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준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호조판서, 지중추원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시호
안숙(安肅)
이칭
안천군(安川君)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405년(태종 5)
사망 연도
1459년(세조 4)
본관
안동(安東)
주요 관직
호조판서|지중추원사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전기에, 호조판서, 지중추원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검교시중(檢校侍中) 권고(權皐)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검교정승(檢校政丞) 권희(權僖)이고, 아버지는 찬성사 권근(權近)이며, 어머니는 우정언 이존오(李存吾)의 딸이다. 형은 우찬성 권제(權踶)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27년(세종 9) 공신의 아들로서 감찰에 기용되어 1430년(세종 12)에는 호조좌랑이 되었다. 이때 공법(貢法)의 제정에 있어 척박한 산전(山田)은 매년 경작할 수 없는데, 평야지대의 전답과 같이 논한다면 폐단이 크므로 수령에게 밭주인의 신고를 받아 직접 그 경작여부를 답사한 연후에 조세를 거두도록 건의하였다.

1434년(세종 16) 종부시판관으로 진구(賑救: 재해를 입은 백성들을 구제함)을 살피기 위하여 강원도와 함길도에 파견되었다. 돌아와 지평(持平)이 되고, 1450년(문종 즉위년) 음죽현감을 거쳐 1452년(단종 즉위년) 우부승지·좌부승지를 역임하였다.

1453년(단종 1) 우승지로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首陽大君)에 협력하여 정난공신 2등에 책록되고 대사헌에 올랐다. 1455년 안천군(安川君)에 봉해지고 한성부윤·이조참판 등을 거쳐 세조의 즉위와 함께 형조판서가 되었다.

1456년(세조 2) 고명사은 겸 세자책봉주청부사(誥命謝恩兼世子冊封奏請副使)로 명나라에 다녀와함길도관찰사에 제수되었고, 이듬해에 호조판서에 임명되었다. 1459년(세조 5)에 지중추원사를 역임하였다. 세조의 왕위찬탈에 두 조카인 권남(權擥)·권경(權擎)과 함께 협력하여 모두 공신에 책봉되고 판서직을 지냈다. 시호는 안숙(安肅)이다.

참고문헌

『세종실록(世宗實錄)』
『문종실록(文宗實錄)』
『단종실록(端宗實錄)』
『세조실록(世祖實錄)』
『해동잡록(海東雜錄)』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