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형이라 함은 징역·금고·구류 등 자유형의 집행방법을 말한다. 넓은 의미에 있어서 행형은 사형수의 수용, 노역장유치 및 미결수 수용 등도 <행형법>에 같이 규정하고 있어 이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행형은 본래의 의미가 자유형의 집행이므로 자유형의 집행 이외의 것은 보통 행형론에서 제외된다는 것이 좁은 의미의 행형이다.
자유형의 집행은 수형자에 대한 교육개선 등 교정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반면에 수형자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므로 법률로써 그 집행방법을 규율하고 있다. 따라서 자유형의 집행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하고 있는 법률이 <행형법>이다. 이 <행형법>은 수형자의 마그나 카르타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행형의 목적은 징역형·금고형·구류형 및 노역장유치를 사회로부터 격리하여 교정교화하며, 건전한 국민사상과 근로정신을 함양하고 기술교육을 실시하여 사회에 복귀시키는 데 있다. 이와 같이, 행형의 목적이 교정에 있고 행형이 교정교육과 그 본질을 같이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유형의 집행을 중심으로 하여 수형자의 교정교화·사회복귀를 도모하고 있으므로 행형제도는 피구속자의 교정과 사회복귀를 기본목적으로 하는 처우와 미성년범죄자는 성년범죄자와 격리하여 그 연령과 법률상 지위에 상응하는 처우를 하는 것이다.
고대로부터 18, 19세기에 와서 형벌의 본질을 사회방위의 수단으로 이해하여 자유형 (행형)은 한편으로 범죄인을 사회로부터 격리시켜 사회의 안전을 유지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범죄인을 교화개선하는 목적형주의에 입각 행형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목적형주의는 다시 순화되어 행형은 범죄인의 자유를 박탈하여 이를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것은 단순히 교육을 위한 수단으로 이해하는 교육형주의로 발전하게 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행형의 목적은 자유박탈이라는 고통을 가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수형자를 교정교화하여 건전한 국민으로 재사회화시키는 데 있는 것이다.
행형제도는 형벌의 목적에 따라 다르지만 우리 나라의 행형을 개관하면 조선왕조까지는 형벌의 목적이 응보에 있었고,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부터 목적형과 교육형주의에 의한 교화개선·재사회화를 위하여 행형이 이루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행형은 인류가 집단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있었다고 추측된다. 왜냐하면, 사회가 있는 곳에는 그 사회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규범이 있고, 그 규범에 위반한 자의 제재를 위한 행형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특징적인 성격은 제정일치시대인 고대사회일수록 형벌은 준엄하고 가혹했으며 형벌의 목적 또한 응보에 있었으며, 근대·현대에 이르면서 형벌은 완화되고 형벌의 목적도 교화개선, 범인의 재사회화를 도모하고 있는 점이다.
고조선시대에는 「팔조금법(八條禁法)」이라는 준엄한 법령이 있어 고조선 사회의 안녕질서를 유지하였고, 형벌 또한 동서양 모두 고대사회의 특징인 그 가혹성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에 따르면, 옥저·맥·부여 등에서도 고조선과 같이 준엄한 형벌은 응보를 바탕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부여에서는 영고(迎鼓)라는 행사 때 온 국민이 천신에게 제사하고 음주가무하면서 죄인을 석방하였으며, 한편 촌락민이 서로 경계를 침범하면 중벌에 처했고, 살인자는 사형에 처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알 수 있다.
고구려·백제·신라 등 삼국시대에도 형벌은 준엄하였고 형벌의 목적은 응보에 있어 가혹했던 것은 공통점이라 하겠다. 다만 삼국이 다같이 특사(特赦)제도가 있었다는 점은 괄목할만한 행형의 특색이고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에는 전제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재판기관도 점차 정비되어 행형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1) 고구려
고구려의 행형은 범죄행위에 대한 제재라는 관념이 확립되지 못하여 수사단계에서 일시 구금해 놓은 것이나 고문의 수단을 가하는 것도 모두 형으로 생각하였다. 따라서, 재판에 따라 집행한 형과 법외의 형이 있었으므로 고구려에 구금시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 백 제
백제의 행형은 고구려의 그것보다 활발하여 전제왕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반역운군(反逆運軍) 및 살인자는 참수(斬首)하였고, 도(盜)는 유형(流刑), 관인(官人)의 속죄는 장물의 3배를 징수한 후 족신금고에 처하였다. 이 때의 금고는 거소(居所)를 제한하고 출입을 금지시키는 정도에 그쳤으므로 오늘날의 금고형과는 성격이 달랐다.
백제에도 수금시설인 형옥(刑獄)이 있었으나 독립된 기관으로서가 아니라 관사(官司)의 소속기관으로 있었다. 260년(고이왕 27)에 형옥사(刑獄事)를 관장하는 조정좌평(朝廷佐平)을 두었는데, 형옥은 이 조정좌평에 속한 것으로 그 명칭도 영어(囹圄)라고 하였다.
(3) 신 라
신라의 행형은 개국 초기부터 사형은 주로 참수형과 사약형(賜藥刑)이었고, 열지형(裂肢刑)과 같은 잔인한 형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아 완화된 형벌의 집행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대사(大赦)와 감면(減免) 등이 행하여졌던 것으로 보아 법률체계가 갖추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근대적 법률형태는 제25대 법흥왕 때에 이루어졌으며 제28대 진덕여왕 5년, 곧 651년에는 좌이방부(左理方府)라는 사법기관을 설치하여 율령(律令)을 관장하게 하였다가 667년(문무왕 7)에 우이방부(右理方府)로 하여금 관장하게 하였으니 행형제도가 비로소 제도화한 것이다.
여기에서 일반 형사범에 대하여 국왕 내지 사법기관의 권력으로 사면·감형·복권 등의 조처가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이 우리 나라의 행형제도에 관한 기록이 남게 된 것은 삼국시대부터라고 하겠다.
고려시대는 중세적 전제왕국의 체제를 확립하고 형의 집행은 중앙에서는 개성부 또는 전옥서에서, 지방에서는 각 관아에서 하였다. 형의 종류도 사형·유형·체형·도형 등이 있었다.
형의 집행은 전옥서나 감옥에서 한 것은 물론, 관청에서 체포·감금·신문·수금고문(囚禁拷問) 및 어느 정도의 행형까지도 수행하였다. 관청에서 행형의 일부를 맡게 된 것은 삼권이 분립되지 않았던 시대의 특징이라 하겠다.
조선시대의 사회적 성격을 보면 유교중심의 관료적인 중앙집권적 사회라고 말할 수 있다. 조선시대의 관료기구는 문·무와 경(京)·외(外) 등으로 나누어지며, 중앙정부기관으로 의정부·육조가 있고 지방행정기관으로 관찰사·수령 등이 있었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행형제도는 고려시대의 제도를 계승하여 전옥서를 설치하고 영(令)·승(丞)을 두었는데, 1414년(태조 14)에 영을 폐지하고 승(丞)·부승(副丞)으로 하다가 1743년(영조 19)에는 전옥서의 지위를 『경국대전』에 따라 종6품 아문으로 정하였다가 다시 그 지위를 높여 『육전조례(六典條例)』 중 전옥서조에 전옥서는 옥수(獄囚)를 관장하도록 하였다.
이 전옥서 외에도 의금부소속으로 관인·양반계급의 범죄자를 수금한 금부옥(禁府獄), 병조·비변사·포도청 등의 옥으로 직수제사옥(直囚諸司獄)과 궁중에서 수금 이상의 죄인에게는 내수사옥(內囚司獄)이 있었고, 대원군시대에 천주교도를 탄압한 결과 죄수가 급증하여 새로 생긴 서소문옥(西小門獄) 등이 중앙의 감옥이었다. 지방에는 도옥(道獄)·부옥(府獄)·군옥(郡獄)이 있었다.
그 뒤 조선왕조 개국 503년의 대개혁(갑오경장)으로 포도청을 폐지하고 내부아문의 관할로 경무청(警務廳)이 창설되어 전옥서를 감옥서(監獄署)라 개칭, 경무사(警務使) 직할에 두고 좌우포도청의 옥은 폐지하였다.
조선시대의 감옥은 구치감(拘置監)으로서의 효용만으로 존재하였다. 당시의 형벌은 오늘날 자유형과 같이 시간을 요하는 형벌은 없었고, 사형·체형·유형과 같은 것만 있었으므로 형이 확정되면 곧 집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따라서 재판 후에는 일정한 기간 행형 때문에 죄인을 구속해 둘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조선시대의 행형은 갑오경장 이후 미결수 외에 기결수도 구금하게 됨으로써 실제로 징역형·금옥형(禁獄刑) 등의 자유형이 존재한 것은 이 때부터이다.
일제의 행형은 일제강점과 동시에 조선총독부 감옥관제로 개정하고 조선총독부 감옥은 1차로 그 소재지를 관할하는 복심법원(覆審法院) 검사장이 감독하고 2차로 조선총독이 감독하도록 되어 있다.
조선총독부 감옥의 설치 및 폐지는 조선총독이 정하며, 필요한 경우는 분감을 둘 수 있게 하였다. 1923년 5월 조선총독부령 제72호로 감옥의 명칭을 형무소(刑務所)로, 분감을 지소(支所)로 개칭하는 한편 소년형무소를 신설하였다.
「조선감옥령」의 내용은 수용·구금·계호·작업·교회(敎誨) 및 교육·급여·위생 및 요양·접견 및 서신·영치·상벌·석방·사망 등으로 되어 있다. 이는 광복 후 우리 나라 「행형법」의 기본을 이루었다.
조선총독부 사무분장규정에 따르면 감옥에 관한 사항은 법무국이 주무로 법무국장이 조선총독의 명을 받아 복심법원 검사장 이하를 감독하도록 되어 있다.
당시 수형자의 처우에 대하여는 일본에서 1934년부터 계급적 누진처우제를 실시하였던 것을 우리 나라에서는 우선 1923년부터 소년수형자에 대해서만 실시해오다가 1938년 1월 1일부터 성년수형자에 대해서도 실시함으로써 행형사상 획기적인 전기를 이루었다.
수형자의 처우규칙은 수형자의 개전(改悛)을 촉구하고 갱생하기 위하여, 그 노력의 정도에 따라 누진적으로 처우를 완화하여 점차 사회생활에 적응하게 할 목적으로 누진처우의 단계를 4계급으로 나누고, 매월 행형성적에 따른 점수를 인격점과 작업점으로 환산하여 평가하였다. 누진처우의 기준에 대하여는 구금·계호·작업·교화·접견·서신·급여 등으로 결정하도록 규정되었다.
1912년 3월 조선총독부령 제33호로 「가출옥규칙」이 제정되고, 같은 해 4월 1일부터 시행되어오다가 1937년 4월 총독부훈령 제19호로 「가석방심사규칙」이 제정, 실시됨으로써 가출옥은 가석방으로 개칭, 자유형의 수형자에게 형기 전 석방을 가능하게 하였다.
우리 나라의 현행 행형제도에 있어서 교정행정은 교육행정으로 이념을 전환하여 1962년 2월 27일 각령 제487호로 형무소를 교도소라 개칭하는 등 선진적 행형제도를 도입하여 실시해오다가, 5·16군사정변 이후 귀휴제도(歸休制度)·누진제도, 각종 위원회의 운영과 사법시설조성법 및 이 법의 특별회계에 의한 교정시설의 개선 등 교정행정의 발전을 위한 시책이 추진되었다.
교정행정의 기구도 법무부 교정본부는 교정행정의 감독기관으로서 그 소속하에 교정과·계획과·관리과·소년과·시설과를 두고, 교도소·교도관학교 및 소년원에 대한 기획업무의 실시와 시설의 개량, 수형자 및 원생의 교화·교육관리·교도작업의 운영과 직업훈련, 전문직원의 양성과 배치, 교정시책의 수집 등 교정행정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수형자의 교정처우에서도 수형자의 형기·범수(犯數)·성별·연령·죄질 등을 참작하여 거실과 작업을 구별, 수용하는 데 그쳤던 분류수용을 수형자의 개성과 능력, 범죄원인을 과학적으로 진단분류하여 수형자의 개별처우에 적정을 기하기 위해 수형자분류심사방안인 분류심사와 행장심사(行狀審査)를 일원화한 교정누진처우를 하게 되었다.
교도소는 넓은 의미로는 형사피고인과, 피의자 및 사형을 선고받은 자를 수용하는 형사소송절차와 형집행을 보전하는 국가시설이지만, 좁은 의미로는 징역·금고·구류 등의 자유형을 집행하는 국가시설을 말한다.
이 교도소는 수형자의 연령에 따라 교도소와 소년교도소로 나누어 수용하고, 성별에 따라 남사(男舍)와 여사(女舍)로, 판결의 유무에 따라 기결감(旣決監)과 미결감(未決監)으로 나누어 수용한다.
또한, 특별법상의 처분에 따라 보호감호처분을 받은 자는 보호감호소(경상북도 청송)에, 보안감호처분을 받은 자는 보안감호소(청주)에 수용하며, 특수목적에 따라 불구자와 정신미약자(공주교도소)·폐결핵환자(마산교도소)·나환자(순천교도소 소록도지소)·미전향좌익수형자(대전 및 김해교도소)는 각각 구분하여 수용하고 있다.
행형의 업무는 법무부장관이 관장하고 그 산하에 교정본부를 두어 교정과·보안과·작업지도과·교화과·관리과·경비과·시설과를 두어 수행하고 있다. 수형자의 수용은 독거수용(獨居收容)을 원칙으로 하고, 필요한 경우 혼거수용(混居收容)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상과 같이, 우리 나라의 행형제도는 조선시대 말엽 갑오경장을 효시로 <감옥규칙>이 제정되고 1898년에 <감옥규칙>을 정비, 교육형주의가 도입되고 일제강점 후 1912년 <조선감옥령>에 따라 시행하여왔다.
그리고 8·15광복과 더불어 미군정하에서의 행형은 「조선감옥령」을 의용하여오다가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이후 1950년에 우리 나라 「행형법」이 제정, 공포되고 1961년에 민주행형으로 개정하고, 1962년 12월 24일 법률 제1222호로서 귀휴제도 등 민주행형으로 면모를 갖춘 뒤 여러 차례의 개정을 거쳐, 최근 1996년 12월에 또 다시 개정한 뒤에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