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유정난(癸酉靖難)은 1453년(단종 1) 단종(端宗)의 숙부인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측근인 권람(權擥) · 한명회(韓明澮) 등과 모의하여 국왕을 보좌하던 대신(大臣) 황보인(皇甫仁) · 김종서(金宗瑞), 종친 안평대군(安平大君) 등을 제거한 사건이다. 수양대군은 황보인 · 김종서 등이 자신의 아우 안평대군을 중심으로 하여 먼저 반역을 도모하였기 때문에 그들을 평정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조카의 왕위를 찬탈하는 것을 통한 집권이었다.
수양대군은 계유정난에서 자신에게 협력한 사람들을 공신으로 책봉하자고 청하였고, 단종은 그 요청을 받아들여 43명의 인물을 정난공신으로 책봉하였다.
1등은 수양대군을 비롯하여 정인지(鄭麟趾) · 한확(韓確) · 박종우(朴從愚) · 김효성(金孝誠) · 이사철(李思哲) · 이계전(李季甸) · 박중손(朴仲孫) · 최항(崔恒) · 홍달손(洪達孫) · 권람 · 한명회 등 12명이다. 2등은 권준(權蹲) · 신숙주(申叔舟) · 윤사윤(尹士昀) · 양정(楊汀) · 유수(柳洙) · 유하(柳河) · 봉석주(奉石柱) · 홍윤성(洪允成) · 곽연성(郭連城) · 엄자치(嚴自治) · 전균(田畇) 등 11명이다. 그리고 3등은 이흥상(李興商) · 이예장(李禮長) · 성삼문(成三問) · 김처의(金處義) · 권언(權躽) · 설계조(薛繼祖) · 유사(柳泗) · 강곤(康袞) · 임자번(林自蕃) · 유자황(柳自晃) · 권경(權擎) · 송익손(宋益孫) · 홍순손(洪順孫) · 최윤(崔潤) · 유서(柳漵) · 안경손(安慶孫) · 한명진(韓明溍) · 한서구(韓瑞龜) · 이몽가(李蒙哥) · 홍순로(洪純老) 등 20명이다.
정난공신에는 수양대군이 가장 높은 위차(位次)로 책봉되었으며, 종친으로서는 유일하다. 대부분은 문 · 무 관료이고, 엄자치 · 전균은 환관이다. 또한 한확 · 권람 · 신숙주 · 한명회 · 정인지 · 이사철 · 이계전 · 최항 · 전균 · 홍달손 · 양정 · 윤사윤 · 성삼문 · 이예장 등의 15명은 1455년(세조 1) 세조의 즉위 직후 좌익공신(佐翼功臣)에도 책봉되었고, 이후의 정국 운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한편, 성삼문의 경우는 거사(擧事)에 가담하지 않았는데도 집현전(集賢殿)의 학사(學士)가 협력했음을 나타내고자 의도적으로 공신에 책록(策錄)된 사례이다. 결국 그의 훈호(勳號)는 1456년(세조 2) 단종복위를 도모한 사건을 이유로 제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