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성

  • 역사
  • 인물
  • 고려 후기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예조판서, 동지중추부사, 예문관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시호공간(恭簡)
  • 맹명(孟明)
인물/전통 인물
  • 본관하양(河陽,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
  • 사망 연도1442년(세종 24)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병조좌랑|지평|공조정랑|장령|경기도도관찰사|예조판서
  • 출생 연도1382년(우왕 8)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권오호 (한학자)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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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예조판서, 동지중추부사, 예문관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하양(河陽). 자는 맹명(孟明). 허윤창(許允昌)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허귀룡(許貴龍)이고, 아버지는 한성부판윤 허주(許周)이며, 어머니는 이원상(李元樀)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02년(태종 2) 식년문과에 동진사(同進士)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을 거쳐, 사간원우정언이 되었다.

그 뒤 형조·예조·병조의 좌랑을 거쳐, 1411년 지평에 올랐다. 곧 공조정랑에 올랐고, 장령이 되었다. 1421년(세종 3) 지사간원사(知司諫院事)가 되고, 우사간과 동부대언(同副代言)을 거쳐, 지신사(知申事)가 되었다. 1431년에 대사헌에 올랐고, 곧이어 형조참판과 예조참판을 지낸 뒤 경기도도관찰사가 되었다.

1435년 예조판서에 올랐으나 병으로 사임하였다. 이듬해 동지중추부사가 되고, 1438년 중추원사를 거쳐 이조판서가 되었다. 1440년 예문관대제학에 이르러 병으로 사임하였다. 성격이 강직하고 불의를 못 참았으며, 총명함으로 왕의 총애를 받았다. 시호는 공간(恭簡)이다.

참고문헌

  • - 『세종실록(世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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