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이란 아동이나 동심적 성인에게 읽힐 것을 목적으로 한 동요(童謠)·동시(童詩)·동화(童話)·아동소설(兒童小說)·아동극(兒童劇) 등의 총칭이다. 따라서, 아동문학이란 명칭은 성인문학과 구별하려는 편의적 용어에 불과한 것이다.
몰튼(Moulton, R. G.)의 형태적 분류에 따르면, 동요와 동시는 창조적 명상(冥想)인 시가(詩歌)에, 동화와 아동소설은 창조적 서술인 담창작(譚創作)에, 아동극은 창조적 표출인 희곡(戱曲)에 각각 대입시켜 구분할 수 있으므로, 굳이 특수문학이라고 고집할 수 없다.
아동문학은 아동을 독자로 하는 문학으로 내용면이나 형식면에서 아동에게 읽히는 문학이요, 아동이 읽어야 할 문학이다. 그러나 성인도 영원한 영혼의 고향인 동심의 세계를 잊을 수 없기 때문에 아동만이 독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아동문학의 독자는 협의로는 아동이나, 광의로는 동심적 성인도 포함된다. 아동문학의 작자(作者)는 작자의 연령보다 지어진 작품이 문제이므로, 아동과 성인이 다함께 아동문학의 작자일 수 있다.
그러나 아동이 작문과 아동시를 남겼다 하더라도, 그 미성숙 상태의 어린이를 우리는 작자로는 인정할지언정 의도적 가치를 노리는 작가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아동문학의 작자는 어린이에게 읽힐 것을 강하게 의식한 사랑에 입각한 문학정신의 소유자, 곧 동심적 성인작가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아동이 쓴 문학작품은 교사가 어린이의 인간형성을 위해 지도, 창작하게 한 학습상의 부산물일 뿐이므로 엄격히 말하여 아동문화의 범주에 넣어야 할 것이다. 아동문학의 소재(素材)는 문학의 소재가 일체의 삼라만상이듯 아동문학의 소재도 무엇이든 가능하다.
주로 미성인간(未成人間)과 비인간(非人間)이 소재의 대부분이 되기는 하지만, 소재 자체가 성인문학과 다른 것이 아니라 소재를 처리하는 방법, 곧 소재를 바라보는 동심적 눈이 다를 뿐이다.
아동문학의 기능(機能)은 아동문학이 특수문학이므로 특수성에 상응하는 기능, 곧 목적과 사명을 가지게 마련이다. 그것은 단적으로 예술성을 상실하지 않는 테두리 속에서 교육성, 곧 아동의 단계적 심신계발에 이바지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동문학은 상업주의적 통속문학이 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며, 지나치게 도덕교과서투로 흘러 교훈주의적 교화문학(敎化文學)이 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며, 또 그들의 단계적 발달단계나 물활론적(物活論的)·마술적 사고나 생활을 도외시해서도 안 된다. 훌륭한 아동문학은 언제나 이와 같은 예술성과 교육성의 조화에서 그 온전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아동문학의 장르 의식도 그 개념처럼 역사적으로 모호한 상태를 면하지 못하였다. 동요와 동시의 구분과 동화와 아동소설의 애매모호한 분간이 그것이다. 전래동요와 전래동화는 문자로 정착된 여부에 따라 구전(口傳)·기재(記載)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종래 동요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창작동요 중 가창적(歌唱的)·가사적(歌詞的) 기능이 강한 요적 동요는 동요로 남게 되는 것이요, 시적 동요와 동시조는 정형동시로 다루어지게 된다.
한편, 동시를 형태 중심이 아닌 소재 중심으로 분류할 때 서정(抒情)·서경(敍景)·서사(敍事)의 3종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동화시(童話詩)는 대체로 서사동시(담동시)의 영역에 내포된다.
또한 창작동화는 독자의 대상을 비교적 유년층으로 잡을 때는 유년동화가 되는 것이요, 소년층으로 잡을 때는 소년동화가 되는 것이다. 문장언어로써 효능을 발휘할 때는 문장동화가 되나 음성언어로써 효능을 발휘할 때에는 구연동화(口演童話)라 불리기도 한다.
그리고 창작소설은 다시 소년·소녀소설로 나눌 수 있으며, 이 경우 소년소설은 탐정·모험·명랑·과학·역사 등으로, 소녀소설은 순정·서정·가정 등의 여러 아동소설로 분류되기도 한다.
다시 길이와 수법에 따라 장편·단편·장편(掌篇)으로 나누어진다. 끝으로 아동극은 로만극과 사실극이란 양 분류 외에 상연하는 목적과 주체의 성격에 따라 학교극과 아동극단극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아동문학의 특성은 아동을 위한 사랑의 문학이다. 이것은 아동문학이 문학의 본질을 바탕으로 하면서 어린이를 위한(목적·대상), 어린이가 갖는(공유), 어린이가 골라서 읽어본 또 읽어갈(선택·계승) 문학으로 아동을 주체로 하고 있다.
또 어제의 어린이였던 어른이 어린이들을 위하여 글을 쓴다는 것은 어린이에 대한 원초적 사랑의 조건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동문학은 사랑의 조건에 부합되는 특수한 조건을 성인문학보다 한 겹 더 짊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한 아동문학의 조건을 편의상 내용과 형식면으로 나누어본다면, 우선 내용면에서 첫째로 아동문학은 낭만주의문학으로서 이상성(理想性)과 몽환성(夢幻性)을 주된 특질로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미분화·미성숙의 아동에게 ‘꿈’과 ‘있어야 될’ 동경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은 ‘현실’과 ‘있는 대로’의 세계를 제시하는 것에 선행하는 사랑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아동문학은 인도주의 문학으로서 윤리성과 교육성을 갖추어야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동 심신의 발달단계를 고려한 단계성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지만, ‘참되게’ 살아가는 진보적 모럴의 추구는 필수불가결의 요소이며 진정한 교육성은 문화성과 흥미성을 그 속에 스스로 내포하기 때문이다.
형식면에서 아동문학은 무엇보다도 원시문학으로서 원시성과 단순 명쾌성을 지녀야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동의 사고와 상상이 미성숙한 단계이므로 그들의 생활에 맞는 표현이나 작법은 단순하고 명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동문학도 어디까지나 문학이기 때문에, 이상의 여러 조건에 어떤 제한을 받는다고 해서 결코 본격적인 문학으로서의 예술성을 상실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여러 조건을 갖출 때 비로소 아동문학은 넓은 의미에서 삶에 대한 향수의 문학으로서 어린이의 인간성해방과 개성발육을 지향하며, 나아가서 인도주의를 구현하고 사회를 개선하려는 이상주의문학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아동문학의 기원은 일반 문학의 기원에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따라서 우리의 고대 아동문학 역시 원시종합예술의 분화 과정에서 그 원류를 찾아 현대로 이어지는 맥락에서 규명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대 이전의 우리 아동문학을 사적으로 체계화한다는 것은 사료(史料)의 빈곤과 이 방면의 연구 부재 때문에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우리의 고대 아동문학은 아동과 성인의 대상 분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거의 일반 성인문학 속에 혼재했다는 점과, 기록으로보다는 구비적으로 전승되었다는 점을 특성으로 지적할 수 있다. 본디 구비문학(특히 설화와 민요)은 그 본질적 속성이 아동문학의 그것과 긴밀한 유사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구비문학의 원시성(원형성, 모순 불합리성, 비논리성)과 단순성·소박성이나 비인격물의 인격화 현상 등은 아동문학의 본질적 속성과 일치한다. 특히 설화는 아동문학의 동화와, 민요는 동시나 동요와 직접적인 형태적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 나라의 고대아동문학은 멀리 삼국시대 이전에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 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다.
① 산문·동화문학 : 서기전 2000년대의 단군(檀君)신화는 우리의 가장 오랜 동화의 원형이 될 것이고, 고주몽(高朱蒙)설화는 보다 동화적 본질에 접근된 것이다.
이 밖에 서력기원을 전후한 시기에 동화문학적 원형을 보여준 것으로는 몇몇 창세이야기가 있으며, 신라의 박혁거세(朴赫居世)·석탈해(昔脫解)·김알지(金閼智), 가락국의 김수로왕(金首露王), 제주도의 삼성혈 등 시조에 얽힌 이야기들이 ≪삼국유사≫·≪삼국사기≫·≪고려사≫·≪동국여지승람≫ 등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전래동화로서 본디 모습을 갖춘 것으로는 신라의 <방이설화 旁㐌說話>와 <귀토설화 龜兎說話>를 들 수 있다.
이것들은 논리를 초월한 공상적 현실이 자유롭게 구사되고 우화적 수법을 통한 기지와 풍자가 번득여서, 작품의 분위기로 보아 현대동화의 원류로 파악해도 좋은 것이다. 이와 같은 전래동화는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 무렵까지 여러 문헌에서 그 편린을 엿볼 수 있다.
특히 고려조에 와서 채록, 정착된 동화자료는 ≪삼국유사≫·≪삼국사기≫ 등 사서나 신라 ≪수이전 殊異傳≫ 등 설화집에 풍부하게 전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온달 溫達>·<최고운 崔孤雲>·<죽통미녀 竹筒美女>·<호원 虎願>·<연오랑세오녀 延烏郎細烏女> 등은 주목할 만한 고전적 동화 유산이다.
고려조에서는 상대 동화의 기록, 정리 작업이 실현될 만큼 양적 증가를 보였다. 조선조를 거치면서 ≪고려사≫·≪어우야담 於于野譚≫·≪지봉유설 芝峯類說≫·≪용재총화 慵齋叢話≫·≪오주연문장전산고 五洲衍文長箋散稿≫·≪대동야승 大東野乘≫·≪패림 稗林≫·≪동국여지승람≫ 등에 많은 동화 유산이 전하나 아직 구체적 연구가 미흡한 상태이다.
다만 조선조에 와서 전래동화의 소설화 경향에 힘입어 <콩쥐팥쥐>·<별주부전>·<흥부전> 등이 소설로 재구성되었다. 20세기에 이르러 비로소 본격적으로 수집, 채록된 전래동화의 질적 수준과 양적 분포로 보아 한국의 고대 동화문학이 결코 빈곤하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② 운문·동요문학 : 동요 또는 동시문학은 민요와 혼재되어 그 구분이 뚜렷하지 않은 채 구전 혹은 정착되어 내려오다가, 근대에 오면서 일반 문학에서 전래동요의 모습으로 점차 양식적 분화를 이루어 나갔다.
문헌상 최초의 동요문학적 원형은 가락국 김수로왕의 강림신화에 삽입된 <구지가 龜旨歌>와 신라의 <서동요 薯童謠>나 <해가사 海歌詞>를 통해서 추정할 수 있다.
이들 작품으로 미루어 초기 동요는 단순 명쾌한 단형의 리듬과 즉흥적·유희적 기능이 중시되었을 것으로, 이는 창작동요의 초기 특징과 유사하다. 그러나 우리 고대 동요문학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대부분이 참요적(讖謠的) 기능을 가졌다는 점이다.
신라의 <계림요 鷄林謠>, 백제의 <완산요 完山謠>로부터 고려시대의 <보현찰요 普賢刹謠>·<호목요 瓠木謠>·<만수산요 萬壽山謠>에 이어, 조선조 초기의 <남산요 南山謠>·<구맥요 求麥謠> 등을 거쳐 말기의 <녹두요>·<파랑새요>에 이르기까지 많은 참요적 전래동요가 전한다.
한편, <구지가>·<서동요>로서 원초적 서정동요는 고려·조선 전기를 통하여 문헌상 거의 채록되지 않았으나, 17세기 영조·정조 이후 소설 속에 삽입, 전승된 <옹고집전>과 <심청전>의 ‘자장가’, <흥부전>의 ‘달거리’·‘구구풀이’, <춘향전>의 ‘가갸풀이’ 등이 그것이 사적 단절이 아니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조선 후기에 판소리 계열이 아동극의 원류로 나타난 것은 이때에 이르러 비로소 아동문학다운 모습을 갖추어 현대와 이어지는 사적 맥락을 이루고 있음을 말해준다.
세계적으로 아동문학이 독자적인 영역을 굳힌 것은 18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서이지만, ‘아동문학’이라는 총칭이 유럽에서 정착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최남선(崔南善)에 의하여 1908년 ≪소년≫과 1913년 ≪아이들보이≫가 간행되면서 ‘소년문학’ 또는 아동문학이라는 호칭이 사용되었다.
그 뒤 방정환(方定煥)이 1923년 ≪어린이≫를 내면서 점차 그 개념이 형성되어오다가, 그 내용과 형식의 특수성으로 해서 성인문학과의 대립개념이 아닌 일반 문학으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편의상 아동문학이라는 용어로 통일, 정착된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의 근대적 아동문학은 이 땅의 근대적 개화·계몽사상 속에서 발아, 성숙한 산물이었다.
≪소년≫의 권두언에서 “우리 대한으로 하여금 소년의 나라로 하라. 그리하자면 능히 이 책임을 감당하도록 그를 교도하자.”라고 한 것을 보아도, 봉건 유교적 사회규범 속에서 억압되어온 아동의 인격을 고양시켜 다사다난한 국가민족의 장래를 그들 청소년에게 의탁하려는 위대한 포부 아래 그 교도의 한 방편으로서 시작된 것이 아동문학운동이었다.
≪소년≫에서 비롯된 교도적 아동문화운동은 어린이운동의 선구자 방정환에 의하여 점차 문학적 아동문학으로 발전해갔다. 그는 거족적인 3·1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일본 유학 중인 학생의 신분으로 1922년에 동화집 ≪사랑의 선물≫을 번안, 출간하였다. 이 책은 10판 이상이 팔릴 정도로 대단한 반응을 일으켰다.
그는 이어서 1923년 한국 최초로 ‘어린이날’을 제정한 ‘색동회’를 배경으로 식민지시대의 아동문학운동을 선도할 아동지 ≪어린이≫를 창간하였다.
그 뒤 쏟아져 나온 ≪신소년≫(1923)·≪새벗≫(1925)·≪아이생활≫(1926)·≪별나라≫(1926) 등의 아동잡지와 색동회 결성 이후 각지에서 조직된 소년회들은 단순한 아동문학운동이나 아동인권회복운동에 그치지 않고 조국 광복의 길을 기성세대보다 자라나는 제2세들에게 걸어야 되겠다는 민족운동의 일환이었다.
≪어린이≫는 1925년에 이르러 윤석중(尹石重), 1926년에 이원수(李元壽) 등을 추천, 육성함으로써 식민지치하 우리말·우리글·우리 이야기·우리 노래를 통한 우리의 것을 일깨워주려는 문화운동에서 문학운동으로 발전하는 씨앗을 뿌리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어린이≫는 한국의 역사와 위인 및 산수지리에 대한 특집을 기획함으로써 데 아미치스(De Amicis, E.)의 ≪쿠오레 Cuore≫(번역명 ‘사랑의 학교’)에 버금가는 ≪어린이독본≫ 연재와 함께 아동에게 자주민의 긍지와 민족의식을 고취하였으며, 소년회운동을 통하여 항일민족운동의 밑거름임을 자처하였다.
따라서, 당시 아동지 집필자 및 동요·동화의 작자들은 전문적인 아동문학가들만이 아니라 소년운동가·아동지 편집자·사회사업가·언론인 등이 태반 이상이었고, 아동을 위해서 씌어지는 읽을거리는 순수아동문학 작품보다 역사·지리·훈화·전기 등 교양물이 중심이 되었다.
이 시절의 아동문학운동은 민족운동의 한 방법으로 인식되었으므로 약간의 문장력을 갖춘 인사이면 무엇이든 아동에게 도움을 주는 글을 쓰는 일이 당연지사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품의 교묘함이나 졸렬함, 형식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고, 주권상실 상태에서 민족의식을 고취하거나 억눌리고, 학대받고, 슬프고, 가난한 사람의 마음을 함께하는 작품이면 되었다. 이러한 작품은 독자에게 무리 없이 읽혀졌기 때문에 1925년을 전후해서는 전례 없는 동요 황금시대가 이룩되었다.
방정환의 <형제별>, 윤극영(尹克榮)의 <반달>, 한정동(韓晶東)의 <따오기>, 윤석중의 <오뚜기>, 서덕출(徐德出)의 <봄편지>, 이원수의 <고향의 봄> 등 헤아릴 수 없는 동요들이 작곡되어 국민개창가곡화(國民皆唱歌曲化)된 것도 이 시기였다.
이 중 <형제별>에서 별 삼 형제가 정답게 지내다가 한 별이 사라지고 남은 두 별이 눈물을 흘린다고 한 것처럼, 이 시기의 동요는 감상주의에 젖은 작품이나 회고적 작품들이 많았다. 식민지치하의 민족으로서 매양 서럽고 슬픈 생활현실에 이러한 동요들이 슬픔을 슬픔으로 달래는 카타르시스(catharsis)적 작용을 해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동요들은 작곡되어 리듬을 가짐으로써, 청소년뿐만 아니라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널리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볼 때 식민지치하의 우리 나라 아동문학운동은 아동문학적인 기능보다는 피압박 민족의 감정의 대변이나 정신의 정화적 구실을 한 민족주의 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광복 전 한국 아동문학은 교훈주의나 민족주의, 그리고 감상주의라는 공통분모를 불가피하게 띠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며, 이 가운데도 교훈주의는 강력한 하나의 전통으로 부각되어 그 뒤의 한국 아동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남기게 된 것이다.
그러나 방정환 시대의 아동문학계에도 프로아동문학운동이 극렬하게 전개되어, 한동안 이 목적의식적 정치문화운동은 순수아동문화운동과 격렬히 맞서 아동문단은 크게 주관적 동심주의 사조와 사회적 현실주의 사조로 나누어져 날카롭게 대립되었다.
주관적 동심주의 쪽은 방정환·연성흠(延星欽)·고한승(高漢承)·이정호(李定鎬)·정인섭(鄭寅燮)·김복진(金福鎭)의 천사주의적 경향, 한정동·유도순(劉道順)·김여수(金麗水)·서덕출의 애상적 경향, 윤복진(尹福鎭)·강소천(姜小泉)·임원호(任元鎬)·김성도(金聖道) 등의 자연친화적 경향, 윤석중의 낙천적 경향, 마해송(馬海松)·박영종(朴泳鍾)·강승한(康承翰)의 탐미적 경향, 이구조(李龜祚)·김은성(金銀星)의 신동심주의적 경향, 박영종·김영일(金英一)의 감각적 경향 등으로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이에 대하여 사회적 현실주의 쪽은 마해송·이원수·임마리아·노양근(盧良根)·최병화(崔秉和)·임원호 등의 풍자적인 저항적 현실주의 경향, 박세영(朴世永)·정청산(鄭靑山)·박아지(朴芽枝)·신고송(申孤松)·이주홍(李周洪)·송완순(宋完淳)·안준식(安俊植)·엄흥섭(嚴興燮)·김우철(金友哲)·이동규(李東珪) 등으로 대표되는 투쟁적 계급주의 경향으로 나뉘었다.
방정환 시대 아동문단은 크게 천사적 동심주의 계열, 투쟁적 계급주의 계열에다가 선교적 교양주의 계열 등으로 정립되었다.
그것은 1930년대와 1940년대를 거침으로써 민족적 자아와 문학적 자각에 눈뜨게 되어 창작동화에 마해송·김성도·김요섭, 생활동화에 이구조·강소천, 소년소설에 최병화·노양근·정우회(丁友會)·현덕(玄德)·이주홍·이원수, 등을 배출한다.
그리고 동요에서 동시로 진전하는 과정에서 한정동·윤석중·윤복진·박영종·김영일 등을 배출함으로써 얼마간 습작문단의 굴레를 벗는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구체적으로는 1920년대의 습작적인 창가적 동요는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윤석중은 음악적이며 낙천적인 경향을 띤다.
또한 이것은 서민적이며 저항적인 이원수, 서정적이며 자연친화적인 윤복진, 향토적이며 탐미적인 박영종, 낭만적인 강소천, 감각적인 김영일에 의하여 시적 동요·정형동요·자유동요의 순으로 진전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윤석중의 최초의 동시집 ≪잃어버린 댕기≫(1933)는 기념비적인 작품집이었다.
한편 산문문학도 운문문학에 비하여 대부분 전래 또는 재래물의 개작·재화(再話)로서 고작 옛이야기 형태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으나, 마해송의 ≪해송동화집≫(1934)에 이어 노양근의 장편소년소설 <열세동무>(1940), 이구조의 아동단편소설집 ≪까치집≫(1940)이 나오자 각각 동화·소년소설·생활동화의 한 유형만을 제시하는 성과를 낳았다.
또, 1930년대의 평론 활동으로는 김태오(金泰午)의 <동요론>과 이구조의 <동화론>이 있었으나 대부분이 인상주의적 작품평이나 아전인수격 잡문들이었고, 전통적 보수주의와 계급주의 이론은 이전투구(泥田鬪狗 : 진탕에서 싸우는 개의 뜻으로, 명분이 서지 않는 일로 몰골 사납게 싸움.)식 양상만 보여줄 뿐이었다.
따라서, 식민지치하의 아동문학은 총체적으로 아동문화운동에 결정적인 의의를 부여했을 뿐, 문학으로서는 일본 아동문학의 강력한 입김과 문학 이전의 상태를 전반적으로 면하지 못하였고, 다만 광복 후에 아동문학운동시대를 갖게 하는 역사적 과도기의 구실을 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아동문학의 비평·연구의 역사는 방정환의 아동문학에 대한 개념 규명부터 시작하는 것이 순서겠지만, 방정환 자신이 아동문학을 문화운동이나 독립운동의 한 방편으로 보았으므로 이론면에서는 초보적 소박성을 면하지 못하였다.
그 예로써 방정환이 1923년 1월 ≪개벽≫에 발표한 <새로 개척되는 동화에 관하여>에서 동화를 ‘M○rchen’의 역어(譯語)로 보지 않고 아동설화(兒童說話)의 준말로 본 것도 있다.
또, 정홍교(丁洪敎)가 <동화의 종류와 의의>(매일신보, 1926)와 <아동의 생활 심리와 동화>(동아일보, 1926)에서 일인학자 마쓰무라(松村武雄)의 이론을 무비판적으로 번안, 발표해버린 사실들을 들 수 있다.
또, 비평이라는 것도 인상비평이나 인신공격이 고작이어서, 한정동의 당선 동요가 일본 동요의 번역이라 하여 홍파(虹波)의 <당선동요 ‘소금쟁이’는 번역이다>(동아일보, 1926.9.23.)라는 폭로로 시작된 논쟁은 마침내 <글도적놈에게>라는 욕설의 평문이 나오기까지 장장 9차에 걸쳐 3개월간을 끄는 소란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1930년에 들어와서는 제법 이론적 논쟁도 심심하지 않게 나왔다. 김태오·윤석중·홍효민(洪曉民)·송남헌(宋南憲) 등의 동심제일주의적 비평, 박영희(朴英熙)·송완순(宋完淳) 등의 사회주의적 계급주의 비평의 대결 따위가 그것이다.
그러나 식민지치하에서 아동문학의 비평·연구는 고작 장르 구분에 다소의 기초 이론을 제공하고, 문화운동적 아동학관 및 아동관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였을 뿐, 영성(零星)한 상태를 면하지 못하였다.
광복 후에도 6·25를 전후한 혼란기를 지나 1962년에 성인용 아동문학잡지 ≪아동문학≫이 출간됨으로써 비로소 그 기반을 닦게 되었다.
이 잡지가 기획한 <아동문학이란 무엇인가>·<동화와 소설>·<동요와 동시의 구분>·<아동문학의 나아갈 길>·<아동문학의 문제점>·<아동문학의 방향> 등은 아동문학의 본질, 장르의식의 확립, 문제점 및 방향설정에 대한 진지한 검토 등 미흡한 대로 본격적인 평론 확립에 중요한 전기가 되었다.
이 무렵 윤석중의 <한국아동문학 소사>와 이원수의 <아동문학 입문>도 비록 소론이지만 사적·이론적 정립에 징검다리 구실을 하였다.
그러나 종적·횡적 체계를 갖춘 이론서는 1967년에 간행된 이재철(李在徹)의 ≪아동문학개론≫이 처음이다. 이 책은 본격 문학의 토대를 구축하고, 평론문학 정립의 기반을 형성하였으며, 다양한 이론적 견해의 통일적 정리에 기여하였다.
이어서 이재철은 1978년 ≪한국현대아동문학사≫와 1989년 ≪세계아동문학사전≫을 발간함으로써 우리 아동문학을 종횡으로 연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그러나 아직 개별적 작가와 작품 연구는 몇몇 작가에 치우쳐 있으며 성인문학에 비하면 여전히 초보적 단계에 머물러 있다.
1990년대 말에 이르러 석·박사 학위논문이 100편에 육박하고 있으나 대부분 작가론의 재탕·삼탕의 수준이며, 다만 전래동요와 전래동화 그리고 동화의 환상성 연구에서 얼마간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한편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이르러 급속한 경제력의 향상과 과도한 교육열이 맞물려, 아동도서시장의 상업적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게 되었다. 흥미 위주의 질 낮은 명랑동화, 괴기동화들이 쏟아져 나왔고, 1980년대 후반부터는 그때 그때의 사회적 이슈에 영합하는 주제동화(성교육동화, 철학동화, 환경동화 등)들이 급조되어 나오기도 하였다.
무분별한 신인 양성으로 일정 수준에 이르지 못하는 작가들이 대거 배출되었고, 질 낮은 작품들이 쉽게 책으로 만들어져 나오는 상황에서, 옥석을 가려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야 할 비평이 제구실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 한국 아동문학 발전을 가로막은 가장 큰 저해요인이자, 현재 극복해야 할 가장 중대한 문제점이다.
앞으로 한국 아동문학은 학문적으로 진지한 이론적 근거를 바탕으로 개별 작가와 작품 평가가 새롭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어린이들에게 우리 정서가 담겨있고 깨끗한 우리말로 된 아동문학의 고전을 선별하여 주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원론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 아동문학 이론 연구를 세부적으로 심화시켜 나가, 좋은 작품과 그렇지 못한 작품을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이와 함께, 각 대학에서 아동문학을 필수과목으로 강의함으로써 성인들의 아동문학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전환시켜야만 한다.
깊고 넓은 해외 아동문학이론을 바탕으로 현장 비평 활동을 활성화해야만 아동문학의 질적 수준을 전반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며, 균형 있는 비평감각을 지닌 뛰어난 다수의 연구자와 비평가의 등장이 무엇보다 절실한 형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어린이의 것을 경시하는 풍조가 있어, 아동문학 평론가의 활동 여건이 너무나 열악하다는 것이 큰 문제이다. 아동문학 작품은 그나마 상업성이라도 있지만 아동문학 평론은 경제성이 전혀 없으며, 성인문학 평론가처럼 여타의 정신적인 보상조차 받을 수 없다.
따라서, 지속적이고 진지한 비평 활동을 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어린이와 아동문학에 대한 사회 일반의 인식의 전환이 없이는 깊이 있는 학문 연구도 비평 활동의 활성화도 요원하다는 것이 한국 아동문학의 현재의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