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예조판서, 지춘추관사,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36년 사간을 거쳐 동부승지가 되었는데,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신주와 빈궁들을 강화도로 호위하였고, 좌부승지·전부부윤을 역임하였다. 1637년 봉림대군(鳳林大君: 뒤의 효종)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갈 때 배종하였으며, 귀국 후에는 우승지를 거쳐, 1643년 강원도관찰사로 나갔다.
1645년 이조참판, 1647년 대사간, 1648년 공조판서·예조판서를 거쳐, 지춘추관사로 『인조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1651년 우의정에 올랐다.
인조 때 척화파의 한 사람으로 후사가 없었다. 조경(趙絅)이 신도비명을, 오준(吳竣)이 묘지명을, 채제공(蔡濟恭)이 시장(諡狀)을 찬술하였다. 1790년(정조 14) 시호 정온(靖溫)이 내려졌다.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효종실록(孝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용주유고(龍洲遺稿)』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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