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검총

  • 역사
  • 유적
  • 삼국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돌무지덧널무덤. 적석목곽분.
이칭
  • 이칭황남동 제100호분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선숙
  • 최종수정 2025년 06월 09일
경주 대릉원 일원 중 황남리 고분군의 검총 남면 미디어 정보

경주 대릉원 일원 중 황남리 고분군의 검총 남면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경주 검총은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돌무지덧널무덤이다. 황남동 제100호분이라고도 하며, 경주 황남동고분군에 있는 원형봉토분으로 최대 지름 44.5m, 높이 9.7m에 이르는 대형 고분이다. 쇠투겁창 2점, 숫돌 1점, 철검 2점, 쇠칼 1점, 굽다리긴목항아리 등이 출토되었다. 거대한 외형이나 내부 구조에 비해 출토 유물은 빈약하고 동일한 시기의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들이 섞여 있다. 가계를 중요시하였던 마립간시대 왕권의 성장을 배경으로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조상묘를 대형으로 축조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의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돌무지덧널무덤. 적석목곽분.

개설

경주검총은 신라고분들 중 가장 먼저 학술적 조사가 실시된 것으로서 경주 황남리 고분군에 속해 있으며 대릉원 내의 경주 미추왕릉 서편에 위치하고 있다. 이 고분은 1916년 일본인 고고학자 세키노〔關野貞〕등이 발굴조사를 진행하였다. 이때 철검(鐵劍)이 출토되어 검총으로 명명되었으며, ‘황남동 제100호분’으로도 불리고 있다.

이 고분이 속해 있는 사적 황남동 고분군은 2011년 7월 28일에 사적 경주 대릉원 일원으로 재지정되었다.

내용

이 고분은 원형봉토분(圓形封土墳)으로 최대 지름 44.5m, 높이 9.7m에 이르는 대형 고분이다. 고분 중심부에 지반을 깊이 약 67㎝ 파고 여기에 냇돌을 1.2m 두께로 깔아 무덤의 상면(床面)으로 하고 껴묻거리〔부장품(副葬品)〕와 피장자를 안치시켰다. 그러므로 무덤의 상면은 주위 지반보다 오히려 높게 설치된 셈이다.

이 매장주체부는 냇돌로 쌓은 돌무지〔積石〕로 덮여 있었다. 돌무지의 높이는 약 3.7m, 남북 지름 약 14.5m이며, 중심부 표면에는 두께 약 15∼18㎝로 진흙〔粘土〕이 덮여 있었다. 그 위에 축조된 봉토는 흙과 자갈을 섞어 쌓았다. 봉토 가운데의 자갈층은 모두 고분 중심부 쪽으로 경사져 내려와 있었다.

매장주체부에서 출토된 유물은 쇠투겁창〔鐵矛〕 2점, 숫돌〔砥石〕1점, 철검 2점, 쇠칼〔鐵刀〕1점, 굽다리긴목항아리〔臺附長頸壺〕등이 있다. 그 밖에 봉토 가운데에서 이 고분과는 직접적인 관계없이 후세에 매장된 토기류 몇 점이 출토되었다.

특징

이 고분은 전면발굴이 실시된 것이 아니었고, 또 정식 발굴보고서가 발표되지 않아 부분적인 내용 밖에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관계자료에 의하면 매장주체부는 발굴된 것이 틀림없는데, 지금까지 발굴된 경주의 다른 대형고분들과 비교해볼 때 이례적인 특징을 보이고 있다.

첫째, 거대한 외형이나 내부구조에 비해 출토유물이 빈약하다. 지금까지 발굴된 신라시대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중 다른 대형분들에는 모두 금관과 금제허리띠〔金製銙帶〕및 띠드리개〔腰佩〕 등의 호화스럽고 풍부한 유물들이 매장되어 있다. 이에 비해 이 검총은 규모나 내부구조에 있어서는 다른 대형분들과 다를 바 없지만 출토유물은 거의 없는 편이다.

외형의 규모는 지금까지 발굴된 대형분들인 서봉총(瑞鳳塚) · 금관총(金冠塚) · 천마총(天馬塚) 등과 거의 같다. 그리고 내부구조에 있어서도 묘상(墓床)이 원지반보다 높게 설치된 점, 봉토의 축조수법이 내향경사(內向傾斜) 쌓기로 된 점 등이 서봉총 · 금관총 · 천마총과 황남대총(皇南大塚) 등 신라시대 돌무지덧널무덤 중 대형 고분에서만 볼 수 있는 수법이다.

둘째, 이 고분의 출토유물 중에서 동일한 시기의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들이 섞여 있다는 점이다. 즉, 이 고분에서 출토된 토기로서 굽다리긴목항아리는 완전한 고분기(古墳期)의 것이지만, 철검은 다른 신라시대 돌무지덧널무덤에서는 출토된 예가 전혀 없고, 고분기 이전에 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이 고분은 신라시대 돌무지덧널무덤 중 대형분에 속하면서도 다른 대형분과는 성격상으로 분명히 다른 점을 지니고 있다.

의의와 평가

신라 돌무지덧널무덤 중 대형분은 신라사에 있어 마립간시대 왕권의 성장을 배경으로 하여 축조된 것이다. 고총고분이라는 것은 고대사회에 있어서 왕권의 성장을 배경으로 하여 그들의 세력을 과시하는 하나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무엇보다 가계(家系)가 중요시되었던 고대사회에 있어서 새로 왕권을 잡은 마립간시대 신라왕들이 그들의 출자(出自)를 과시하기 위해 그들의 조상묘를 대형화했을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 이것은 『삼국사기』 신라본기 눌지마립간(訥祗麻立干) 19년조(435)의 “역대의 능원을 고쳐 쌓았다”라는 기록과 연결될 수 있다. 따라서 경주검총은 마립간시대 신라왕들이 대형화하였던 그들의 조상묘 중 하나의 실물이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참고문헌

  • - 『한국고고학사전』(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 - 『신라고분연구』(최병현, 일지사, 1992)

  • - 「고신라적석목곽분연구」(최병현,『한국사연구』31·32, 1981)

  • - 「경주황남동검총(제100호분)이 시사하는 몇 가지 문제」(최병현,『고고미술』152, 1981)

  • - 『朝鮮古蹟圖譜』3(朝鮮總督府,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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