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1책. 필사본.
세종 때는 국내의 향약의 분포실태조사를 전국적으로 실시하여 ≪세종실록≫ 지리지 및 ≪경상도지리지≫ 등에 수록하였다.
또한 향약의 올바른 채취·감별·재배·수납 등을 위한 약무행정책을 수립하고, 더 나아가서는 향약본초학 및 향약의방을 수립하기 위하여 ≪향약채취월령≫ 및 ≪향약집성방≫ 등을 편찬, 간행하였다.
이 책은 ≪향약집성방≫ 중의 본초지부(本草之部)를 편찬하기 위한 준비용으로 일반대중이 향약채취에 직접 편리하게 활용하게 하기 위하여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인본(印本)은 산실되어 존재하지 않고, 일본으로 건너간 수사본(手寫本)을 전사한 것이 규장각도서에 보관되어 있을 따름이다.
내용은 춘하추동 12개월로 나누어서 토산약재를 배열하고 채취에 중점을 두어 각 약초들의 채취에 적합한 월령과 약초의 이름 아래에는 이두로 된 향약명이 부기되어 있다. 이 향약명은 약용식물의 연구뿐만 아니라 우리의 고전어의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되는 것이다. 실제로 향약채취에 종사하는 채취정부(採取丁夫)들이 알기 쉬운 약초의 향명(鄕名)을 붙이게 된 것으로 짐작된다.
윤회(尹淮)의 발(跋)에는 “토산약재 수백 종에 대하여 향명을 쓰고, 다음에 미(味)와 성(性), 춘추채취(春秋採取)의 조만(早晩), 음양건폭(陰陽乾暴)의 법(法)을 간단히 적은 것이다……”라는 글귀가 보인다.
수재되어 있는 약재의 수효가 수백 종이라고 되어 있으나 실제로 수록되어 있는 약재의 종류는 160종이며, 두 개의 달에 중복해서 수록된 5종의 약재를 빼면 155종에 불과하다.
일본에서 사본을 만들 때 자기네들에게 필요한 품목만 초록하여 그렇게 된 것인지, 처음부터 155종의 간략한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향약채취월령≫은 민간에서 월별로 채취하여야 될 약재의 명칭을 목록화한 것이므로, 한어의 약재명과 함께 그에 해당하는 우리의 향명을 차자(借字)로 기록하여 민간인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게 하였다. 이 향명은 훈민정음 창제 직전의 우리말이므로 국어의 발달사를 살피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 책은 134종의 한어 약재명에 대하여 143종의 향명표기를 보여주는데, 이 가운데 주서(朱書)라고 한 것은 본래부터 이 책에 있던 것이 아니고 전사자(轉寫者)가 다른 책에서 옮겨 적은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원간본은 전하지 않고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우리말을 모르는 일본인이 전사한 것이기 때문에 전사과정에서의 잘못도 여럿 나타난다.
升古体伊(→升古休伊·도고말이), 這里居(→這里君·자리군), 叱利阿里(→叱科阿里·ᄭᅪ아) 등이 그러한 예들이다. 차자표기법은 ≪향약구급방≫의 그것과 차이가 없다. 향명들에 나타난 언어현상들은 다음과 같은 것이 특징적이다.
‘豆音矣羅耳·두름의나ᅀᅵ(葶藶), 吾兒尼·오ᅀᆞ니(猯肉), 加亇曹而·가마조ᅀᅵ(龍葵菜)’에서는 ᅀᅠ음의 존재를 보여준다.
‘盡月背·진ᄃᆞᆯᄫᆡ(羊躑燭), 加火左只·더ᄫᆞ자기(茵蔯蒿), 水芳荷·믈○하(水蘇)’에서는 ○음의 유지를 보여주지만, ‘阿郁·아욱(冬葵子)’에서는 이미 ○음이 탈락되었음을 보여준다.
‘有乙梅·율믜(茵蔯蒿仁)’는 ≪향약구급방≫의 ‘伊乙每·이을믜’가 모음의 축약으로 발달된 것이다. 음절말에서 ㅈ음과 ㅅ음은 구별되지 않아 ≪향약구급방≫의 ‘道羅次·도랒(桔梗), 目非也次·눈비얒(茺蔚)’이 ‘都乙羅叱·도랏, 目非也叱·눈비얏’으로 표기되었다.
‘蛇都羅叱·ᄇᆞ얌도랏(蛇床子), 吾獨毒只·오독도기(狼毒), 每作只根·ᄆᆡ자기불휘(草三陵)’는 각각 ≪향약구급방≫의 ‘蛇音置良只·ᄇᆞ얌두러기, 烏得夫得·오ᄃᆞᆨ보ᄃᆞᆨ, 結次邑笠根·ᄆᆡᄌᆞᆸ갇불휘, 豆也味次·두여맞’에서 발달한 것으로 그 어원이 상실되었거나 민간어원에 의하여 새로운 어원을 획득한 것이다.
한편, ‘白蔓月阿比·ᄒᆡᆫ만ᄃᆞᆯ아비(靑箱子)’는 후대에 ‘蔓月阿彌·만ᄃᆞᆯ아미, ᄒᆡᆫ만ᄃᆞᆯ아미’로 나타나서 그 어원적 의미 ‘아비’가 ‘어미’로 바뀌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