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제4대 탈해왕의 능.
개설
탈해왕의 성은 석씨(昔氏), 이름은 탈해(脫解, 혹은 吐解)라고도 하며, 제3대 유리왕(유리이사금)의 유언으로 왕위에 올라 62세에 왕이 되었다. 왕비는 아효부인(阿孝夫人)이다. 재위 23년간 왜구(倭寇)와는 친교하고, 백제와는 자주 다투었다. 계림(鷄林)을 국호로 하였으며 가야와 싸워 크게 이겼다. 서기 57년에 왕이 되어 80년에 승하하였으며 죽은 뒤 경주에 있는 양정(壤井)의 언덕에 장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내용
현재의 탈해왕릉에 대해서는 그 위치비정을 부정하는 시각도 있다. 즉, 위치와 지리상으로 볼 때 초기의 고분권 지역인 경주평야 중심지를 벗어난 변두리 산록으로 옮겨졌다는 점에서 서기 1세기대가 아닌 신라고분 중기인 통일기 전후의 고분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또한 분구의 규모가 소형급이며 묘제가 굴식 돌방무덤이란 점에서 통일기 전후의 무덤과 상통한다는 점, 아울러 소상(塑像)을 만들어 토함산에 안치하였다는 석탈해설화 내용으로 볼 때 왕릉 내부에는 유골이 없다는 점, 그리고 유골을 어떠한 사유에서든지 옮긴 묘는 보존하지 않는다는 점 등을 제시하고 있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삼국유사(三國遺事)』
- 『한국고고학사전』(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 『고분연구』(강인구, 학연문화사, 2000)
- 『경주지역문화유적보존개발계획』(경상북도·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 1986)
- 『문화재대관-사적편-』(문화재관리국, 1975)
- 「신라십이지신상의 분석과 해석」(강우방,『불교미술』1, 1973)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