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권 10책. 필사본. 저자의 이력은 자세하지 않으며, 편집과 필사 연대는 미상이다. 규장각 도서에 있다.
표지에는 제1책에서 10책까지의 순서로 기록되어 있으나, 내용에는 제7책 권14까지로 일단 끝나고 제8책에서 10책까지는 다시 권1로 시작하여 권6으로 끝나고 있다. 제1∼7책의 권1에 시·소(疏), 권2∼10에 서(書), 권11∼13에 잡저, 권14에 서(序)·기(記)·발(跋)·잠(箴)·전(傳)·상량문·제문, 제8∼10책의 권1에 시, 권2·3에 서(書), 권4·5에 잡저, 권6에 서(序)·기·발·제문·행장·묘갈명·유사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로 보건대 제8책부터는 속집(續集)의 성격으로 편집된 듯하다.
서(書)는 전우(田愚)·곽종석(郭鍾錫)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에게 보낸 것인데 학문적인 것보다는 일상적인 내용이 더 많다. 또한, 지구(知舊)·문생을 상대로 한 성리(性理)·경전(經傳)·예설(禮說) 등에 대한 답문도 보인다.
잡저에는 이항로(李恒老)의 제자인 유중교(柳重敎)가 심설(心說)에서 주기설(主氣說)을 주장한 데 대해 이진상(李震相)의 학통인 곽종석이 심즉리(心卽理)라는 쪽에서 논변하자, 저자가 두 학설을 열서(列書)한 후, 다시 심(心)은 기(氣)라는 입장에서 자신의 변설을 붙여 놓은 글이 실려 있다. 본체지성(本體之性)·기품지성(氣稟之性)·형체지성(形體之性)·형기지성(形氣之性)·기질지성(氣質之性)이라는 곽종석의 오성설(五性說)에 대해 성(性)은 이(理)라는 쪽에서 반박하기도 하였다. 또, 『논어』·『예기』·『대학』 등에 대한 물음에 답을 하고 전우의 득실 판정을 붙였다.
그밖에 저자가 태극교(太極敎)에 몸담고 있으면서 『동아일보(東亞日報)』 제37호의 사설에 대해 통박한 것, 동양 삼국(三國)에 포고한 것, 정국의 벼슬아치와 유생들에게 유시(諭示)한 것, 태극교 충청남도 총지부의 규례, 태극도에 준한 인극지도(人極之圖)와 그 해설 등이 실려 있다. 그리고 『중용』의 의문처를 제시하고 거기에 선인들의 학설과 자신의 주견을 가한 「중용설(中庸說)」, 1932년 중국과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정전(停戰) 권유문, 중화민국에 보낸 「군주설(君主說)」 등도 함께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