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예천(醴泉). 초명은 예기(藝起).
한미한 집안 출신이었지만 세조가 주도한 계유정난에 참가하면서 본인과 가문의 위상이 높아졌다. 정난공신(靖難功臣) 3등에 책록되어 내구마(內廏馬) 1필, 은 14냥, 채단(綵緞) 1벌, 노비 6구를 하사받았다.
그 뒤 사직·호군·상호군을 거쳐 장용대(壯勇隊) 대장으로 재임하다가 사냥가서 부하들의 잘못으로 파직되었다. 그 뒤 복직되어 도총부도총관·평안도도절도사·영변부사 겸 절도사를 거쳐 1470년(성종 1) 경상좌도병마절도사·전라병마절도사 등을 지냈으며, 1484년양양군(襄陽君)에 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