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한성우윤, 병조참판, 예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정승으로 있던 이단하(李端夏)가 그를 변호해 이천부사(伊川府使)가 되었다. 그러나 1689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정권을 잡게 되자 탄핵을 받아 파직당하였다. 1694년 갑술옥사로 남인이 몰락한 뒤 다시 등용되어 통례(通禮)·예빈시정·풍기군수 등을 역임했다.
1697년 문과중시에 병과로 급제해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승진하고, 안주목사로 부임하였다. 이어 동부승지·병조참의·경주부윤·한성우윤 등을 역임하였다. 그 뒤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으며, 1719년 병조참판이 되었다.
경종 즉위 후 소론이 신임사화를 일으켜 노론을 축출할 때 관직을 박탈당하였다. 그러나 영조가 즉위한 뒤 노론이 다시 득세하게 되자, 1725년(영조 1) 예조판서에 임명되었다. 이 때 준소(峻少) 계열인 박필몽(朴弼夢)을 신임사화의 문제로 탄핵해 유배시키기도 하였다.
대질(大耋: 80세 노인)로서 특별히 은전(恩典)을 받아 자헌대부(資憲大夫)로 승진하고 지중추부사가 되었다. 청백리로서 이름이 높았다. 시호는 양경(良景)이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기원집(杞園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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