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흔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중기에, 평안도도사, 절도사, 정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경회(景晦)
인물/전통 인물
  • 본관양천(陽川)
  • 사망 연도1622년(광해군 14)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평안도도사|절도사|정주목사
  • 출생 연도1543년(중종 38)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동길 (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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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에, 평안도도사, 절도사, 정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경회(景晦). 허광(許礦)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동지돈녕부사 허순(許淳)이고, 아버지는 결성현감 허운(許雲)이며, 어머니는 감찰 이구정(李龜楨)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79년(선조 12) 생원이 되고, 1583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감찰·형조좌랑·성균관직강·춘추관편수관을 역임하였다. 이어 경상·평안도도사가 되었을 때 의령현감으로 있던 정인홍(鄭仁弘)이 영송(迎送)에 무례하므로 그가 그 주관한 아전을 벌주니 칭송이 자자하였다.

그 뒤 기축옥사 때 정여립(鄭汝立)과 관련이 있다 하여 감옥에 갇혔다가 혐의가 없어 풀려났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평안도도사로 임금을 모시고 의주로 갔는데 왕을 호종한 공으로 절도사가 되었다.

성을 나누어 지켰는데 그는 왕실의 신주(神主)를 관리하였으며, 얼마 뒤 정주목사가 되었다. 1615년 죽주부사(竹州府使)로 임명되었다가 나이가 70이라 하여 체차되었고, 광해군의 폐모론이 일어나자 벼슬을 멀리하였다. 임진왜란의 공으로 공신에 녹훈되었다가 인조반정 후 삭훈되었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계곡집(谿谷集)』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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