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전라도관찰사, 참지의정부사, 한성부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392년 조선이 개국되자 내부경(內府卿)에 임명되었는데, 그의 인척들이 고위 관직을 점유함으로써 조선의 거족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1397년(태조 6) 사헌중승(司憲中丞)을 겸직하고, 그 해에 노비변정도감도청사가 되어 노비 소유에 대한 소송 사건을 공정하게 처리하였다.
1399년(정종 1) 노비변정도감이 폐지되자, 판사수감사(判司水監事)·지형조사(知刑曹事)를 역임하였다. 1401년(태종 1) 판전농시사(判典農寺事)로서 경상도안렴출척사(慶尙道按廉黜陟事)가 되었으나, 새로 개간된 토지 상황을 잘 파악하지 못해 이듬해 양주에 유배되었다.
1405년 형조참의를 거쳐, 이듬해 호조좌참의 판홍주사가 되었다가 병으로 사임하였다. 그러다가 1409년 전라도관찰사, 이듬해 참지의정부사·한성부윤·경기도관찰사 등을 지낸 뒤 병으로 사직하였다.
1416년 개성유후사유후로 복직되고, 1418년(세종 즉위년) 판한성부사로 재직 중 다시금 병으로 사퇴하였다. 시문에 뛰어났으며, 성품이 강직해 공사를 분명하게 처리하였다. 또한 가법(家法)이 엄격해 사당의 모든 행사를 주자가례(朱子家禮)에 좇아 행하였다. 시호는 간숙(簡肅)이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태조실록(太祖實錄)』
- 『정종실록(定宗實錄)』
- 『태종실록(太宗實錄)』
- 『세종실록(世宗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해동야언(海東野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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