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한성우윤, 병조참판, 예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윤옥(允玉)
계주(桂洲)
시호
양경(良景)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45년(인조 23)
사망 연도
1729년(영조 5)
본관
양천(陽川)
주요 관직
병조참의|경주부윤|한성우윤|병조참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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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한성우윤, 병조참판, 예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윤옥(允玉), 호는 계주(桂洲). 좌의정 허침(許琛)의 후손이며, 허욱(許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허신(許紳)이고,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허설(許卨)이며, 어머니는 현감 유의함(柳宜涵)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72(현종 13) 생원과 진사 양시에 합격했으며, 1683년(숙종 9) 증광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성균관전적을 거쳐, 병조좌랑·전라도사 등을 지낸 뒤 지평이 되었다. 1687년 노론과 소론의 당쟁에서 노론의 영수 송시열(宋時烈)을 숭앙한다고 소론의 미움을 사서 남인의 거두였던 윤휴(尹鑴)의 당(黨)이라고 지목받아 한때 관직에서 물러났다.

그 뒤 정승으로 있던 이단하(李端夏)가 그를 변호해 이천부사(伊川府使)가 되었다. 그러나 1689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정권을 잡게 되자 탄핵을 받아 파직당하였다. 1694년 갑술옥사로 남인이 몰락한 뒤 다시 등용되어 통례(通禮)·예빈시정·풍기군수 등을 역임했다.

1697년 문과중시에 병과로 급제해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승진하고, 안주목사로 부임하였다. 이어 동부승지·병조참의·경주부윤·한성우윤 등을 역임하였다. 그 뒤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으며, 1719년 병조참판이 되었다.

경종 즉위 후 소론이 신임사화를 일으켜 노론을 축출할 때 관직을 박탈당하였다. 그러나 영조가 즉위한 뒤 노론이 다시 득세하게 되자, 1725년(영조 1) 예조판서에 임명되었다. 이 때 준소(峻少) 계열인 박필몽(朴弼夢)을 신임사화의 문제로 탄핵해 유배시키기도 하였다.

대질(大耋: 80세 노인)로서 특별히 은전(恩典)을 받아 자헌대부(資憲大夫)로 승진하고 지중추부사가 되었다. 청백리로서 이름이 높았다. 시호는 양경(良景)이다.

참고문헌

『숙종실록(肅宗實錄)』
『영조실록(英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기원집(杞園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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