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형숙(亨叔), 호는 산택재(山澤齋). 아버지는 권창업(權昌業)이며,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로 충의위(忠義衛) 홍늑(洪勒)의 딸이다. 장흥효(張興孝)의 문인이었던 아버지 밑에서 공부하였다.
예학에 관한 선유(先儒)들의 훈해와 변례절문(變禮節文)을 모아 『가례전주통해(家禮傳註通解)』를 편찬하고, 의심스러운 바를 고증하는 등 연구를 깊이 하였다.
관직에 뜻이 없어 세거지인 진보현(眞寶縣)에 집을 지어 산택재(山澤齋)라 이름하고 은거하던 중, 1690년(숙종 16) 학행으로 천거되어 장악원주부(掌樂院主簿)에 임명되었으며, 그 뒤 회덕현감(懷德縣監)이 되었다.
그 곳에서 5년 동안 지방수령으로 일하면서 예악(禮樂)을 정비하고, 흉년에 백성들을 구휼하며, 송사와 옥사를 공평무사하고 신속하게 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으며 청렴결백한 관리생활을 하였다.
또한, 학사(學舍)·학전(學田)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여 이의 개선에 힘쓰고, 지방수령으로서 목민대책(牧民對策)에 필요한 항목을 모아 『거관요람(居官要覽)』이라는 책을 엮었다. 홍여하(洪汝河)·이현일(李玄逸) 등과 학문적인 교유가 깊었다.
그는 남인에 속했던 사람으로, 1694년 갑술옥사 후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가 여생을 보냈다. 저서로 『산택재문집(山澤齊文集)』 4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