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처용가는 작자와 연대 미상의 고려속요이다. 「고려처용가」는 신라 향가인 「처용가」에서 유래되었다. 궁중의 나례(儺禮)와 결부되어 「처용희」, 「처용무」로 발전되면서 주술 의식으로 발전하였다. 처용의 형상에 대한 묘사와 찬양, 역신에 대한 위협적인 언술, 처용에 대한 역신의 발원 등이 서사적 구조로 짜여 있다. 「고려처용가」는 향가 「처용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궁중의 연희와 나례에서 실연된 연희성과 제의성의 두 요소가 복합적으로 계승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가사로 볼 때는 4단 또는 5단 구성, 악곡으로 볼 때는 전강 · 후강 · 대엽의 강엽구조를 2번 반복.
「고려처용가」는 신라 향가인 「처용가」에서 유래되었다. 「고려처용가」 가운데 향가 「처용가」의 끝 2구를 제외한 6구가 포함되어 있어 그 연관성이 확인된다. 하지만 내용과 형식에서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삼국유사』 「처용랑 망해사(處容郞 望海寺)」조에, 처용이 아내를 범한 역신(疫神)을 춤과 노래로 용서하자 “이후부터는 공의 형상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문에 들어가지 않겠습니다.”라고 맹서한 후, 이로 인하여 나라 사람들이 처용의 모습을 그려 문에 붙여 사기(邪氣)를 물리치고 경사스러움을 맞아들였다는 데서 향가 「처용가」는 역신 퇴치의 주술적 기능이 인정되지만, 「고려처용가」는 궁중의 나례(儺禮)와 결부되어 「처용희(處容戱)」, 「처용무(處容舞)」로 발전되면서 주술의식으로 자리 잡기 때문이다.
그러한 역사적 사실은 『고려사』 기록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데, 고종 23년에 내전의 곡연에서 채송년(蔡松年)이 “안경인(安景仁)이 처용희를 잘한다”고 말한 기록이나 충혜왕 4년에 원(元)의 사신을 위하여 향연을 베풀 때 처용희를 하였다는 기록, 그리고 신우 11년에 사냥에서 돌아와 처용희를 놀았고, 또 12년에는 처용가면을 쓰고 춤을 추었다는 기록 등에서 이를 알 수 있다.
한편 이색(李穡)의 『목은시고』 「구나행(驅儺行)」에서 “신라의 처용은 칠보를 두르고(新羅處容帶七寶)”나, 또 같은 책 「자동대문지궐문전산대잡극전소미견야(自東大門至闕門前山臺雜劇前所未見也)」에서 “처용의 적삼과 소매가 바람을 따라 도네(處容衫袖返風徊)”의 시구, 그리고 이숭인(李崇仁)의 『도은집』의 시제(詩題) 「11월 17일 밤에 공익이 부르는 신라의 처용가를 들었는데, 성조가 비장해서 사람을 감격시키는 바가 있었다(十一月十七日夜聽功益新羅處容歌聲調悲壯令人有感)」 등을 통해서도 「처용가」 「처용무」 「처용희」가 실연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제야(除夜)의 구나례(驅儺禮)에서 「학연화대처용무합설(鶴蓮花臺處容舞合設)」 중에 행해지는 오방처용(五方處容)의 「처용무」로 변모되어 벽사의 주술기능이 보다 확대된다. 조선조의 기록들은 『악장가사』, 『악학궤범』, 『악학편고』에 가사(歌詞)가 실려 있고, 『시용향악보』에는 「잡처용(雜處容)」이 실려 전한다. 특히, 『악학궤범』에는 악조와 가사 그리고 무희(舞戱)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그 밖에 『고려사』,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등에도 「고려처용가」에 대한 기록들이 전한다.
「고려처용가」의 구성에 대해서는 3단(김사엽), 4단(양주동, 김형규, 박병채, 서대석, 최철 등), 5단(김사억, 허남춘, 최용수 등), 6단(정병헌), 8단(여증동) 등으로 다양하게 제시되어 왔다. 그중 ‘서사(序詞)’, ‘처용의 모습 찬양’, ‘처용의 위엄과 능력’, ‘역신에 대한 위협과 발원’의 4단구성과 ‘서사’, ‘처용의 모습 찬양’, ‘처용의 위엄과 능력’, ‘역신에 대한 위협’, ‘발원’의 5단구성이 주목을 받고 있다.
「고려처용가」의 내용은 세분해서 살펴보면, ‘배경(태평성대)─처용의 형상 묘사─처용의 우상 세움 찬양─처용의 멎, 외얏, 녹리에 대한 명령과 위협─역신의 침범(신라 「처용가」의 1∼6구 삽입) 및 처용의 위용─처용에 대한 제물─처용의 열병신 요구─열병신의 발원(도망)’ 등으로 짜여 있다. 이는 처용을 불러 모시고, 그 형용을 찬양함으로써 즐겁게 만들고, 그 형상을 많이 만들어 섬기는 것을 칭송함으로써, 역신을 퇴치하는 주사로 위협하고, 역신을 도망케 하여 구축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무가와 다르지 않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그 표현방식에서도 감탄, 설의, 명령, 돈호, 가정, 직유, 도치, 인용, 원망, 예찬, 회유, 발원 등의 어법이 다양하게 구사되는 특징도 가지고 있다.
「고려처용가」는 향가 「처용가」와 달리 처용의 형상에 대한 묘사와 찬양, 역신에 대한 위협적인 언술, 처용에 대한 역신의 발원 등이 서사적 구조로 짜여 있다. 특히 처용의 힘을 빌려 역신을 물리치기 위한 독특한 극적 형식은 고려가요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 준다. 그러므로 「고려처용가」는 향가 「처용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뿐 아니라 궁중의 연희와 나례에서 실연된 연희성과 제의성의 두 요소가 복합적으로 계승되었다는 특이성으로 인해 그 문학사적 의의가 재조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