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창건연대는 미상이나, 1469년(예종 1)에 관찰사 이계손(李繼孫)이 문회서원(文會書院)의 전신인 장도회(長都會)를 함흥향교 안에 설립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설립된 것을 알 수 있다.
1503년(연산군 9)에 관찰사 민효증(閔孝曾)이 중수하였고, 1563년(명종 18)에 관찰사 유강(兪絳)이 문회당(文會堂)을 신설하였다.
1575년(선조 8)에 관찰사 이후백(李後白)이 학사를 따로 증축, 분리시켜 문회서원을 창설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57년(효종 8)에 감사 송언신(宋言愼)이 대성전을 중수하였다.
1660년(현종 1)에 관찰사 윤승훈(尹承勳)이 명륜당의 좌우에 지도재(志道齋)와 구인재(求仁齋)를 신설하였다. 1714년(숙종 40)에 관찰사 이광좌(李光佐)가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대성전·동무(東廡)·서무(西廡)·명륜당 외에 재실인 지도재·서하재·구인재·박학재(博學齋)·양몽재(養蒙齋)와 전사청(典祀廳)·식당·장서각·고방·주사(厨舍) 등이 있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10철(十哲), 송조6현(宋朝六賢)과 동무·서무에 우리 나라 18현(十八賢) 및 중국 94현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국가에서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며, 봄·가을에 석전(釋奠:공자에게 지내는 제사)을 봉행(奉行)하고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해 왔다.
그 뒤 문회서원으로 학생과 향교 재산·공자상 등이 옮겨가면서 차차 침체되다가 1894년 이후에 신교육기관으로 개편되었다. 1950년대 이후의 사항은 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