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흥일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예조판서, 지춘추관사,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유시(柳示)
  • 시호정온(靖溫)
  • 진보(振甫)
인물/전통 인물
  • 본관청주(淸州)
  • 사망 연도1651년(효종 2)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대사간|공조판서|예조판서|지춘추관사|우의정
  • 출생 연도1587년(선조 20)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강성조 (인천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한흥일 글씨 미디어 정보

한흥일 글씨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예조판서, 지춘추관사,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진보(振甫), 호는 유시(柳市). 한여필(韓汝弼)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한효윤(韓孝胤)이고, 아버지는 실학의 선구자 한백겸(韓百謙)이며, 어머니는 교위(校尉) 김정준(金廷俊)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별좌(別坐)로서 1624년(인조 2)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이 되고, 1628년에 수찬을 거쳐 1630년 총융사의 종사관이 되었다. 1633년 이조좌랑, 이듬해에 전라도양전사가 되었다.

1636년 사간을 거쳐 동부승지가 되었는데,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신주와 빈궁들을 강화도로 호위하였고, 좌부승지·전부부윤을 역임하였다. 1637년 봉림대군(鳳林大君: 뒤의 효종)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갈 때 배종하였으며, 귀국 후에는 우승지를 거쳐, 1643년 강원도관찰사로 나갔다.

1645년 이조참판, 1647년 대사간, 1648년 공조판서·예조판서를 거쳐, 지춘추관사로 『인조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1651년 우의정에 올랐다.

인조 때 척화파의 한 사람으로 후사가 없었다. 조경(趙絅)이 신도비명을, 오준(吳竣)이 묘지명을, 채제공(蔡濟恭)이 시장(諡狀)을 찬술하였다. 1790년(정조 14) 시호 정온(靖溫)이 내려졌다.

참고문헌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효종실록(孝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용주유고(龍洲遺稿)』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