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수양대군의 심복으로 활약하여 진위 겸 진향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공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456년 단종복위운동인 사육신사건이 일어나자, 당여들을 검거하는 데 앞장섰다. 공으로 영풍군(永豊君) 이전(李瑔: 세종의 아들)의 저택과 하위지(河緯地)의 처와 여식을 노비로 하사받았다.
1462년에 명나라 황태후가 죽자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로 진위 겸 진향부사(陳慰兼進香副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무예로써 이름을 떨쳤으나, 입신을 위하여 의롭지 못한 일을 많이 하였다는 비판을 받았다. 시호는 양정(襄靖)이다.
참고문헌
- 『단종실록(端宗實錄)』
- 『세조실록(世祖實錄)』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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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정난공신 녹훈 : 『단종실록』 9권, 1453년(단종 1) 11월 4일. "의정부에서 정난한 공이 있는 이들에게 공신을 칭하하고 전각에 초상을 붙이는 것 등을 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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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진향사 명나라 행 : 『세조실록』 29권, 1462년(세조 8) 12월 8일. "진위사로 보내는 호조 참판 정자제와 중추원 부사 권언이 가지고 가는 표문과 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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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시호 추증 : 『세조실록』 44권, 1467년(세조 13) 11월 30일. "정난 공신 복성군 권언의 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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