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1932년 중국 상하이에서 중국의 실지 회복과 한국의 독립을 목적으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변천 및 현황
1931년 말 김구, 김철(金澈), 조소앙(趙素昻)과 중국인 치추칭[稽翥靑], 우청칸[伍澄干], 쉬톈팡[徐天放], 민쿵모[閔公謀] 등은 예비회담을 가지며 중국의 실지 회복과 한국의 독립을 목적으로 한국과 중국이 연합하여 비밀결사를 조직할 것을 합의하였다. 그 결과 1932년 3월 20일 한중항일대동맹이 결성되었다. 한중민족항일대동맹(韓中民族抗日大同盟)이라고도 한다. 외무부 · 특무부 · 재무부와 상무위원의 조직체계를 갖추어 조소앙이 외무부장을, 치추인이 재무부장을, 김구가 특무부장을 맡았다. 이러한 조직체계는 대동맹이 특무활동을 전개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삼고, 이를 외교적 · 재정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구가 주도하는 한인애국단의 특무활동을 비밀리에 후원하였다.
윤봉길(尹奉吉) 의거를 비롯하여 1932년 3월 말 조선총독 우가키 가즈시게[宇垣一成]의 사살을 위해 파견한 상해한인청년당(上海韓人靑年黨) 당원 이덕주(李德柱), 유진만(兪鎭萬)과 관동군사령관 혼조[本庄繁]의 폭살 계획으로 만주로 밀파된 최흥식(崔興植), 유상근(柳相根)에게 자금을 지원해 주었다. 또한,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실행되었을 당시 국무원(國務院) 등의 피난구제금 용도로 재정 지원을 요구하였을 때, 피난 중인 조소앙에게 지원을 해주는 등 사후대책 마련 과정에도 관여하였다.
참고문헌
단행본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 4: 임시정부사』(독립유공자사업기금운용위원회, 1972)
- 『한국독립운동사(韓國獨立運動史)』 3 (국사편찬위원회, 1967)
논문
- 한철호, 「1930년대 전반기 한중연대와 항일운동」, (『한국근현대사연구』 22, 한국근현대사학회, 2002)
- 김광재, 「尹奉吉의 上海義擧와 '중국측 역할'」, (『한국민족운동사연구』 33, 한국민족운동사사학회, 2002)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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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1931년 9월 18일 일제가 류타오후[柳條湖] 사건을 일으키며 시작된 만주 침략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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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1932년과 1937년 두 차례에 걸쳐 일본군이 상하이[上海]를 침공하여 일어난 중국과 일본 사이의 무력 충돌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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