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4.33m. 석탑은 속초에서 신흥사(神興寺)로 들어가는 설악동 어귀에 자리하고 있는데, 현재의 위치가 원래의 자리로 추정된다. 주변에서는 신라 하대~고려 초기에 제작된 막새가 출토되었다. 이 막새는 대체로 9세기 경에 만들어진 것이어서, 석탑의 건립 시기도 이와 비슷할 것으로 짐작된다. 사적비명에 따르면, 현재의 신흥사는 삼국시대에는 향성사, 통일신라시대에는 선정사(禪定寺)라고 불렸다고 한다.
석탑은 전체를 화강암으로 만든 일반형 신라 석탑으로, 2층 받침돌 위에 3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올린 모습이다. 자리는 정남향에서 서쪽으로 10°정도 틀어져 있다. 8장의 돌로 구성된 바닥돌은 거의 아래부분까지 땅 위에 드러나 있다. 바닥돌 위에는 높직한 굄대처럼 4장의 길고 큰 돌로 결구된 아래층 받침돌의 하대석(下臺石)이 놓여 있고, 그 위에는 크고 작은 8장의 길고 네모난 돌로 조립된 아래층 받침돌의 면석이 있다. 면석에는 좌우로 모서리 기둥과 함께 가운데 기둥이 가지런히 조각되어 있다. 아래층 받침돌의 덮개돌 역시 크고 작은 5장의 널돌로 구성되었는데, 윗면은 두드러지게 경사를 이루어 네 귀퉁이의 합각(合角)이 뚜렷하며, 가운데 부분에는 둥글고 각진 굄이 새겨져 있다. 굄 위에는 8장의 널돌로 조립된 윗층 받침돌의 면석이 놓여 있는데, 양쪽 면에 모서리 기둥을 조각한 기둥 모양의 돌을 네 귀퉁이에 세우고서, 각 면의 가운데에는 가운데 기둥을 새긴 널돌을 끼워 결구(結構)한 모습이다. 윗층 받침돌의 덮개돌은 4장의 널돌로 이루어져 있는데, 밑면에는 쇠시리인 부연(副椽)이 마련되어 있고, 약간의 경사도 없이 평평한 윗면에는 아무런 굄도 두지 않았다.
탑신부(塔身部)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조성되었다. 몸돌의 각 면 좌우에는 모서리 기둥이 가지런히 조각되어 있다. 지붕돌은 밑면에 물이 떨어지는 구멍인 낙수홈 시설이 없고 받침만 5단씩 새겨져 있으며, 가운데 부분에는 몸돌을 받치기 위해 돋을새김한 각진 2단의 굄이 있다. 윗면인 낙수면은 평박(平薄)하고 네 귀퉁이의 합각도 뚜렷하지만, 추녀 끝의 반전(反轉)은 전혀 표시되지 않아 경쾌하기보다는 오히려 둔중(鈍重)한 느낌을 준다. 이처럼 추녀가 전각까지 직선으로 뻗친 모습은 신라 석탑의 양식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다만 네 귀퉁이의 전각에는 양쪽으로 풍경을 달았던 작은 구멍이 있어 석탑의 장엄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석탑은 보수복원 계획에 의하여 1966년 12월에 해체된 뒤 복원되었다. 이때 3층 지붕돌 가운데에서 사리를 봉안하였던 네모난 구멍이 발견되었는데, 구멍 위에는 동판(銅版) 1장이 덮여 있었지만, 사리 장치는 도난을 당하였는지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 석탑은 전체적으로 규율성이 있어 보이지만, 예외적인 양식과 건조 수법이 일부분에 보여 주목된다. 특히 동해안 일대에 있는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북쪽에 위치한 석탑이어서 그 가치가 크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