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구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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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신 박종겸이 영조와 정조대의 정국을 기록한 정치서.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구선희 (고려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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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구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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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 문신 박종겸이 영조와 정조대의 정국을 기록한 정치서.

내용

2권 2책. 필사본. 규장각 도서·국립중앙도서관·국사편찬위원회 등에 있다.

1책은 1728년(영조 4) 진종(眞宗 : 영조의 맏아들 緈, 당시 세자, 뒤에 왕으로 추존) 사후 사도세자(思悼世子)에 관한 사실을 일기체로 기록하였다. 2책은 전반부에 영조 사후 정조의 어서(御書), 논문, 추존 관계 사항을 일기체로 기록했고, 후반부의 속편 하에는 사도세자에 대한 만장·상소문 등을 수록하였다.

1책의 무신조에는 진종 사후의 후계 문제를 거론했고, 을묘조에는 사도세자의 탄생과 행적·성장 과정을 기록했으며, 세손빈의 간택, 홍봉한(洪鳳漢)에 관한 사실이 적혀 있다. 임오조에는 세자를 폐하고 서인으로 한 뒤 윤5월 21일 사망한 사실을 적었으며, 세자 사망으로 인한 국내 여론과 중국 칙사의 내조(來弔), 사망 후 세손과 영조의 관계를 상세히 기록하였다. 갑신조에는 세손으로 계통(繼統)하도록 한 사실들이 기록되어 있다.

2책의 병신조에는 3월 5일 영조의 사망과 정조의 즉위, 진종의 추숭(追崇), 사도세자의 시호를 장헌으로 존봉(尊奉)한 사실, 사도세자 관계 각종 상소문 및 왕의 윤음(綸音) 등이 기록되어 있다.

무신조에도 영남유생 조덕린(趙德鄰)·황익재(黃翼在) 등의 사도세자 관계 상소문이 실려 있다. 속편 하에도 기유조에 금성위(錦城尉) 박명원(朴明源)의 상소 및 8월 12일 사도세자의 능을 수원으로 옮기는 광경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그 밖에 정조의 자찬지문(自撰誌文)과 우의정 채제공(蔡濟恭) 등 140여 인의 만장을 소개했고, 10여 수의 글 이외는 다를 바가 없다고 평하고 있다.

이어 사도세자에 관한 각종 상소문을 모아 편집했으며, 1795년(정조 19) 정월이 사도세자의 회갑 연월이라며 대제학 서유신(徐有臣)이 지은 제진옥책문(製進玉冊文) 등을 수록하였다. 그리고 좌의정 김종수(金鍾秀)의 치사(致仕 : 나이가 많아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남) 관계에 관한 서술 등도 말미에 기재되어 있다.

이 저술은 조선 후기의 정치적 변동, 특히 사도세자를 둘러싼 영조·정조 연간의 정치 세력간의 대립을 살피는 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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