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근

  • 역사
  • 인물
  • 일제강점기
  • 현대
일제강점기 때, 대련에서 관동군사령관과 남만주철도 총재 등 일본 고위 관료 처단을 계획한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진주(晋州)
  • 사망 연도1945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910년
  • 출생지강원도 통천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광남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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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대련에서 관동군사령관과 남만주철도 총재 등 일본 고위 관료 처단을 계획한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진주(晋州). 강원도 통천(通川) 출신. 유기춘(柳基春)의 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18년 통천보통학교에 입학하여 재학 중 가족이 북만주 연길현 용정(延吉縣龍井)으로 이주하게 되자, 그 곳 동명중학교에 입학하였다.

연길현 백평리 봉밀구 갑산촌(百坪里蜂密溝甲山村)으로 이사한 뒤로는 부득이 학업을 중단하고, 야학과 소년단을 창설하여 후배교육과 항일사상 고취에 주력하였다. 1927년 갑산촌에 조사차 나온 일본경찰과 충돌한 뒤 이곳을 떠나 상해(上海)로 망명하였다. 김구(金九)의 지시로 1932년 한국교민단 의경대원(義警隊員)으로 활약하였다.

그 해 5월 대련(大連)에서 김구의 지령으로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 동료 단원 최흥식(崔興植)·이성원(李盛元) 등과 함께 국제연맹 리튼조사단이 만주에 온 것을 계기로 일본의 관동군사령관·남만철도총재 등 침략 원흉을 폭살하고자 활약하다가 일본경찰에 잡혀 관동청재판소(關東廳裁判所)에서 무기징역형을 받고 대련·여순(旅順) 감옥에서 복역하다가 광복을 하루 앞두고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대한민국독립운동공훈사』(김후경, 광복출판사, 1983)

  • - 『독립운동사』 4(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 - 『동아일보(東亞日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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