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경주 검총은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돌무지덧널무덤이다. 황남동 제100호분이라고도 하며, 경주 황남동고분군에 있는 원형봉토분으로 최대 지름 44.5m, 높이 9.7m에 이르는 대형 고분이다. 쇠투겁창 2점, 숫돌 1점, 철검 2점, 쇠칼 1점, 굽다리긴목항아리 등이 출토되었다. 거대한 외형이나 내부 구조에 비해 출토 유물은 빈약하고 동일한 시기의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들이 섞여 있다. 가계를 중요시하였던 마립간시대 왕권의 성장을 배경으로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조상묘를 대형으로 축조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의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돌무지덧널무덤. 적석목곽분.
개설
이 고분이 속해 있는 사적 황남동 고분군은 2011년 7월 28일에 사적 경주 대릉원 일원으로 재지정되었다.
내용
이 매장주체부는 냇돌로 쌓은 돌무지〔積石〕로 덮여 있었다. 돌무지의 높이는 약 3.7m, 남북 지름 약 14.5m이며, 중심부 표면에는 두께 약 15∼18㎝로 진흙〔粘土〕이 덮여 있었다. 그 위에 축조된 봉토는 흙과 자갈을 섞어 쌓았다. 봉토 가운데의 자갈층은 모두 고분 중심부 쪽으로 경사져 내려와 있었다.
매장주체부에서 출토된 유물은 쇠투겁창〔鐵矛〕 2점, 숫돌〔砥石〕1점, 철검 2점, 쇠칼〔鐵刀〕1점, 굽다리긴목항아리〔臺附長頸壺〕등이 있다. 그 밖에 봉토 가운데에서 이 고분과는 직접적인 관계없이 후세에 매장된 토기류 몇 점이 출토되었다.
특징
첫째, 거대한 외형이나 내부구조에 비해 출토유물이 빈약하다. 지금까지 발굴된 신라시대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중 다른 대형분들에는 모두 금관과 금제허리띠〔金製銙帶〕및 띠드리개〔腰佩〕 등의 호화스럽고 풍부한 유물들이 매장되어 있다. 이에 비해 이 검총은 규모나 내부구조에 있어서는 다른 대형분들과 다를 바 없지만 출토유물은 거의 없는 편이다.
외형의 규모는 지금까지 발굴된 대형분들인 서봉총(瑞鳳塚) · 금관총(金冠塚) · 천마총(天馬塚) 등과 거의 같다. 그리고 내부구조에 있어서도 묘상(墓床)이 원지반보다 높게 설치된 점, 봉토의 축조수법이 내향경사(內向傾斜) 쌓기로 된 점 등이 서봉총 · 금관총 · 천마총과 황남대총(皇南大塚) 등 신라시대 돌무지덧널무덤 중 대형 고분에서만 볼 수 있는 수법이다.
둘째, 이 고분의 출토유물 중에서 동일한 시기의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들이 섞여 있다는 점이다. 즉, 이 고분에서 출토된 토기로서 굽다리긴목항아리는 완전한 고분기(古墳期)의 것이지만, 철검은 다른 신라시대 돌무지덧널무덤에서는 출토된 예가 전혀 없고, 고분기 이전에 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이 고분은 신라시대 돌무지덧널무덤 중 대형분에 속하면서도 다른 대형분과는 성격상으로 분명히 다른 점을 지니고 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한국고고학사전』(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 『신라고분연구』(최병현, 일지사, 1992)
- 「고신라적석목곽분연구」(최병현,『한국사연구』31·32, 1981)
- 「경주황남동검총(제100호분)이 시사하는 몇 가지 문제」(최병현,『고고미술』152, 1981)
- 『朝鮮古蹟圖譜』3(朝鮮總督府,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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