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때, 대련에서 관동군사령관과 남만주철도 총재 등 일본 고위 관료 처단을 계획한 독립운동가.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연길현 백평리 봉밀구 갑산촌(百坪里蜂密溝甲山村)으로 이사한 뒤로는 부득이 학업을 중단하고, 야학과 소년단을 창설하여 후배교육과 항일사상 고취에 주력하였다. 1927년 갑산촌에 조사차 나온 일본경찰과 충돌한 뒤 이곳을 떠나 상해(上海)로 망명하였다. 김구(金九)의 지시로 1932년 한국교민단 의경대원(義警隊員)으로 활약하였다.
그 해 5월 대련(大連)에서 김구의 지령으로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 동료 단원 최흥식(崔興植)·이성원(李盛元) 등과 함께 국제연맹 리튼조사단이 만주에 온 것을 계기로 일본의 관동군사령관·남만철도총재 등 침략 원흉을 폭살하고자 활약하다가 일본경찰에 잡혀 관동청재판소(關東廳裁判所)에서 무기징역형을 받고 대련·여순(旅順) 감옥에서 복역하다가 광복을 하루 앞두고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대한민국독립운동공훈사』(김후경, 광복출판사, 1983)
- 『독립운동사』 4(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 『동아일보(東亞日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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