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석탑 높이 2.4m, 석등 높이 2m. 석탑은 해인사와 계곡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원당암의 보광전(普光殿) 앞에 있다. 현재의 위치가 원래의 자리로 추정된다.
석탑은 탑신부(塔身部)가 점판암으로 조성된 ‘청석탑(靑石塔)’으로, 우리나라 석탑 가운데 특이한 석탑에 속한다. 바닥돌은 큼직하고 네모난 화강암 널돌 3장을 3단으로 쌓은 모습이다. 바닥돌 위에는 점판암으로 만든 받침돌이 있다. 아래받침돌의 윗면에는 각 변마다 위로 솟은 꽃잎이 하나인 단판(單瓣)의 연꽃 무늬가 5개씩 새겨져 있고, 네 귀퉁이에는 각각 1개의 연꽃무늬가 조각되어 있어, 모두 24개의 연꽃무늬로 장식되었다. 중간받침돌은 네 귀퉁이에 모서리 기둥을 대신한 돌기둥을 세우고서, 그 사이에 점판암 널돌을 세워 면석으로 삼았다. 윗받침돌은 널찍한 1장의 점판암 널돌로 조성되었는데, 밑면에는 아래받침돌과 대칭으로 꽃잎이 하나이면서 위로 솟은 연꽃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연꽃무늬의 개수는 아래받침돌보다 많아서, 각 변마다 7개씩, 각 귀퉁이마다 1개씩, 모두 32개가 장식되었다.
윗받침돌 위에는 탑신부가 놓여 있지만, 현재 몸돌은 전혀 남아 있지 않고 지붕돌만 10층으로 쌓여 있다. 지붕돌의 밑면에는 3단의 낮은 받침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의 추녀는 직선이지만, 전각(轉角)에서 반전(反轉)을 보인다. 윗면인 낙수면은 평박(平薄)하면서 각 면의 합각(合角)이 유난히 예리한데, 전각에 이르러 추녀 네 귀퉁이의 반전과 평행하여 많은 반전을 이루었기에, 전체적으로 반전이 강하여 경쾌해보인다. 10층 지붕돌 꼭대기에는 하나의 돌로 만든 낮은 노반(露盤)과 함께 높직한 반구형(半球形)의 복발(覆鉢)이 놓여 있을 뿐, 다른 부재는 남아 있지 않다.
청석탑은 고려시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유행하였다. 다만, 이 석탑은 고려시대 이전인 신라 하대에 건립되었으므로, 청석탑의 선구로 알려져 있다. 청석탑은 그 부재가 작고 연질(軟質)이므로, 대부분의 청석탑에서는 화강암을 여러 단 쌓아 바닥돌로 삼은 경우가 적지 않다.
석탑 옆에는 석등이 서 있는데, 석탑처럼 현재의 위치가 원래의 자리로 추정된다. 석등은 아래받침돌과 윗받침돌의 지붕돌만 점판암으로 만들어졌고, 다른 부분은 화강암으로 조성되었다. 현재 불을 밝혔던 곳인 화사석(火舍石)은 없어졌다.
석등은 아래받침돌 위에 가운데받침돌인 간주(竿柱)를 세우고 윗받침돌을 올려 화사석을 받치게 한 뒤, 화사석 위에 지붕돌과 상륜부를 놓은 일반적인 모습이다. 맨 아래에는 화강암으로 만든 단면 6각의 바닥돌이 있고, 그 위에는 꽃잎이 하나인 단판의 연꽃무늬가 윗면에 새겨진 단면 8각의 아래받침돌이 놓여 있는데, 윗면 가운데 부분에 낮은 굄대가 마련되어 있다. 간주는 가늘고 긴 편인데, 겉면에는 별다른 조각이 없이 위아래 부분에만 ‘상(上)’·‘하(下)’의 글자가 오목새김되어 있다. 단면 8각의 윗받침돌 밑면에는 아래받침돌과 대칭하여 꽃잎이 하나씩인 연꽃무늬가 조각되었고, 옆면에는 낮은 굽이 돌려져 있다. 윗받침돌 위에는 바로 지붕돌이 올려져 있는데, 낙수면은 평박하고 각 면의 합각은 예리한 편이다. 머리장식인 상륜부는 현재 둥근 기둥 모양의 돌 하나가 놓여 있을 뿐, 다른 것은 남아 있지 않다.
석등의 건립 시기는 석탑이 건립된 때와 같은 신라 하대로 추정된다. 현재까지 점판암을 이용하여 조성한 청석탑은 간혹 남아 있지만, 석등을 점판암으로 만든 사례는 매우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