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다호리 고분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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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창원 다호리 고분군
창원 다호리 고분군
선사문화
유적
문화재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에 있는 철기시대 이후 널무덤 · 독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이칭
이칭
다호리고분군
국가지정문화재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사적(1988년 09월 03일 지정)
소재지
경남 창원시 의창구 동읍 다호리 237-3번지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에 있는 철기시대 이후 널무덤 · 독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개설

1988년 9월 3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면적은 101,802㎡이다. 1988년부터 1991년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 의해 6차에 걸쳐 발굴조사되어 널무덤〔木棺墓〕총 44기가 조사되었다. 이 고분군이 위치한 지역은 해발 433m의 구룡산 북서줄기와 이어지는 해발 20m 정도의 야산에서 북쪽으로 뻗어내린 야트막한 구릉이다. 이 고분군의 분포범위는 야산에서 구릉의 아래쪽으로 너비 30~40m, 길이 150m에 달한다.

내용

1·2차 조사에서 확인된 유구는 총 15기이나 후대의 1기를 제외하면 14기가 된다.이 중에는 독무덤〔甕棺墓〕이 2기이고 나머지는 모두 널무덤이다. 널무덤은 무덤구덩이의 규모, 부장갱(副葬坑)의 유무에 따라 3가지 유형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제1유형은 무덤구덩이의 규모가 비교적 크고 깊은 편으로 길이 2.4∼2.8m, 너비 1.1∼1.3m, 깊이 1.2∼2m 정도이다.

무덤구덩이의 바닥면 중앙부에 장방형의 부장갱이 있고 껴묻거리〔副葬品〕가 많은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제2유형은 무덤구덩이의 규모가 제1유형과 비슷하거나 약간 작은 편이며 장방형의 부장갱은 보이지 않는다. 제3유형은 무덤구덩이의 규모가 작아 길이가 2m 미만이며, 너비도 좁고 깊이도 얕으며, 껴묻거리도 매우 빈약하다. 이러한 3가지 유형의 차이는 신분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무덤구덩이의 내부에는 모두 널〔木棺〕이 안치되었던 것으로 믿어진다. 제1유형에서 출토된 널은 지름 1m 정도의 아름드리 참나무를 잘라내어 세로로 쪼갠 뒤 속을 파서 만든 구유형의 널이다. 이것은 같은 시기의 서북지방 널무덤에서 볼 수 있는 판재로 만든 널과는 차이를 보인다.

출토유물은 종류가 다양하고 수량이 많다. 청동기로는 동검·동투겁창〔銅矛〕·한경(漢鏡)·띠고리〔帶鉤〕·동고리〔銅環〕등이 있다. 철기로는 철검·쇠투겁창〔鐵矛〕·꺾창〔鐵戈〕등의 무기류와 쇠도끼·단조(鍛造)의 납작도끼〔板狀鐵斧〕·따비·낫 등의 농·공구류 등이 있다.

칠기로는 칼집·활·화살·두(豆)·잔〔杯〕·합(盒)·소쿠리·붓·부채 등이 있다. 특히, 목태칠기(木胎漆器)의 용기류가 많으며, 일부 주칠(朱漆)의 문양이 보이고 있으나 대부분이 흑칠(黑漆)을 한 것이다. 토기로는 민무늬토기〔無文土器〕와 와질토기(瓦質土器)가 출토되었다. 영남지역의 와질토기로서는 첫 단계에 속하는 것들이며 칠기와 기형이 같은 것도 있다.

3·4차 조사에서는 널무덤 15기가 조사되었는데 1·2차 조사에서 확인된 유구들과 유사한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다만 새롭게 확인된 것은 단야공구(鍛冶工具)의 하나인 쇠망치〔鐵鎚〕가 출토되었다. 이 쇠망치의 확인으로 많은 단조(鍛造) 쇠도끼가 이 지역에서 직접 제작되었음을 실질적으로 밝힐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쇠망치는 쇠집게·모루 등과 함께 세트를 이루는 단야구(鍛冶具)로 평양 정백동 62호묘에서도 쇠집게와 함께 출토된 바 있다.

또한 철제고사리형장식부철기〔鐵製고사리形裝飾附鐵器〕가 출토되었다. 그동안 알려진 철제고사리형장식이 있는 철기로는 경주 조양동 덧널무덤〔木槨墓〕에서 출토된 ‘S’자형 말재갈멈추개와 경주 구정동 덧널무덤에서 출토된 쇠투겁창, 가야고분 등에서 출토되는 미늘쇠〔有刺利器〕와 판갑옷 등이 있는데 모두 원삼국시대 후기 이래의 고분에서 출토된 것이다. 이러한 철기의 전통을 이 고분군에서 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칠기에서도 새로운 것이 확인되었는데 원통형 칠기의 아가리〔口緣部〕상단에는 주칠로 된 삼각톱니무늬〔三角鋸齒文〕가, 칠초(漆鞘)에는 주칠로 된 선무늬〔線文〕가 있어 이 시기에 흑칠 이외에도 주칠을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새로운 형태의 칼집도 확인되었다.

토기에서도 새끼무늬〔繩文〕가 타날된 토기가 출토되었으며 소형토기도 발견되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쇠뿔모양동기〔牛角形銅器〕, 유구동기(有鉤銅器), 쌍두관상동기(雙頭管狀銅器)가 정식 발굴조사에 의해 출토되어 많은 자료를 제공해주고 있다.

5·6차 조사에서는 총 15기의 널무덤과 독무덤 2기가 조사되었다. 그런데 이들 무덤들에서는 무덤구덩이의 바닥면에 부장갱을 설치한 유구가 전혀 조사되지 않았고 껴묻거리 중에는 청동제품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도굴의 피해를 입은 것이 많기 때문에 발견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지만 작은 파편이나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다는 점은 다호리지역이 다른 지역보다 빨리 철기문화를 수용, 소화함으로써 청동기문화가 급격히 소멸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가장 오래된 원통모양 철기화살통이 발견되었다. 출토 당시 화살통은 상태가 불량하여 그 형태를 복원하였다. 그 결과 동검의 칠초와 같이 표면에 문양이 없고 흑칠에 돋을띠〔突帶〕가 돌려진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러한 양식은 원삼국시대 초기로 올라가는 새로운 형태의 화살통 존재를 확인시켜 주었다.

이외에 긴계란모양토기〔長卵形土器〕라든가 검은간토기〔黑色磨硏土器〕, 긴목항아리, 새로운 칠기문양이 확인된 소형토기, 철제낚시바늘도 출토되었다.

의의와 평가

다호리고분군은 현재까지 밝혀진 원삼국시대 전기 고분군으로는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이 고분군은 한국식 동검문화의 전통을 지닌 상당한 정치세력의 집단묘역으로 파악되고 있다. 경주시 조양동 널무덤 유적 초기단계의 묘제와 병행한 시기의 것으로 유구와 유물에서 공통성을 보이고 있다.

한편 띠고리, 칠목기(漆木器), 칠조철검, 고리자루칼〔環頭刀〕등 다양한 철기와 성운경(星雲鏡)·오수전(五銖錢) 등 중국 한계(漢系)의 유물들로 보아 당시의 이 지역에는 철생산을 바탕으로 한(漢)·낙랑(樂浪) 등과 활발한 교역을 했던 세력이 존재했음에 틀림없다. 출토유물 중 붓과 손칼은 연필과 지우개같은 문방구 역할을 한 것으로 교역시 영수증 작성에 사용되었을 것이다.

이 고분군의 연대는 제1호분의 경우 출토된 성운경·오수전 등으로 보아 서기전 1세기 후반으로 생각된다. 그 밖의 무덤들도 서기를 전후한 시기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늦어도 서기 1세기대에는 속할 것으로 믿어진다.

참고문헌

『한국고고학사전』(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의창 다호리유적 발굴진전보고」Ⅲ(이건무 외,『고고학지』5, 한국고고미술연구소, 1993)
「다호리유적 출토 붓에 대하여」(이건무,『고고학지』4, 한국고고미술연구소, 1992)
「의창 다호리유적 발굴진전보고」Ⅱ(이건무 외,『고고학지』3, 한국고고미술연구소, 1991)
「의창 다호리유적 발굴진전보고」Ⅰ(이건무 외,『고고학지』1, 한국고고미술연구소, 1989)
집필자
김선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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