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산(安山).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1437년(세종 19) 내금위(內禁衛)에 소속되었다. 1453년(단종 1) 수양대군(首陽大君)의 계유정난을 도운 공으로 정난공신 3등에 책정되었다.
이어 내자시윤(內資寺尹)·삼군진무(三軍鎭撫)·대호군을 거쳐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에 승진되었다. 1463년(세조 9) 가선대부(嘉善大夫)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가 되고, 공산군(公山君)에 봉해졌다. 이 해 인순부윤(仁順府尹)으로서 진헌사(進獻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465년에 가정대부(嘉靖大夫)·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를 거쳐 1472년(성종 3)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승진되었다. 글자도 알지 못하고 기능도 없었으며 다만 술 마시기를 좋아하였으나, 홍윤성(洪允成)을 잘 섬겨서 관직을 유지하였다. 시호는 양이(襄夷)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