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5·10선거의 평화적 실시를 목적으로 조병옥(趙炳玉) 경무부장의 지시로 조직되었다.
1948년 2월 26일 유엔 소총회에서 유엔선거감시단의 감시가능지역선거 실시를 제안한 미국측 제안이 결의, 채택됨으로써 결정된 5·10선거를 앞두고 남한만의 단독선거에 대하여 김구(金九)·김규식(金奎植)계열은 이를 반대하고 5·10선거 불참가 태도를 선언하였으며, 좌익계열은 파괴와 소요행동을 날로 격화시켰다.
전국 3만의 국립경찰만으로서는 1만 3,000여 개소에 이르는 투표소의 경비가 불안하다는 이유로 당시 과도정부하에서 이 단체가 조직되었다. 이는 전국 각지의 우익청년단원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좌익계열의 파괴와 소요를 방지하여 5·10선거를 무사히 시행하는 것이 그 조직목적이었다.
그러나 5·10선거가 끝난 5월 13일 유엔한국위원단 임시의장의 명의로 된 유엔한국위원단 59호 성명에서 “금번 선거는 일부세력이 불참하였고 향보단이 투표소를 감시한다는 명목하에 자유분위기를 파괴하였으므로 본 선거효과에 대하여서는 보류한다.”라는 발표로 일시 물의를 일으켰다.
그러나 결국 유엔한국위원단은 “본 선거는 대체로 자유분위기 속에서 실시되었다.”라고 결론지었다. 향보단은 그 뒤 5월 25일 조병옥 경무부장의 명령으로 해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