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응수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시대 수문장, 팔도도교련관, 동영장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 사미(士美)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정묘호란
  • 본관양근(楊根)
  • 사망 연도1627년(인조 5)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수문장|팔도도교련관(八道都敎鍊官)
  • 출생 연도1561년(명종 16)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태진 (서울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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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수문장, 팔도도교련관, 동영장 등을 역임한 무신.

생애 및 활동사항

본관은 양근(楊根). 자는 사미(士美). 아버지는 함영근(咸永根)이다. 1592년(선조 25) 무과에 급제하여 왕을 따라 의주까지 호종하였고, 돌아와 수문장이 되었다.

1618년(광해군 10) 명나라가 요동정벌의 원군을 요청하자 팔도도교련관(八道都敎鍊官)이 되어 창성에 거주하였는데, 부원수가 그의 연로함을 알고 돌아가게 하였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안주성에 들어가 동영장(東營將)으로 적과 항전하였다. 방어사(防禦使) 김준(金俊)이 그의 연로함을 보고 피신하기를 종용하였으나 이를 거절하고 선봉에서 용전하다가 전사하였다. 『통감(通鑑)』을 항상 외우고 다녔고, 문사(文辭)와 서예에도 능하였다.

항상 공사를 엄격히 구분하였고, 검소한 생활을 신조로 삼아 자식들에게도 전답을 넓히고 재화를 늘리는 것을 업으로 삼지 말라고 가르쳤다. 호조좌랑에 추증되고, 고향에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안주 충민사(忠愍祠)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전고대방(典故大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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