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신라의 치성화현(雉省火縣, 또는 美里縣)인데, 757년(경덕왕 16) 해안으로 고쳐 장산군(獐山郡 : 지금의 경산)의 영현(領縣)으로 하였다. 1018년(현종 9)경주에 이속하였고, 공민왕 때 수성(壽城) 감무(監務)가 설치되면서 이곳을 겸무하게 하였다.
1414년(태종 14)대구도호부에 귀속시켰다. 지명유래는 평야와 관련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금호평야 지역에 자리잡고 있어 조선시대에는 이곳의 물산을 모으는 교통의 요지였다. 금호강유역에는 해안창(解顔倉)이 있어 조운(漕運)이 성하였다.
대구에서 이곳을 지나 동화사(桐華寺)가 있는 팔공산(八公山)이나 신령(新寧)으로 갈 수 있었다. 동서로는 하양(河陽)·칠곡(漆谷)과 연결되었다. 지금의 불로동 지역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