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손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전기 가정대부, 동지중추원사, 자헌대부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시호
양이(襄夷)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416년(태종 16)
사망 연도
1479년(성종 10)
본관
안산(安山)
주요 관직
가정대부(嘉靖大夫)|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자헌대부(資憲大夫)
관련 사건
계유정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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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조선전기 가정대부, 동지중추원사, 자헌대부 등을 역임한 무신.
생애 및 활동사항

본관은 안산(安山).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1437년(세종 19) 내금위(內禁衛)에 소속되었다. 1453년(단종 1) 수양대군(首陽大君)의 계유정난을 도운 공으로 정난공신 3등에 책정되었다.

이어 내자시윤(內資寺尹)·삼군진무(三軍鎭撫)·대호군을 거쳐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에 승진되었다. 1463년(세조 9) 가선대부(嘉善大夫)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가 되고, 공산군(公山君)에 봉해졌다. 이 해 인순부윤(仁順府尹)으로서 진헌사(進獻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465년에 가정대부(嘉靖大夫)·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를 거쳐 1472년(성종 3)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승진되었다. 글자도 알지 못하고 기능도 없었으며 다만 술 마시기를 좋아하였으나, 홍윤성(洪允成)을 잘 섬겨서 관직을 유지하였다. 시호는 양이(襄夷)이다.

참고문헌

『단종실록(端宗實錄)』
『세조실록(世祖實錄)』
『성종실록(成宗實錄)』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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