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동시는 적어도 어린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소박하고 단순한 사상·감정을 담아야 한다. 동시가 성인시와 다른 점은 바로 이러한 ‘어린이답다’는 조건에 있다. 일반적으로 아동이 쓴 ‘아동시’까지도 동시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경향이 있으나, 엄격한 의미에서는 성인이 쓴 것만을 의미한다.
그것은 문학작품의 근본적인 성격이 창조적 의도에서 지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학습의 방편으로 쓰여진 ‘아동시’는 원칙적으로 아동문학의 한 장르로서 동시와는 구별하고 있는 실정이다. 동시의 모태가 되는 것은 동요이고, 동요의 정형률을 벗어난 내재율이나 산문율을 지닌 시가 동시이다.
그러므로 동시의 발생은 성인시에 있어서 자유시 발생과 밀접한 관련을 지니게 된다. 서구에 있어서 정형시는 17세기 프랑스 루이 14세의 절대왕정시대의 산물이다. 문학사적으로 고전주의에 해당하는 시대로서, 내용보다 형식에서 미를 발견하려는 시대였다. 이러한 정형시는 휘트먼(Whitman, W.)이 시집 ≪풀잎≫(1856)을 냄으로써 오랫동안의 통제된 운율을 벗어나게 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갑오경장 이후 1908년 ≪소년 少年≫ 창간호에 실렸던 최남선(崔南善)의 시에서부터 정형률을 벗어나게 된다. 그의 이른바 신체시 <해(海)에게서 소년(少年)에게>에 이어 1919년 주요한(朱耀翰)의 <불놀이>가 발표되자 본격적인 자유시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우리의 아동문학은 1925년 무렵까지는 창가조의 동요뿐이었는데, 동시라는 용어가 손진태(孫晉泰)의 <옵바 인제는 돌아오서요>(1926, 어린이)에서 시작되었으나 1930년을 전후하여 우선 형식면에서 3·4조나 7·5조의 정형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1933년 간행된 윤석중(尹石重)의 동시집 ≪잃어버린 댕기≫ 이후에야 비로소 동시의 기틀이 잡히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것도 ‘요적 동시(謠的童詩)’, ‘시적 동요’라는 과도기적 형식으로 불렸던 것이다. 동시의 형태는 성인시와 마찬가지로 서정시·서사시·서경시로, 또 자유시와 산문시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을 아동문학의 특수성에서 고려할 때 내용면에서는 동시와 동화시로, 형식면에서는 동시와 산문동시로 나눌 수 있다.
동화시란 동화적인 내용을 담은 동시로서, 시의 형식과 동화의 내용을 복합한 것이며, 이야기가 들어가므로 자연 그 형식이 길어지게 마련이다. 동화시는 윤석중(尹石重)의 ≪잃어버린 댕기≫에서도 몇 편의 작품이 보이며 그 용어는 그 이전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동화시만으로 작품집을 낸 것은 이석현(李錫鉉)의 ≪메아리의 집≫(1966)이 효시였다.
‘산문동시’는 산문시와 동일한 형식을 가진 동시를 말한다. 문학의 산문화 경향에 따라 리듬이나 의미의 단락에 구애를 받지 않는 산문동시는 연이나 행의 구분이 없는 산문체로 된 동시이다. 유경환(劉庚煥)의 <아이와 우체통>(1957), 신현득(申鉉得)의 <고구려의 아이>(1964), 박경용(朴敬用)의 <애드발룬이 띄우는 하늘>(1966) 등은 산문동시이다.
본격적인 동시의 출현은 1937년에 주창된 김영일(金英一)의 <자유시론>으로부터 시작된다. 이어 이원수(李元壽)·박영종(朴泳鍾:朴木月)·강소천(姜小泉) 등이 자유로운 형식의 동시를 썼고, 민족항일기 말기를 거쳐 광복을 맞은 뒤, 권태응(權泰應)·박화목(朴和穆:朴銀鍾)·어효선(魚孝善) 등이 활동하게 되었다.
6·25동란 뒤 1950년대에는 최계락(崔啓洛)·이종택(李鍾澤)·이종기(李鍾琦)·박홍근(朴洪根) 등이 활약하였고, 1950년대 말에 등단한 유경환·신현득·김종상(金鍾祥)·박경용 등이 우리 동시사상 처음 보는 본격 동시운동을 일으키어 1960년대 동시문학의 꽃을 피웠다. 석용원(石庸源)·조유로(曺有路)·이상현(李相鉉)·김원기(金元起)·최일환(崔日煥)·엄기원(嚴基元)·문삼석(文三石)·이오덕(李五德) 등이 동시를 시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공을 남겼다.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및 1980년대 초에 걸쳐 활동한 동시인으로 오순택(吳順鐸)·최춘해(崔春海)·제해만(諸海萬)·김녹촌(金鹿村)·이준관(李準冠)·하청호(河淸鎬)·전원범(全元範)·김재수(金在洙)·황베드로·노원호(盧源浩)·공재동(孔在東)·박두순(朴斗淳)·손광세(孫廣世)·권영상(權寧相)·서정슬(徐晶瑟)·정두리(鄭斗理)·이창건(李昌健)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