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왕의 외척이다. 407년(전지왕 3) 내법좌평(內法佐平)에 임명되었다. 그의 발탁은 왜(倭)에서 환국한 전지왕의 즉위에 해씨(解氏) 가문이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 데 따른 응분의 배려라고 볼 수 있다.
429년(비유왕 3) 10월 상좌평(上佐平) 여신(餘信)이 죽자 상좌평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정변을 통하여 왕족중심의 친위체제(親衛體制)를 구축한 개로왕의 집권력 강화작업의 결과, 다른 해씨 출신 귀족들과 함께 권력의 핵심에서 제거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