 개성유수, 지돈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서화가.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13년 아버지가 선조의 유교칠신(遺敎七臣) 중 한 사람으로 계축옥사에 연루되자 사직하였다. 뒤이어 부친상으로 보령에 퇴거하였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으로 병조좌랑이 되고, 수찬에 이르러 신인 등용책을 논의하였다.
이어 종성부사·부총관(副摠管)·한성부우윤·지중추부사·형조판서·개성유수 등을 거쳐, 1643년 지돈녕부사가 되어 치사(致仕: 나이가 많아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나는 것.)하였다.
홍문관에 있을 때에는 자주 경연(經筵)에 참석했고, 세자책봉주청사(世子冊封奏請使)로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병자호란을 당해서는 개성유수로서 강화도에 피난하였다. 그 뒤 환도했으나 병으로 나아가지 못해 언관으로부터 직무유기의 탄핵을 받고 파직당하였다.
한편, 이괄(李适)의 난 때는 삼도독향어사(三道督餉御史)가 되어 군량을 조달하였다. 만년에는 지돈녕부사로서 진향부사(進香副使)가 되어 인평대군(麟坪大君)을 따라 심양(瀋陽)에 다녀왔다.
서예에 뛰어나 팔법(八法)에 능해 당시 태학(太學)의 장소(章疏)·비문(碑文), 나라의 묘주(廟主) 등에 거의 그의 붓을 빌렸다. 작품으로는 글씨로 우상한응인묘비(右相韓應寅墓碑)가 있다.
참고문헌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청음집(淸陰集)』
-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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