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및 광복 이후 활약한 대금산조의 명인. 그는 풍류·산조·시나위 명인이 많이 난 전라남도 화순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그 고장 명인들에게 대금풍류를 배우고, 당시 박종기(朴鍾基) 문하에 들어가 대금산조를 배웠다.
1934년 조선성악연구회(朝鮮聲樂硏究會)에 참가하여 활약하였고, 1959년 임춘앵창극단(林春鶯唱劇團)에서 악사로 활약하였다. 그는 음질이나 기량이 뛰어나 박종기가 죽은 뒤 최고명인으로 꼽혔다. 그의 제자로 서용석(徐龍錫)·이생강(李生剛)이 있다. 대금산조 음반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